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 어머니 ”
“ 당신의 사랑은 저의 하늘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저의 바다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저의 종교입니다 ”
그리고 오늘 9월 7일은 김소월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김소월
1902년 9월 7일 평북 구성군 서산면 왕인동 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김정식 필명은 김소월입니다. 조부가 대지주였고 광산업도 하여 집안이 부유했으며 유교적 가풍이 있었습니다. 서춘 선생의 문학수업을 받고 동네 친구인 오순을 만나서 이성에 눈을 떴습니다. 1915년 13세 때 남산소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오산중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교장 이승훈, 교사 조만식의 영향으로 민족의식을 키워갔으며, 운명적으로 스승 안서 김억을 만나 본격적인 문학 수업이 시작 되었습니다. 1916년 14세 때 조부의 뜻에 의해 홍실단과 결혼하였으나 오순과의 이별로 심리적 갈등을 겪음.
1920년 18세 때 안서의 지도로 창작에 매진하고 『창조』에 '낭인의 봄, 그리워, 춘강' 등을 발표하여 문단 등단하였습니다.
1922년 20세 때 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하였고 1923년 21세 때 3월 교지 『배제』에 '길손, 달밤, 접동새' 등을 발표합니다. 배재고보 졸업 후 일본 유학길에 오르고 10월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합니다. 1924년 22세 때 귀향해서 조부의 광산일을 도왔고 영변 여행을 다녀와서 김동인, 김찬영, 임장화 등과 함께 『영대』동인이 됩니다. 1925년 23세 때 시집 『진달래꽃』(매문사) 상재합니다. 시론 「시혼」을 『개벽』 5호에 발표합니다.
1926년 24세 때 마음속의 연인이던 오순의 죽음으로 충격받습니다. 시작에서 거의 손을 떼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7월 평안북도 구성군에 동아일보 구성지국 개설되어 지국장을 역임합니다. 1927년 25세 때 3월 동아일보 지국이 폐쇄되고 '팔베개 노래'를 발표합니다. 나도향의 요절로 충격을 받고 자살충동을 느낍니다. 술로 지새는 날이 많아지고 고리대금업에 손을 댑니다.
1929년 27세 때 '조선 시가협회'에 회원 가입을 합니다. 이 협회는 이광수, 주요한, 김억 등 10명으로 구성되고 저속한 가요의 가사 혁신을 위하여 조직 되었습니다. 1932년 30세 때 독립운동가 배찬경의 망명자금을 대주고 일경의 감시를 받습니다. 만주행을 꿈꿨으나 실패합니다. 1934년 32세 때 8월 '제이,엠,에쓰', '돈타령" 등을 발표합니다. 9월 21일 추석 전날밤에 스승 김억에게 절망적인 편지를 씁니다. 12월23일 장에서 아편을 사가지고와 음독합니다. 다음날 아침 8시경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원종섭 Won, Jong Sup 시인, 길위의 인문학자, 한국 문화예술 평론가, KAPT 한국시치유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