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0코스: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서 하모체육공원까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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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0코스: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서 하모체육공원까지(5)
  • 김영희
  • 승인 2021.03.29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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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년제의 송악산, 가파도와 마라도
김영갑 선생과 마라도
다크 투어리즘의 성지 모슬포
찔레꽃같은 모슬포와 섯알오름 양민 학살터
김경훈 민중시인의 시 '섯알 오름길'과 조각 설치작가 최평곤의 작품 '파랑새'
수많은 리본의 비행기 격납고와 '결7호 작전'의 희생양 제주도
참다운 평화란
송악산 목재계단에서 바라본 가파도와 마라도. 가파도 너머 마라도가 조그맣고 희미하게 보인다.
송악산 목재계단에서 바라본 가파도와 마라도. 가파도 너머 마라도가 조그맣고 희미하게 보인다.

송악산은 휴식년제라서 올라갈 수 없었다. 올 7월 말까지다.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이는 전망대의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하멜이 쓴 <하멜표류기>에 ‘케파트(Quelpart)’로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된 가파도는 이곳에서 5.4km 떨어진 곳에 있다. 마라도는 우리나라 국토 최남단에 있는 한반도의 끝이자 시작인 섬이다. 원래는 산림이 울창했었는데 화전민 한 사람이 달밤에 퉁소를 불다 뱀들이 몰려오자 불을 질러 숲을 다 태우고 지금은 허허벌판이 되었다는 일화가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마라도를 쳐다보면서 올레 3코스에서 만났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의 김영갑 선생이 쓴 글이 생각났다. 마라도가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 설날에는 섬사람들이 본섬으로 설 새러 다들 나가기 때문에 텅 빈 마라도를 홀로 독차지 하며 보냈는데 그때 본 밤하늘의 별들을 잊을 수 없다는. 언젠가 마라도에 가족들과 같이 가서 1박 하면서 마라도의 초롱초롱한 밤하늘 별들과 아침 일출, 저녁 낙조를 꼭 보고 싶다. 둘레가 천오백 미터밖에 안 되는 해변 잔디밭 길도 거닐고 싶다. 한반도를 생각하며 한반도의 끝이자 시작을 느끼고 싶다. 개발이 많이 된 것 같아 옛날 김영갑 선생 때만큼 못 할지는 몰라도.

왼쪽으론 바다에 떠 있는 가파도와 마라도를 보면서 오른쪽으론 걸음마다 달리 펼쳐지는 송악산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목재 계단을 걷다 보면 어느덧 출구에 이른다. 20여 분 더 걷다 보면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코스이기도 한 일제시대의 셋알오름 고사포 진지가 나온다. 미군 항공기 공습으로부터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 시설로서 태평양 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저항 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섯알오름 양민 학살터로 가는 길에는 유채꽃과 찔레꽃들이 만발하였다. 수확되지 않은 무는 탐스럽게 몸을 내밀고 있었다. 들장미라고도 불리며 가시가 있어 찔리는 그래서 찔레꽃.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에 나오는 ‘하얀 꽃, 순박한 꽃,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꽃 찔레꽃’. 왠지 노랫가사처럼 모슬포의 옛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 같은 꽃이다.

섯알오름 양민 학살터는 한국 전쟁 때 낙동강 방어 전선까지 전황이 몰렸을 당시 예비검속에 걸린 250여 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후방에서 북한군과 결탁할 수 있다는 구실로 집단 학살된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탄약고로 쓰이다가 미군에 의해 폭파된 탄약고 터에서.

 

섯알오름 양민 학살터에서 동서로 길게 뻗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면 최평곤 작가의 대나무로 만든 소녀상이 파랑새와 함께 허허벌판 알뜨르 비행장을 굽어 보고 있다.
섯알오름 양민 학살터에서 동서로 길게 뻗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면 최평곤 작가의 대나무로 만든 소녀상이 파랑새와 함께 허허벌판 알뜨르 비행장을 굽어 보고 있다.

 

   트럭에 실려 가는 길

   살아 다시 못 오네

   

   살붙이 피붙이 뼈붙이 고향마을은

   돌아보면 볼수록 더 멀어지고

 

   죽어 멸치젓 담듯 담가져

   살아 다시 못가네

 

   이정표 되어 길 따라 흩어진 고무신들

   전설처럼 사연(死緣) 전하네

 

   오늘은 칠석날

   갈라진 반도 물막은 섬귀퉁이 섯알오름

 

   하늘과 땅, 저승과 이승 다리 놓아

   미리내 길 위로 산 자 죽은 자 만나네

 

   녹은 살 식은 피 흩어진 뼈

   온전히 새 숨결로 살아 다시 만나네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뒷면에 새겨져 있는, ‘강정은 4.3이다’고 말하며 강정과 4.3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는 김경훈 민중 시인의 시 ‘섯알 오름길’이다. 그 당시 정황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신분 확인이 가능한 시신은 개인 묘지에, 그렇지 않은 시신은 백조일손 묘지에 안장되었다. 백조일손(百祖一孫)! 조상은 모두 다른데 후손은 같은 하나라는. 그곳에서 동서로 길게 뻗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면 동학 농민군의 죽창에서 영감을 얻어 쪼갠 대나무로 엮어 만들었다는 높이 9m가 되는 소녀의 손 위에 앉아 있는 파랑새와 대화하는 것 같은 대형 조형물이 있다. 조각 설치작가 최평곤의 ‘파랑새’ 작품이다.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한다.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우리가 못 찾는 것일까.

격납고 안의 일본 전투기 비행기 모형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써 놓은 리본이 매달려 있다.
격납고 안의 일본 전투기 비행기 모형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써 놓은 리본이 매달려 있다.

주변에는 밭 한가운데 비행기 지휘소 같은 지하 벙커도 있고 비행기 격납고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일본 본토에서 가장 많은 격납고를 가졌다는 11기의 모바라 항공기지보다 무려 세 배나 더 많다. 38기 중 19기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모형 일본 전투기에 관람객들이 쓴 수많은 리본들이 매달려 있는 격납고도 있다. 큰길을 벗어나 밭 사이 샛길로 가다 보면 앙상한 흔적만 남아 있는 관제탑이 서 있다. 그 옆에는 어련히 짐작할 수 있는 시멘트 바닥이 남아 있는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도 보인다.

일본 본토(결1호~결6호 작전) 이외에서는 유일하게 제주도에서 행해졌다는 ‘결7호 작전’으로 인한 상흔들이 제주도 곳곳에 있다. 올레 9코스의 월라봉, 10코스의 산방산과 송악산을 비롯하여 1코스의 성산일출봉, 7코스의 황우지해변, 대평리의 군산, 제주시의 사라봉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남아 있는 일제 동굴 진지들. 제주의 오름 3분의 1에 해당하는 120여 군데에 있다고 하니 할 말을 잃는다. 또한 아름다운 관광지마다 있는 4.3의 희생자 묘비들. 그리고 여기 모슬포에서 맞이하는 6.25 전쟁의 흔적까지. 제주의 역사는 슬픔과 고통, 상처로 얼룩져 있다.

그래서 더더욱 평화가 필요하고 평화를 더 외쳐야 하는 곳이 되었을까. 그러나 그 평화는 현실을 직시하며 올바르게 모든 것들을 해결할 때 가능한 것이리라. 그럴 때 파랑새가 우리 곁으로 날아 올 것이다. 허허벌판처럼 펼쳐진 모슬포 밭길들 사이를 반 시간 정도 걸었다. 마치 광야의 한 수도승이 된 것처럼. 거센 바람 때문에 살기가 힘들어 못살포라고도 불리는 모슬포의 바람을 맞으며 상념에 젖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통치자란 무엇인가. 통치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어느덧 예전에 멸치가 많이 잡혔다는 하모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그 곁에 있는 운진항에서 20여 분 더 걸어 가니 종점인 하모체육공원이 올레 안내소와 함께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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