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5코스: 한림항에서 고내 포구까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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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5코스: 한림항에서 고내 포구까지(4)
  • 김영희
  • 승인 2021.07.12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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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사람들
경계가 중요하다!
마을, 고장, 지역 경계의 표시
친구같은 신고 위치 표지판의 고마움
납읍리 설촌 유래
경계에 선 길을 걷다 보면 묘한 감정이 인다.
경계에 선 길을 걷다 보면 묘한 감정이 인다.

시원한 물과 그늘을 제공해준 선운정사를 나선다. 불교용품 판매대에서 가르쳐준 아저씨 말마따나 선운정사를 나서면 올레길이 금성리와 봉성리의 경계 길이다. 묘한 감정이 인다. 경계에 선 한 사람의 올레꾼! 긴장감이 있다. 휴전선 경계에 선 보초병, 나라와 나라 사이 국경 경계에 선 경계병, 아파트 입구 외부세계와의 경계에 선 경비원.

그래서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을까. 외부세계와의 차단과 교류를 하는 제일전선이다. 긴장감이 도는 곳이고 가장 기초가 되는 곳이다.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며 마음을 다지게 된다.

서로 다른 나라, 사람, 문화, 지식이 충돌하는 지점이라서 그럴까. 적의 동태, 다른 나라의 움직임, 외부세계의 흐름을 가장 먼저 맛보고 알 수 있는 곳이 경계다. 늘 깨어있어야 한다. 지식의 세계에서도 경계에 서면 묘한 긴장감이 있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 좌와 우의 경계, 음과 양의 경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 자본주의와 탈자본주의의 경계. 경계에 서야 양편이 바르게 보인다. 경계에서 잘 조율해야 한다. 정신(이념)과 실제(실천)가 잘 조화를 이루게 그 상황과 시대에 맞게 법과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한편으로 치우치지 말고 늘 경계에 서자!

곽지리 과오름이 보이고 그 너머 어렴풋이 고내리 고내오름도 보인다.
곽지리 과오름이 보이고 그 너머 어렴풋이 고내리 고내오름도 보인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인데 작은 마을의 경계 표시는 잘 되어있다. 마을보다 큰 고장이나 지역의 경계 표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면 한경면과 대정읍의 경계 표시, 서귀포와 제주시의 경계 표시 정도는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를 걷고 있는가를 알면서 걷는 것은 중요하다. 경계를 넘어가는 마음이 쏠쏠할 것 같고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서 좋을 것 같다.

20여 분 걸어가니 공사하다 남은 시멘트로 메운 듯한 언덕이 있다. 곽지리 과오름이 보이고 그 너머에 고내오름이 보이는 곳이다. 고내오름 앞에는 올레 15코스의 종점인 고내 포구가 있다. 제주도에서 고내오름에 막혀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다. 차 한잔을 하면서 지친 발을 보듬는다.

밭길을 따라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지나면 중산간 서로가 나온다. 바닷가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올레 안내 책자에는 납읍숲길이라고 소개된 곳이 나온다. 사유지인데 통과할 수 있어서 주인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밖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의 맛이 있다.

15코스 곳곳에 있는 신고 위치 표지판은 걷는 발걸음을 든든하게 해준다.
15코스 곳곳에 있는 신고 위치 표지판은 걷는 발걸음을 든든하게 해준다.

올레 15코스를 걷다 보면 제주 서부 경찰서의 신고 위치 표시판이 곳곳에 보인다. 지금 걷고 있는 위치가 번호로 새겨져 있다. ‘이곳의 위치(번호)를 112로 신고하시면 신속히 출동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좀 외진 곳을 걷고 있을지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납읍숲길을 통과하는데는 5, 6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잘 포장된 도로가 나오고 10여 분 걸어가면 금산 공원이 나온다. 천연기념물 제375호로도 지정된 ‘제주 납읍리 난대림 지대’라고도 소개되고 있는 공원이다. 곽지리를 지나 납읍리로 넘어 온 것이다.

납읍리는 구릉으로서 분지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주변 마을로서도 분지를 이루고 있다. 납읍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 2km 이내에 곽지, 애월, 고내, 상가, 하가, 어음, 봉성 7개 마을이 있다. 그래서 ‘들일 납(納)’자를 써서 납읍리(納邑里)다. 1300년경에는 곽지리 남쪽에 있는 동네로 곽지남동(郭支南洞), 줄여서 곽남이었다가 납읍리로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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