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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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국
  • 한복섭
  • 승인 2021.11.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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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수국(Tagetes erecta)

                                            시인, 수필가 한 복 섭

 

시인, 수필가 한 복 섭
시인, 수필가 한 복 섭

이른 아침, 눈을 뜨고 유리창 너머로 하늘을 쳐다봤다. 가끔은 엷은 구름이 있었지만, 조금 있으려니 구름이 걷히고 파란 봄 하늘을 보게 돼서 마음이 상쾌했다.
  간밤에 봄비가 와서 그랬는지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거리를 달리는 데 온 동네가 봄비로 씻어 내려 정겨운 돌담길 하며, 잘 포장된 마을 안길이 생명력으로 빛나 는 푸른 하늘을 대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자고 난 이부자리를 아내와 같이 개키고 집 안 청소를 하여 의자에 앉아서 아내가 끓여다 준 짙은 커피 향기를 맡으며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아내가 며칠 있으면 봄철, 나들이 갈 때 끼고 갈 안경 태에 때가 끼어있어 가까운 안경점에 가서 묻은 때를 닦아와 달라고 한다.
  깨끗한 성품을 지닌 아내로서 오늘같이 좋은 봄날에 청결한 마음을 지니고 싶어서 그러려니 하며 사랑스러운 아내의 신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시원스럽고 탁 트인 거리를 달리고 있다.
  몇 분 안 돼 화북동 뉴 월드마트에 들어섰다. 아침 손님들로 마트 안은 분주히 오가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 층 안경점에 들어서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태를 닦아 달라하기에 그랬다. 얼마 안 되는 돈을 진열장 위에 넣고 나서야 마음의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되돌아오는 마을안길이 아침에 올 때처럼 여전히 상쾌하다.
  싱그러운 봄날, 활기찬 거리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얼마쯤 지나왔을까, 문득 꽃에 대한 생각이 났다. 이처럼 밖에 나오기도 쉽지가 않은 터라 나온 김에 꽃집에 들러 꽃씨를 사서 화분에 뿌리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요즘 어느 거리를 다녀 봐도 한라산 자락의 아름다운 꽃들이 마을 길가에까지 내려온 듯, 연분홍 진달래, 철쭉꽃, 봄꽃들이 마을 거리마다 돌담 틈새로 다복하게 피어있어서 오월에 봄 향기가 넘쳐난다. 그래서 나온 김에 내 마음속에 꽃 씨앗을 심고 싶은 마음이 꽉 차 있다.
  어릴 적부터 너무나 꽃을 좋아해서 자라왔다. 옛날 고향 집에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우리 집에만 큰 화단이 있었고, 오늘 같은 봄날이면 그 화단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 어머니와 작은 누나가 화단을 가꾸던 모습, 고향 집에서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꽃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다 보니 세상의 자연을 바라보는 생각도 남달라서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있지 않나? 하는 자신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보곤 한다.
  몇 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마을 길을 돌아다니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제주시 도련동, 이 마을은 요사이 구획정리가 한창이고, 집 집마다, 정원 없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원의 도시처럼 잘 꾸며져 있어 무척 마을이 아름다워졌다. 그래서 나도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 몇 종류의 꽃을 화분에 심어놓고 있어 매일 아침이면 자식을 돌보듯이 녀석들에게 물을 주고 새 생명을 키워내고 있다.
  꽃집엘 들렀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예쁜 꽃들이 너무 많아서 어느 한 녀석을 고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뭔가를 생각하다가 주인더러 가을날의 피는 청아하고 순결함과 같은 국화과의 ‘만수국’의 씨앗을 선택하여 붉은 송이를 조금 사 들고 와서는 고운 마음으로 화분에 꽃씨를 뿌려 놨다.
  따뜻한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꽃이 피고 내 마음의 밝고, 더없는 기쁨과 미소를 머금는 날이 오리라는 생각을 하니 사뭇 마음이 설렌다. 게다가 열아홉 순정 아가씨의 가슴마냥, 마음 또한 부풀어 있다.

  “내 나이를 묻지 마세요.”
  꽃의 원산지는 ‘멕시코’산인데다가 꽃말은 “질투하지 마세요.”라고 파란 글씨로 써 저 있다. 그러고 보니 먼 데서 온 밝고 미소를 띤 ‘만수국’이라 다른 꽃들이 시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녀석들이 서로 시기하여 꽃을 피워낸다면 더욱 아름다운 꽃들로 이 세상을 밝게 비추라는 생각을 하며 벌써부터 나의 얼굴엔 함박웃음이다.
  “유월이 되면, 어느 날 아침, 소녀는 순박한 자태로 곱게 피어 고마운 임 찾아뵙겠습니다.” 화답하며 꽃피울 그날을···.
자연과 꽃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도 이 땅 위에 퇴색되어 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청지기 역할을 다하며 아름다운 사랑의 샘솟는 ‘만수국’과 같은 밝고 환한 세상을 만들어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저녁노을이 붉게 지는 창가에 또다시 앉았다. 오늘같이 뜻있고 보람과 행복이 있어 좋은 봄날, 방금 아내의 목소리가 창 너머로 들려온다.
  “여보 상 차려놨으니 저녁 식사마저 드시고, 아름다운 꽃 이야기의 글을 쓰세요.”
  “오늘 하루도 내게 주어진 삶에 있어서 고맙습니다.”라고···.
                                                        (202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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