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9코스: 조천 만세동산에서 김녕 서포구까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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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9코스: 조천 만세동산에서 김녕 서포구까지(2)
  • 김영희
  • 승인 2022.10.2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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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항일기념관 관람
-제주에 유배된 최익현, 김윤식, 박영효가 끼친 영향
-신흥리 고남 불턱
-신흥리 해수욕장과 방사탑
제주 항일기념관 내부에 있는 일제시대의 행정구역이 눈에 띈다.
제주 항일기념관 내부에 있는 일제시대의 행정구역이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조천만세동산 성역화공원 안에 있는 제주항일기념관도 둘러보았다. 일제에 의해 변형되기 이전인 1890년에 찍었다는 관덕정 모습이 인상적이다. 1924년 일제가 관덕정을 중수하면서 처마 2척이나 줄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의 행정구역도 눈에 띄었다. 그 시절 지금의 구좌읍은 구좌면이었고 조천읍은 신좌면이었다. 지금의 한림읍은 구우면, 애월읍은 신우면이었다. 좌고우면(左顧右眄)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일제가 이쪽저쪽 돌아보며 망설였던 흔적일까.

19세기 말 제주의 유림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도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면암은 대원군을 탄핵하다 제주에 유배된 분으로서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으로 신학문 수용을 반대하신 분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귤림서원 등이 폐지되면서 제주 유림들의 집합체는 와해되었다.

일본이 주도한 갑오개혁에 따른 신식 행정제도와 단발령에 반발하여 1896년 한북리(漢北里) 유생 강유석과 홍계홍 등이 민란을 일으켰다.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항일의지를 담은 집의계(集義契)를 결성하고 문연사(文淵社)를 세웠다. 이런 유림들의 정신적인 맥을 이어서 1909년 의병 항쟁과 1919년 조천 만세운동으로 전개되었다고 한다.

1906년 대마도로 호송되어 가는 최익현 선생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906년 대마도로 호송되어 가는 최익현 선생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906년 대마도로 호송되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꼬장꼬장한 사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마도에서 그는 일제에서 나는 음식은 일체 먹지않고 단식 투쟁을 하다가 돌아갔다. 자신이 품은 가치 실현을 위해 최소한의 생존권마저도 버린 것이다. 조선 시대 선비정신의 전형을 보여준다.

18세 청년 김장환이 서울 휘문고보 학생이라는 것도, 숙부인 김시범에게 서울 상황을 얘기하자 결심하여 계획하는 것도, 유림들 사이에 명망이 높았던 김시우의 기일인 3월 21일을 조천 만세운동 거사일로 택한 것도 여기서 알게 되었다.

김윤식과 박영효 등 개화 사상가들이 제주에 유배되어 개화사상이 전파되었다. 제주에 근대교육과 계몽 운동이 전개되어 근대 교육을 받은 새로운 지식인층이 등장한 것이다. 최익현, 김윤식, 박영효 등이 끼친 영향은 제주의 민란, 의병, 만세운동의 배경이 되고 있다. 조천만세운동이 1차에서 4차에 걸쳐 이루어진 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어른들도 전부를 읽고 이해하려면 힘들고 지루할 것 같다. 어른들과 또한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하여 재미있고 쉽게 풀어놓은 것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탁 트인 정자에서 바라본 관곶을 향하여 난 해안도로의 모습이다.
탁 트인 정자에서 바라본 관곶을 향하여 난 해안도로의 모습이다.

항일기념관 옆길로 나오면 밭들이 이어지고 포장, 비포장 밭길들이 펼쳐진다. 걷다 보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길게 이어진 해안도로를 가다 보면 언덕 위에 정자 하나가 있다. 정자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전망이 바다와 함께 눈을 시원하게 한다. 사진 몇 컷을 찍고 내려와 다시 길게 뻗은 해안도로를 걷는다. 신흥리에 위치한 고남불턱이 나온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추위도 녹이며 바다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았던 신흥리에 있는 고남 불턱의 모습이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추위도 녹이며 바다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았던 신흥리에 있는 고남 불턱의 모습이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할 때 옷도 갈아입고 추위도 녹이고 서로 대화를 하며 정보도 주고받는 곳이다. 이곳에서 해녀들은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 요령, 어장의 위치 파악 등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와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했다. 조금 더 가니 관곶이다. 조천관이 있던 시절 조천포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곶이라는 뜻이다. 제주 울돌목이라 할 만큼 물살이 아주 드세다. 제주도에서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까운 거리(83km)다.

밀물 속에 잠겨 있는 신흥리 백사장 방사탑 두 개가 지친 여로를 달래주는 것 같다.
밀물 속에 잠겨 있는 신흥리 백사장 방사탑 두 개가 지친 여로를 달래주는 것 같다.

관곶을 벗어나 흙길을 걷다 보면 신흥리 해수욕장이 나온다. 가족과 친구, 연인들과 함께 온 관광객들의 수많은 텐트가 진을 치고 있다. 밀물이라 백사장에는 가득 물이 들어와 있다. 물속에 솟아있는 방사탑 두 개가 지친 여정를 달래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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