[원종섭 세계 현대시 詩 칼럼]5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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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세계 현대시 詩 칼럼]5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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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1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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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백석 시인
백석 시인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1938년 <여성> 3권 3호, 3월호에 발표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도 나타는 '나타샤'는

백석이 러시아 문학에 대한 동경과 이국적 이미지의 효과를 더해줍니다.

바야흐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싶은 시인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진짜 연애편지입니다.

​누런 미농지 봉투 속에 든 이 시를 백석에게서 직접 받았다고 전하는 '자야 ' 여인은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첫눈 오는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고 유언했고, 그리 되었습니다.

생사를 알 길 없이 남과 북에 헤어져 살면서도 백석의 생일날이 돌아오면 금식하며 ​그를 기렸다는 한 여자가 첫눈 속에 돌아간 흔적이 아득합니다. 

'출출이(뱁새)' 우는 산골로가 '마가리(오두막집)'에 살자고 하는 시인에게 나타샤가 응답하며 '고조곤히(조용히)' 속삭이는 말로 설정해 놓았는데, 묘하게 아련하고, 아프고, 캄캄합니다.

 

백석이 당대의 모던 보이로 헤어스타일을 날리며 광화문에 나타나면 광화문 거리가 환해졌고 합니다.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했고 시 잘 쓰고 핸섬한 모던 보이 백석에겐 여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중에도 통영 처녀 '란(박경련)'과 기생 '자야'의 인연은 특별해 보입니다. 

“백석의 시 한 줄과 1000억과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말한 김자야 여사는 영원한 백석의 나타샤로, 길상사 한 켠의 기념비처럼 영원히 길(吉)하고 상서로운 빛으로 길상사를 찾는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백 석  白 石

1912-1996. 북한의 작가, 천재시인.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청년기를 일제 강점기에 보냈습니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였고,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며 등단하였습니다. 1935년시 『정주성』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단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1936년첫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습니다. 해방 이후 고향인 북한에서 문예 활동에 전념했으나, '사상 이외 문학성도 중시해야 한다'는 그의 논조로 인해 1960년대 즈음 북한문단에서 숙청당했습니다. 이후 양강도의 한 협동농장에서 농부로 일하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외 지도하며 여생을 보냈지만, 문단에는 복귀하지 못하고 19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천재시인 백석의 유일한 시집 ‘사슴’ 초판본이 경매회사 코베이에서 7000만원에 팔렸습니다. 1936년 1월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한 ‘사슴’의 초판본 가격은 당시 2원(圓)이었습니다. 100부밖에 찍지 않아 전문가들 사이에서 희귀본으로 꼽힙니다. 코베이 측은 “전문 소장가가 낙찰받았다”면서 “3년 전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이 1700만원에 낙찰된 적이 있는데 문학 서적으로는 최고가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사슴’ 초판본은 백석이 이육사(1904∼1944) 시인의 동생인 문학평론가 이원조(1909∼1955)에게 직접 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과거 한국에서는 월북 작가라는 인식이 강해 언급을 피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월북 문인의 해방 이전 작품에 대한 공식 해금 조치가 이루어진 1988년부터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토속적인 우리말로 민중들의 삶을 노래한 뛰어난 시인으로, 지금도 많은 시인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명실상부한 현대시 최고의 절창입니다. The Poems Redfox0579 © Healing Poem of KAPT

 

 

원종섭 Won, Jong Sup  시인, 길위의 인문학자, 대중예술 비평가,  교수, KAPT 한국시치유연구소 힐링포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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