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섭 세계현대시 詩 칼럼] 63. 귀천 - 천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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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세계현대시 詩 칼럼] 63. 귀천 - 천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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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1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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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etter Me
꿈은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 돌아가리라

 

 

시인 천상병
시인 천상병

 

귀천 

 

 

 

 

 

​​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잡고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는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순수한 영혼과 천진한 행동,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 시인 천상병은 그렇게 기억됩니다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너무 큰 행복을 기대하는 마음이겠죠 

 

 

시인 천상병
시인 천상병

 

천상병 千祥炳

1930-1993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입니다.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귀국하여 마산에서 성장하였습니다. 1955년 마산중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43세가 되도록 독신으로 오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72년 목순옥과 결혼하여 비로소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지병으로 죽기 전까지 부인의 지극한 보살핌에 힘입어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상대를 졸업하고 부산시청에 근무하며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하던 시절, 유럽으로 유학을 갔던 친구로부터 술 한 잔 얻어먹고 막걸리 값을 받습니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의 한국어음차 표현)사건 때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간다. 숱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성기능 불능자가 됩니다.

6개월 뒤 선고유예로 풀려나지만 거지가 되어 거리를 떠돌다 청량리정신병원에 수용됩니다. 그의 친구들은 이런 천상병 시인이 사망했다고 여기고 유고시집을 냅니다. 마흔둘에 장가를 가고 고문 후유증으로 아기도 낳을 수 없게 됩니다.

가난과 무직, 주벽, 무절제한 생활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천상병은 1971년 문우들의 주선으로 제1시집 『새』를 뒤늦게 발간하였습니다. 그 뒤 제2시집 『주막에서』(1979)와 제3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 제4시집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제5시집 『요놈 요놈 요이쁜 놈』(1991)을 펴냈습니다.

그밖에 저서로 3인 시집 『도적놈 셋이서』(1989), 시선집 『귀천(歸天)』(1989)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1991), 문학선 『구름 손짓하며는』(1985), 산문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1990),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 등이 있습니다. 유고집으로 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1993)와 수필집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1994)가 있습니다.

 

부인 목순옥 여사와 천상병 시인
부인 목순옥 여사와 천상병 시인

 

그의 시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서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순수성을 되비쳐 보여줍니다. 동심에 가까운 이러한 순진성은 가난과 죽음, 고독 등 세상사의 온갖 번거로움을 걸러내고 일상적인 쉬운 말로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천상병과 목순옥 여사
천상병과 목순옥 여사

 

 

천상병은 진실을 보는 방법으로 무소유에 가까운 가난을 선택했습니다. 가난은 그에게 삶은 고통만 있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도 있음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작은 눈물방울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보았던 천상병은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그가 보거나 느낀 것들, 그리고 시를 쓰는 영혼의 불멸성 등이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자각에 이르렀습니다. 이 앎이 천상병이 시에서 찾은 진실이며, 해탈이자 치유였습니다. 

 

 

중광 스님과 천상병 시인 그리고 소설가 이외수
중광 스님,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

 

어느날 천상병시인, 걸레스님으로 유명한 중광스님 그리고 소설가 이외수 처음 대면했던 세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서로를 보며 웃음보를 터뜨렸을 뿐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했겠습니까. 당시 세 사람은 나름의 서열을 매겼습니다. 이들간의 서열엔 무엇이 기준이 되었을까요? 동심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더 순수 결정체에 가까운 것입니까? 위너는 단연 천상병이었습니다.

훗날 이외수는 어느 방송에 나와 세 사람의 서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천상병시인의 동심 지수는 유치원생 수준, 중광스님은 초등학교 수준으로 2위고 그들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라는 이외수 자신의 동심지수는 중학교 수준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세상은 민주화항쟁으로 혼탁했지만 그들이 한자리에 있어 잠시 웃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칼럼니스트 원종섭
칼럼니스트 원종섭

 

원종섭   Won  Jong-Sup

시인,  길위의 인문학자,  대중예술 비평가,  영미시전공 교육학 박사,  NAPT 미국시치료학회 이사,  KAPT 한국시치유연구소 힐링포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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