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도쿄, 인연(因緣)과 순국(殉國)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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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도쿄, 인연(因緣)과 순국(殉國)의 길을 걷다.
  • 유태복 기자
  • 승인 2022.11.24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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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깊어지는 11. 8 ~17일까지 일본 방문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고명주 작가
필자 고명주 작가

2019년 3월 31일 일본 도쿄에서 순국선열추모전을 개최한 후 3년여 만에 방문했다.

그 사이 COVID-19로 인해 일본을 갈 수 없었는데 다행히 일본과의 문이 다시 열려 갈 수 있었다.

이번에 간 목적은 여러 가지 있였지만 그 중 하나가 일본에 있는 뜻깊은 순국선열유적지를 걸으며 기록하고 일본에 계시는 순국선열추모 회원님들과의 만남이었다. 또한 일본을 더 알고자 마음에 두었던 곳을 다녀 보는 것이었다.

3,1운동 100주년 도쿄순국선열추모전을 역사의 인연으로 만나 추모전을 개최 한 이후 다시한번 도쿄에 들려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걸으며 나라사랑과 독립과 민족혼을 세계반방에 드높인 애국지사가 걸었을 길을 걸으며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후세가 해야할 기본적 책무라 생각하여 어려운 여건속이지만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이처럼 뜻깊게 이루어진 일본방문이 더욱 알차기 하기위해 이윤옥 문학박사(시인,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께 전화를 걸어 일본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자문을 요청했다. 친절하게 관련자료와 신문에 실린 자료를 보내주셨고 여러 가지 당부사항도 전해주었다.

▲ 일본 니카타현 묘코산에서 본 일본의 가을풍경.(고명주 제공)
▲ 일본 니카타현 묘코산에서 본 일본의 가을풍경.(고명주 제공)

인천공항에서 일본 나리타공항까진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이 말속에 모든 의미가 담겨져 있다 생각한다. 그 만큼 알고 치유하고 화해하고 협력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 일수 있다. 도쿄의 하늘은 점점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맑고 청명한 하늘과 한국보다는 부드러운 바람까지 불어주었다.

도쿄에서 1박을 하고 4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의 니카타현과 중소도시를 들려보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도쿄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199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현 나가노시. 니카타현 조에츠시, 묘코시, 다카다시, 니카타시와 가시와자키시를 둘러보고 일본 불꽃축제로 유명한 나가오카를 경유하여 도쿄 우에노역에 도착했다. 거대한 일본의 알프스 불리는 산맥도 븕게 물들어 있었고 수 없는 터널과 산맥과 산맥사이로 펼쳐진 가을걷이가 끝난 평야에 핀 하얀 억새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또 도쿄에 머물며 하루을 내어 도치키현 우츠노미야시와 참으로 풍광이 아름다운 닛코도 다녀왔다.

▲ 도쿄순국선열추모전(2019.3.31) 도쿄 우에노에서 열였다..(사진제공 고명주)
▲ 도쿄순국선열추모전(2019.3.31) 도쿄 우에노에서 열였다..(사진제공 고명주)
▲ 도쿄순국선열추모전(2019.3.31) 도쿄 우에노에서 열였다..(사진제공 고명주)
▲ 도쿄순국선열추모전(2019.3.31) 도쿄 우에노에서 열였다..(사진제공 고명주)

일본에서 기차를 타고 전철을 탄다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상이상의 기차역과 전철노선, 수도 도쿄와 일본 어느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모양과 형태도 다른 기차, 그리고 기차역은 거대한 상권이고 삶의 터전이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었다면 서울역 뿐만 아니타 타 가차역도 남과 북, 동과 서를 연결하는 더 많은 기차와 전철이 다닐 거라 생각도 해보았다.

4일간의 일본의 중소도시를 인연 따라 돌아본 후 이제 본격적으로 도쿄를 걷기로 했다.

가장 먼저, 간곳은 윤동주 시인이 도쿄에서 다녔던 니케부쿠로역에서 멀지 않은 릿쿄대학이었다. 찾아가는 길은 너무나 깨끗했고 만추의 아름다운 풍경이 캠퍼스를 덮고 있었다,

릿쿄대학(立敎大學)은 일찍부터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인 북간도 명동촌 출생한 윤동주 시인이 1942년 2월 말에서 10월까지 8달 동안 문학부영문과 학생으로 공부하던 곳이다. 이후 윤동주는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으로 편입하기 까지 이 대학 캠퍼스에서 ‘쉽게 씌어진 시(1942.6.3.)’를 비롯하여 5편의 시를 남겼다.

▲ 교정건물을 감싼 붉어진 담쟁이가 릿쿄대학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 교정건물을 감싼 붉어진 담쟁이가 릿쿄대학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윤옥 소장께서 보내준 자료를 묶어 요약해 보면

“지금 일본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와 생애에 관심을 갖고, 과거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으며 시대와 국경과 언어의 벽을 뛰어 넘어 윤동주 시인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꾸준히 가르쳐주고 있으며 윤동주 시인의 시는 그만큼 강한 힘과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을 윤동주의 시와 생애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해를 거듭할수록 잊히는 존재가 아닌 부활하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살로 숨진 숨을 거둔지 73년 되는 해 2018년 2월 18일, “2018 시인 윤동주와 함께(詩人尹東柱とともに)” 추도회는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 대표 야나기하라) 주최로 순수한 일본인들의 추도행사가 낮 2시부터 2부로 나뉘어 1부는 추도기도와 윤동주 시 낭송이 릿쿄대학 예배당에서 열렸다고 한다.

 

▲ '2018년 시인 윤동주와 함깨한 행사'를 알려주는 팜플렛
▲ '2018년 시인 윤동주와 함깨한 행사'를 알려주는 팜플렛
▲ (사진제공, 이윤옥 소장)과 단풍이 물든 교정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 학생들
▲ (사진제공, 이윤옥 소장)과 단풍이 물든 교정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 학생들

필자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기념비가 있는지 교정을 돌고 돌았으나 발견하진 못했다. 교정을 걸으며 윤동주 시인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도 생각하고 생각해 보았다. 5편의 시를 쓸 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필자도 싶게 교정을 걸으며 이 뜻깊은 방문의 소감을 한편의 시로 남겨야 겠다고 마음속에 글을 써 내려갔다. 가을로 깊어가는 교정, 학문의 열정이 꽃피는 푸른 마음의 학생들로 푸르고 붉은 빛이 릿쿄대학 교정에 가득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밤이 깊어진 도쿄역과 도쿄역 주위, 皇居外苑을 둘러보았다. 이 역사의 현장은 깊은 적막과 건강을 챙기려 달리기 하러 나온 도쿄시민, 그리고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지나가고 있었다

▲ 도쿄역 밤의 풍경.(사진제공 고명주)
▲ 도쿄역 밤의 풍경.(사진제공 고명주)

먼저, 김지섭 의사의 이중교 투탄의 현장으로 가는 표지판이 불빛에 비치고 있었다. 김지섭(金祉燮, 1884. 7. 21~1928. 2. 20) 의사는 1884년 7월 21일 경북 안동군 풍북면(豊北面) 오미동(五美洞)에서 풍산(豊山) 김씨(金氏)인 부친 김병규(金秉奎)와 모친 신천 강씨(信川康氏) 사이에 2남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이중교에서 불행하게 투탄의 실패와 일제의 처사에 대한 항거, 굶어 죽을 자유조차 갖지 못한 김지섭 의사. 1927년 20년 징역으로 감형되어 북해도 망고(網尻) 형무소로 이감설이 떠도는 가운데 1928년 2월 20일 옥사 순국하시니 향년 44세였다.

▲ 황거외원의 표지판 역사가 깊게 숨쉬는 이중교와 사꾸라다문을 표시하고 있다..(사진제공 고명주)
▲ 황거외원의 표지판 역사가 깊게 숨쉬는 이중교와 사꾸라다문을 표시하고 있다..(사진제공 고명주)

또한 황거(皇居)에서 멀지 않은 사쿠라다문(櫻田門)에서 1932. 1.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거행되는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돌아가던 히로히토를 겨냥하여 수류탄을 던졌지만 실패하고 체포되었고 그해 10월 10일 이치가야(日谷)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또 황거가 위치한 천세대의 밭이 일컬어지는 치요다구(天代田區)는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4대문이 위치한 종로구 쯤 해당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는 우리가 일본역사에서 언급되는 건물들이 밀집해 있었다. 오랜만에 옷에 젖어도 좋는 가을비가 내리는 중에 요요기역에서 잠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적성(赤誠, 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괴수(傀首, 우두머리)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이는 이봉창 의사(1901.8.10- 1932.10.10)가 의거를 하러 떠나기 전 한 맹세이다. 1931년 상하이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 후 이봉창 의사가 이날 거사는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의사의 장거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렇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친 이봉창 의사의 주검은 1946년 서울 효창공원으로 돌아와 윤봉길, 백정기와 함께 안장되어 있다. 우리 모두 시간될 때 효창공원을 들려 애국지사의 영혼을 위로하고 걸었던 길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가지길 소망해 본다.

▲ 의거 전 태극기 앞에서 선서하는 이봉창 의사(왼쪽), 이봉창 의사 의거를 "대역사건"이라 보도한 기사 (자료제공. 이윤옥 소장)
▲ 의거 전 태극기 앞에서 선서하는 이봉창 의사(왼쪽), 이봉창 의사 의거를 "대역사건"이라 보도한 기사 (자료제공. 이윤옥 소장)

다음으로 간곳은 소위 일본의 코리아타운이라 일컬어지는 신오쿠보역에서 멀지 않은 고려박물관이었다. 구글(Google)지도의 위치안내를 받으며 박물관을 찾아갔다. 가는 길은 한국의 음식, 음악, 문화를 즐기는 일본인과 관광객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곳이 일본일까 할 정도로 한국문화가 짙은 가을 단풍처럼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K-음식, K-음악,.. K-한류로 표방하는 K문화의 바람이 다시 불고 있었다.

양국의 교류,이해, 평화를 위해 일본인과 재일교포가 만든 신오쿠보(新大久保) 코리아 타운에 위치한 고려박물관에서 하라다 교코 박물관 (前)이사장을 만나 뜻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자료와 박물관 역할도 소개를 받았다. 안중은 의사가 쓴 글씨, 우리나라 미풍양속 자료, 고대시절부터 한·일간 문화교류 자료 등도 전시해 있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리고 그 너머> 시집도 전달해 드렸고 다음 방문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함께 공유하기로 하였다.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하라다 쿄꼬 지음.(사진제공 고명주)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하라다 쿄꼬 지음.(사진제공 고명주)
▲ 한백 시인의 시집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리고 그 너머'을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쓴 히라타 교코 작가에게 증정했다..(사진제공 고명주)
▲ 한백 시인의 시집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리고 그 너머'을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쓴 히라타 교코 작가에게 증정했다..(사진제공 고명주)

하라타 교코선생의 생각이 지금 한일양국의 치유우와 화해, 평화와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너무 소중하다 생각하여 기사에 나온 책의 일부내용과 보내준 기사를 가감 없이 다시 불러내어 본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과 조선과의 교류의 역사는 깊습니다. 고대에 일본은 조선과의 교류 덕택으로 성장,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명치정부(明治政府) 이후 은혜를 입어온 조선과 중국의 존경과 감사를 잊고 아시아제국을 침략하고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지대한 고난을 주어왔습니다. 1945년 패전으로부터 75년이 지난 현재도 당시에 대해 사죄와 책임을 지기는커녕 지금은 식민지지배가 있었나? 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238~239 쪽

하라다 쿄꼬 이사장은 책의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한일 화해는 먼저 ‘사죄하는 일부터 출발해야한다’ 고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인들은 한국과의 교류의 역사를 알아야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팔순의 나이로 고려박물관에서 ‘한국과 관련된 역사, 문화의 모든 것’을 일본인에게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대표적인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인 하라다 쿄꼬 이사장은 올해 나이 81살로 그는 2002년 3월, 일본에서 장애학교 교사로 정년퇴직을 하고 그해 5월 음성 꽃동네로 달려 왔다. 93살의 노모와 가족을 남기고 퇴직하자마자 휴식도 없이 두 달 만에 그가 한국땅을 밟고 음성 꽃동네에서 반성화 치유의 실천을 하고 있는 일본인이다.

하라다 이사장의 사실에 입각한 한·일간의 역사 인식과 철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부제: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책을 통해 일본인들의 한국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이 책이 일본어이기에 한국어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출간되면 한국인들도 이 책을 많이 읽어 하라다 이사장의 '한국 사죄'의 진정한 마음을 읽을 수 있길 진정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정이 촉박하여 가 보지는 못했지만 꼭 들려할 곳이 참 많이 있다.

먼저, 황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쿄 기독교청년회관(YMCA)이 있다. 이곳은 1919년 2.8 독립선언은 한곳이며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인 3.1독립선언을 이끌어낸 위대한 장소이다.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이는 3.1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도쿄 2.8독립선언서의 일부분이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후 도쿄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청년들은 1919년 1월 도쿄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한 뒤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민족대회 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2월 8일 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과 일본정부, 일본국회 등에 발송한 다음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유학생대회를 열어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 2.8 독립선언서 원문,  한글판 《고마신사와 고마향》안내책자(자료 제공, 이윤옥 소장)
▲ 2.8 독립선언서 원문, 한글판 《고마신사와 고마향》안내책자(자료 제공, 이윤옥 소장)

다음으로는 일본 도쿄도에서 인접한 사마타현에 위치한 고마신사이다. “머나먼 2천 년 전 유구한 세월 동아시아에 일찍이 국가를 형성했던 고구려. 여러 나라들의 맹공을 저지하는 강국이면서도 예술과 문화 영지(英知)룰 남기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아름다운 나라. 먼 이국땅에서 넘어온 왕족 고구려왕 약광(高麗王 若光)을 모시며 1300년의 긴 역사를 새겨온 고마신사(高麗神社)에 아름다운 나라의 숨결이 들려온다,” 15쪽 짜리 한글판 《고마신사와 고마향》안내 책자에는 일본땅에 건너온 고구려인들의 자세한 역사와 함께 고마신사에서 모시고 있는 고구려왕 약광(高麗王 若光)과 고마(高麗)씨족의 계보 등에 관한 이야기와 고마신사에 내려오는 문화재 등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는 책자를 대신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곳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일본지역에 조선의 독립운동의 역사와 교류, 그리고 문화가 숨 쉬고 있는가!. 가나자와현의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지, 김기림 ‘바다와 나비’시비가 있는 미야기현 센다이 도호쿠 대학. 詩 ‘향수’의 장지용 시인의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 대학 교정한복판 윤동주 시인의 시비와 함께 있다. 이곳뿐이겠는가, 근대문화 시찰단인 소위 신사유람단이 걸었던 길, 수 많은 애국지사와 문학인들, 평범한 재일교포들이 만들고 있는 문화, 그리고 근래에는 뜻있는 재일본 조선족들이 만든 조선족 문화회관도 개관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추후 다시 일본을 방문하면 찾아가서 다시 글을 이어가고 싶다.

▲ 아사쿠사역에서 멀지않은 센소지, AD.628년부터 역사가 시작된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사진제공 고명주)
▲ 아사쿠사역에서 멀지않은 센소지, AD.628년부터 역사가 시작된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사진제공 고명주)

주어진 시간 안에 일본을 알기위해 역사의 인연이 닿는 곳을 찾아가 걷고 걸었다. 이 번 처럼 많이 걷고 많이 본 여행은 없었다. 그만큼 일본과 도쿄를 알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일본을 제대로 알고자 사전준비도 많이 했고 인연 따라 일본의 지방도시도 다녔다. 도쿄의 우에노, 아사쿠사, 시부야, 신주쿠, 오모테산도, 긴자, 니께부쿠로, 하라주쿠, 아키하바라 등 주요지역을 주마간등처럼 다녔지만 많은 사진을 담고 곳곳에서 느낀 마음을 글에 담아보았다. 어디를 가든 평화롭고 고즈넉한 늦가을 풍경이 반겨주었다. 또, 깨끗했고 친절하고 줄서기는 어디에도 볼 수 있었다. 코로나 예방 마스크도 철저하게 착용하고 있었다.

니카타현 가시와자키에는 일본에서 규모가 큰 동경전력 원자력 발전소가 있고 홍보관을 들렸다. 10여년간 가동이 정지되어 있었으나 홍보관은 운영되고 있었다. 정지로 인한 지역경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듣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구글지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어디에 있든 제 위치가 파악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무섭기도 한 세상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10일 여행으로 일본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들이 가보았을 길을 걸으며 젊은이들은 지금 어떠한 고민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도 하고 독립투사들이 걸은 길을 걸어갈 때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또 지금 한·일양국, 동북아시아가 평화를 위해 걸어가야 할 나름의 생각도 해보았다. 일본을 제대로 알리는 작업을 지속하는 것인 또 다른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작업이라 생각도 해보았다.

▲ 도쿄 우에노 공원의 풍경은 깊어가는 가을을 알려주고 있다.
▲ 도쿄 우에노 공원의 풍경은 깊어가는 가을을 알려주고 있다.(사진제공 고명주)

개항이후 근대화를 추진해 오던 고종은 일본에 신사유람단(조사 시찰단)을 파견하였다. 일본의 근대 문물을 조사하고 시찰해 부강한 근대국가를 만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젊은 세대들이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하여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 우리의 것을 알리고 좋은 것은 받아드려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혁신의 시찰단을 만들어 다시 보내야 한다. 일본과의 상생관계를 복원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치유와 화해의 작업을 해야할 것이다.

보고 싶었던 분을 만나 오랜만에 이야길 나누어 너무나 좋았고 우연하게 길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도 만났다. 일본의 여러 곳과 도쿄를 많이 거닐 수 있어 참 뜻 깊은 시간이었다. 추후에는 스승님이 일찍이 일본의 문화를 국내신문에 게재한 순례의 길도 걸어봐야 겠다. 오래전부터 바래온 소망이라면 예전에 니카타시에서 북조선 원산을 오고가는 배를 타고 북조선을 들어가서 역사와 산천을 보고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평양냉면 한사발 먹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 내려올 수 있는 화해와 평화의 한반도, 상생의 동북아가 어서 빨리 만들어지길 소망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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