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섭 세계현대詩 칼럼]33.자유 -엘뤼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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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세계현대詩 칼럼]33.자유 -엘뤼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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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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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엘뤼아르
폴 엘뤼아르

 

 

자 유

 

 

 

 

나의 메모장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제왕들의 왕관 위에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하늘빛 옷자락 위에

태양이 시들한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은 큰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 꺼진 램프 위에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나의 바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된 불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균형 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침묵을 초월한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긴장된 입술 위에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대 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죽어 버린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유년시절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밀려오던 그 환희의 감동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

쓴다는 의미는 대상을 절실하게 그리워할 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혹은 시인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폴 엘뤼아르 Paul E'luard

1895~1952. 프랑스의 시인. 다다이즘 운동에 참여하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 "자유 LIBERTE"는 프랑스 저항시의 백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시인이 레지스탕스를 전개하며 발표한 저항시입니다. 이로인해 우리나라 민주항쟁에서 뜨겁게 부르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닮음꼴로 탄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원종섭 Won, Jong Sup 

시인, 길위의 인문학자, 한국문화예술 비평가, UNESCO 교육문화 전문위원,  KAPT 한국시치유연구소 힐링포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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