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섭 세계현대시詩 칼럼]57. 그대 없이는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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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세계현대시詩 칼럼]57. 그대 없이는 - 헤르만 헤세
  • wannabe
  • 승인 2022.12.2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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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etter Me
꿈은 더 나은 내일을 향해
희망적인 것은
당신의 좋은 습관입니다

 

 

 

 

 

 

그대 없이는

 

시인 헤르만 헤세
시인 헤르만 헤세

 

 

 

 

 

 

 

 

 

 

 

 

 

나의 베개는 밤에 나를 묘석(墓石) 같이 허무하게 쳐다봅니다.

홀로 있는 것이 그대의 머리를 베개롤 삼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도 쓰라린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요한 속에 단지 홀로

매달린 램프를 끄고 엎드려 그대의 손을 잡으려고

살며시 손을 뻗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입을 조용히

그대 앞에 붙여 마음껏 키스를 합니다.

갑자기 나는 눈을 뜨면

주위는 말없는 차디찬

유리창에 별이 반짝반짝 비칩니다.

오  그대의 금발은 어디에 있는고 ?

그대의 달콤한 입은 어디에 있는고?

이제 나는 어떠한 기쁨 속에도 슬픔을

어떠한 포도주 속에도 () 마십니다.

그대 없이 홀로 있는

이렇게 쓰라리다는 것을 끝내 몰랐습니다.

 

 

 

 

갑자기 나는 눈을 뜨면
주위는 말없는 차디찬 밤
유리창에 별이 반짝반짝 

 

 

 

헤르만 카를 헤세  Hermann Karl Hesse

1877-1962. 독일계 스위스인이며, 시인, 소설가, 화가입니다. 독일 남부 시인의 고장 슈바벤 주의 뷔르템베르크 소재 소도시 칼프에서 개신교 선교사이던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와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정 환경은 헤세가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14세 때 명문 기숙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신학교를 도망쳐 나왔습니다. 부적응과 신경쇠약증 발병,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는 것이 중퇴 이유였습니다. 6월에 짝사랑으로 인한 자살 기도를 해서 정신요양원 생활을 했습니다. 11월에 칸슈타트 김나지움 입학을 했는데, 신학교 때의 경험은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에서 비판적으로 묘사되기도하였습니다.

시계부품공장 견습공으로 일했다. 2년간 방황하던 헤르만 헤세는 서점 점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삶의 안정을 찾았다.

1899년 첫 시집 낭만의 노래 산문집 한 밤중의 한시간을 발간했습니다. 1904년 『페터 카멘친트 (향수)』를 통해 헤세는 일약 독일어권에서 유명한 작가가 되며, 이후 그는 성공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할 즈음에 『페터 카멘친트』는 6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주의적 태도로 극우파들의애국주의 에 반대했다가 독일에서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때 나온 작품이 『데미안 Demian』입니다. 이 소설은 그가 크게 성공을 거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인쇄에 필요한 종이가 배당되지 않게 한 나치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1946년《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927년 위고 발(Hugo Ball)는 헤세를 "찬란한 낭만주의 대열의 마지막 기사(騎士)"라고 표현했습니다. The Poems. Redfox0579 © Healing Poem of KAPT

 

 

원종섭  Won, Jong Sup

시인,  길위의 인문학자, 대중예술 비평가, 영미시전공 교육학박사, NAPT 미국시치료학회 이사,  KAPT 한국시치유연구소 힐링포엠 대표, UNESCO 교육문화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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