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부터 집안일을 했어요. 저는 완전 엄마였어요, 그 어린나이부터."
자립준비청소년인 해솔(가명)이는 담당자의 질문에 어린 시절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현재 대학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해솔이는 완전한 자립을 준비하는 동시에 지역 청소년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4살 때부터 시작된 '어른 노릇'
해솔이의 어린 시절은 평범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이복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4살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됐다. 생계를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야 했던 아버지, 어린 이복동생 사이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집안의 어른'이 되었다.
"저희 집은 완전 쓰레기 집이었어요. 아빠는 집에 거의 없으니까 저도, 동생도, 집도 챙길 사람이 저밖에 없었거든요."
전문가들이 '조기 성인화(parentification)' 현상이라고 부르는 이 상황에서, 해솔이는 본래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해야만 했다. 어린 손으로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매일 집을 치우고 동생을 돌봤다.
그런 해솔이에게 학교는 유일한 '휴식처'였다. 학교에서 만큼은 아무도 챙기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지역사회가 발견한 숨겨진 재능
초등학교 시절, 해솔의 인생에 첫 번째 전환점이 찾아왔다. 학교 상담실에서 종일 그림을 그리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던 해솔이를 본 교육복지사 선생님께서 지역에 있는 청소년쉼터(이용형) 연계를 통해 해솔이의 적성과 흥미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청소년쉼터(이용형)에서는 해솔이가 종일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는 점과 상담 시 그림에 대한 흥미를 보인 점에 집중해 미술 교습소에 등록을 해주었고, 미술 교습소 선생님을 통해 해솔이의 미술 재능이 남다름을 듣게 되었다.
"너는 어떤 미술이 하고 싶니?" 이 질문에 해솔이는 **"웹툰 작가요"**라고 답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다는 꿈이었다. 해솔이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청소년쉼터(이용형)는 여러 공모사업을 통해 단기적인 미술학원비와 재료비를 확보해 주었다. 이후 보다 장기적인 지원을 위해 민간재단의 지역재능인재발굴사업에 대상자로 추천하여, 미술에 대한 배움이 지속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 결과 해솔이는 중학교 진학 시점부터 19세까지 무려 6년간 미술학원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쉼터와 집 사이, 그리고 독립
그렇게 하루하루 커 가는 해솔이의 꿈과 달리 가정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해솔이가 중학생이 된 후 가정 내 갈등이 심화되면서, 생존을 위해 집을 나오게 되었다. 이 후 청소년쉼터(생활형)에 입소해 지내게 되었고, 몇 번의 귀가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다시 청소년쉼터(생활형)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17세에 친구 가족의 도움으로 자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림, 상처를 치유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어릴 때부터 알았어요. 잊고 지내다가... 다시 그림을 그렸을 때 그림이 제게 큰 위로를 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림을 그릴 때면 시끄럽던 제 마음이 조용해져요. 잔잔한 파도처럼요."
미술치료 전문가들은 예술 활동이 트라우마 치유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해솔이에게 그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도구였다.
자신이 그림을 통해 위로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미술이 주는 힘을 전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처음엔 웹툰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 품고있던 미술의 의미가 달라졌다. 이제는 미술로 다른 청소년들을 치유하고 싶어졌다. 미술교사가 되어 청소년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어진 것이다.
꿈을 향한 전력질주
목표가 생기자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입시 미술 준비, 대학 입시, 합격까지 -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해솔이는 멈추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갔다.
현재는 지역 방과후 아카데미에서 청소년 미술프로그램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때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수도 있는 청소년들에게 그림을 통한 희망을 전하고 있다.
지역사회 연대로 이뤄낸 기적
해솔이의 성공적인 자립은 한 기관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학교, 청소년쉼터(이용형), 청소년쉼터(생활형), 민간재단, 지역 방과후아카데미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청소년자립지원관(이용형)까지 - 지역사회 전체가 한 아이를 위해 손을 잡았다.
늘 학교 상담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아이를 눈여겨 봐준 교육복지사 선생님, 욕구를 파악하고 꿈과 재능을 발견해 주었으며, 가정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할 때 울타리가 되어 준 청소년쉼터(이용형, 생활형), 꿈을 향한 여정이 멈추지 않도록 기꺼이 힘을 실어준 민간재단, 새로운 꿈에 첫 날개를 달아준 지역 방과후아카데미, 그리고 해솔이의 자립을 위한 경제적, 심리적, 생활적 지원을 이어온 제주특별자치도청소년자립지원관(이용형)까지 하나로 이어진 지원체계가 해솔이의 성공적인 자립준비를 가능하게 했다.
제주특별자치도청소년자립지원관(이용형)(관장 김성훈)은 "4살 때부터 어른 역할을 해야 했던 해솔이가 이제는 자신의 꿈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변화"라며, "상처받은 청소년들이 다시 세상을 믿고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솔이의 성공은 우리 기관만의 성과가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며,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한 아이를 지역사회가 함께 품고 키워내 이제는 다른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존재로 성장시킨 것"이라며 꿈을 잃지 않고 달려와준 해솔이와 곁에서 함께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