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8코스: 제주시 간세라운지에서 조천 만세동산까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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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8코스: 제주시 간세라운지에서 조천 만세동산까지(8)
  • 김영희
  • 승인 2022.05.12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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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주군과 경계를 이루었던 제주시 동쪽 끝 마을 삼양동
물결이 물결을 치는 벌랑 포구
삼양 검은모래 해변의 효능과 삼양동 선사 유적지
끝내 고대 국가를 이루지 못한 원삼국 시대의 탐라국
삼양동 궷물 근처에서 만난 개량 지붕인 초가 모양을 한 집이 이채롭다.
삼양동 궷물 근처에서 만난 개량 지붕인 초가 모양을 한 집이 이채롭다.

별도 연대를 지나 밭으로 둘러싸인 좁은 포장도로를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양동 궷물(용천수)이 나온다. 화북동에서 삼양동으로 진입한 것이다. 삼양동은 2006년 7월 1일자로 제주도가 제주특별자치도가 되기 전까지는 북제주군과 경계를 이루었던 마을이다. 동쪽으로 제주시의 마지막 마을이었다. 그 당시 행정 체제는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으로 나뉘었다.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북제주군은 제주시로, 남제주군은 서귀포시로 통합되었다.

궷물에서 조금 더 가니 삼양 3동의 벌랑포구가 나온다. 물결이 서로 물결을 친다고 하여 칠 벌(伐), 물결 랑(浪), 그래서 벌랑(伐浪)이다. 연이어 이어지는 파도 물결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여자의 몸매를 닮았다는 새각시물도 있다. 마시기도 하고 멱감고 빨래도 했던 곳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원당봉의 모습은 마치 거북이가 바다로 기어들어 가는 모습이다.

벌랑 포구에서 바라보는 물결이 물결을 치는 모습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벌랑 포구에서 바라보는 물결이 물결을 치는 모습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삼수천을 가르는 다리 둠뱅이교도 지난다. 삼양동이 자랑하는 검은모래 해변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검은 모래로 찜질하면 신경통, 관절염, 비만, 스트레스 해소, 피부염, 감기 예방, 무좀, 불임 치료에도 좋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광적으로 온천욕을 즐기는 일본인들까지 노천 찜질방인 삼양 검은모래 해변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올레 18코스에는 벗어나 있지만 삼양동에는 또한 귀중한 ‘삼양동 선사유적지’가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남한 최대의 선사시대 마을 유적지다. 원삼국 시대의 초기 복합사회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기원 전후 탐라국 형성기의 사회상을 밝혀주고 있다.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까지를 원삼국 시대라고 한다. 삼양동에 있는 대규모 주거지가 바로 이 시대 유적이다. 2002년 복원되었다.

기원전 1천 년부터 형성된 한반도의 군장국가-부족사회보다는 더 복잡하고 본격 국가보다는 덜 복잡한 사회구조-시대가 기원전 1세기 초기 철기시대로 들어가면서 급변한다.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사로), 동예, 옥저, 삼한 등의 군장 국가들이 고대국가로 발전하려고 각축을 벌이며 다투다가 기원후 3세기 삼국의 정립과 고대국가의 탄생으로 결말이 난다.

삼양동 선사 유적지 외부 전시관의 모습
삼양동 선사 유적지 외부 전시관의 모습

제주시 삼성혈에서 고량부 신인이 탄생했다. 서귀포시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에서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와 결혼을 하였다.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삼사석(三射石)의 전설에서 알 수 있듯이 삼신인(三神人)이 화살을 쏘아 떨어진 곳에 이 1도, 2도, 3도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 그 이후 마을이 점차 커지면서 군장국가로 발전하며 원삼국 시대에 탐라국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국가 체계를 이루지 못하여 처음에는 백제에, 백제가 멸망하자 통일신라에, 통일신라 이후 고려에 조공하였다. 고려 숙종 10년(1105)에 탐라국은 고려의 지방 행정구역의 하나인 탐라군(耽羅郡)이 되면서 독립적 지위는 막을 내렸다. 고려 고종 원년(1214) 탐라군을 제주군(濟州郡)이라 부르면서 탐라는 제주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 되었다.

탐라국이 고대국가로 발전하였다면 지금의 제주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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