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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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서정
  • 한복섭
  • 승인 2023.09.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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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서정(抒情)

시인. 수필가 한 복 섭

시인. 수필가
시인. 수필가 한 복 섭

  드높이 맑아가는 청자 빛 하늘.
  텃밭 고추가 붉게 익어간다. 아무리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가을은 오는가 보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 백로까지 지났으니 구월 중순에 폭염주의보라니 그렇지만 뜨거운 가을햇살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빨갛게 익어가는 온갖 과일들.
  드넓은 들녘에 고개 숙이는 벼이삭, 농부의 미소 머금은 웃음을 생각하면 농부의 주름진 얼굴이 펴지는 느낌이 들어 마음 기쁘다.
  게다가 조상의 선묘에 벌초까지 해드렸으니 가까워진 올해 추석명절은 보름달 밑에서 강강술래 농가풍년을 기원하는 아낙네들의 환한 얼굴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이글대던 태양의 이야기가 꺼져가는 모닥불처럼 사위어가고 기다란 목을 하늘거리며 서 있는 코스모스의 서글서글한 눈매로 볼 가까이 가을이 오면 나는 고향 하늘을 향해 달려가는 유년시절, 고향에서의 어린 마음이 되어버린다.
  우수수...
  규수(閨秀)의 땋아 내린 머리칼처럼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칼처럼 늘어진 계곡의 물든 단풍 사이로 청량한 골바람이 불어 내리면 서산 너머로 높푸른 하늘 아래 가을이 온다.
  가을! 비단결 같은 푸른 달빛이 흐르는 밤을 지새우며 우는 귀뚜라미 숱한 사연 어디론가 그리움을 띄워 보낸 낙엽처럼 그래서 떠나버린 사람을 그리워하고 추억의 소담 스런 아련함을 안겨다 주어 낙엽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주는 것일까?
  가을은 모든 곡식을 수확하고 감사의 계절이다. 이른 봄, 씨 뿌리고 한여름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린 결과다. 농심(農心)이 활짝 웃는다. 과수원 밭 어딜 가나 풍성함이 물결쳐 감사함과 축복이 들녘에 넘치고 고구마 굵은 덩이 쥐고 정겹던 어린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가을은 서글픈 계절이다. 학굣길 코스모스 흝으며 바라보던 하얀 솜구름 우수수 부는 바람에 서늘해지는 햇볕, 가을빛, 호수처럼 맑고 서글서글한 학창 시절의 죽마고우(竹馬故友) 고향 친구들이 가을이면 아름다운 마음의 여행을 떠나게만 한다. 그래서 서글픈 계절일 게다.
  가을은 살이 살찌는 계절이라 했던가?
  하늘은 한없이 높고 푸르며 들녘에서 가을 풀을 뜯는 말이 통통 살이 올라 기운을 돋구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밤새워 울음 우는 풀벌레 벗을 삼아 일수(一穗)의 청등(靑燈) 아래 마음을 살찌우고, 삼복더위에 잃었던 입맛을 찾아 우리의 육신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는 계절인 것이다.
  더구나 가을은 푸른 물이 뚝뚝 듣는 하늘 아래서 조용히 젖어 드는 사색(思索)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여름까지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방황하던 내 젊은 영혼도 한 조각 낙엽이지는 마음의 호수 위에 이제 머물 자리를 찾는다.
  꿈의 계절, 그리움의 계절, 용사의 계절, 가을 들국화 코스모스, 단풍 바람과 함께 가을의 품에 안겨 마음의 창을 열고 힘껏 외치고 싶고 낙엽이 소소하게 지는 포도(鋪道)를 따라 이 멋진 계절을 알차게 보내야겠다.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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