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5코스: 한림항에서 고내 포구까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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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5코스: 한림항에서 고내 포구까지(3)
  • 김영희
  • 승인 2021.07.0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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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과 호박에 얽힌 정약용 선생의 시
다음을 기약한 석조약사여래좌상
가볍게 들리는 설문대 할망 소원 돌
올레 길 양 옆으로 옥수수 밭들이 보인다.
올레 길 양 옆으로 옥수수 밭들이 보인다.

호박밭과 수박밭을 보며 지나다 보니 정약용 선생의 시가 떠오른다.

 

   새로 토해낸 호박의 두 잎이 살이 찌더니(新吐南瓜兩葉肥)

   밤이 오자 넌출을 뽑아 사립문에 올랐다(夜來抽蔓絡柴扉)

   일평생 수박 농사는 짓지 마라(平生不種西瓜子)

   사납고 두려운 관청 노비들이 시비를 일으키리라(剛拍官奴惹是非)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어도 정승이 죽으면 조객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보다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더 날뛰고 기승을 부리나 보다.

한림읍과 애월읍 경계에 있는 길에서 선운정사까지는 30여 분 걸린다. 옥수수밭들도 보이고 더러는 취나물을 심은 밭도 보인다. 선운정사를 향하여 걸어간다. 절 뒤에는 어도 오름이 있다. 그 너머엔 어도 초등학교가 있고. 선운정사 옆으로 금성천이 흐르는 데 금성천을 경계로 서쪽은 금성리, 동쪽은 봉성리라고 한다. 또한 선운정사에서 나서면 올레길을 경계로 바닷가 쪽은 금성리, 한라산 쪽은 봉성리라고 한다. 올레길 위에서 경계를 거니는 셈이다.

대웅전에는 들어갔지만 유명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보이지 않았다. 무더위에 넓은 경내를 다음에 찾아보기로 했다.
대웅전에는 들어갔지만 유명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보이지 않았다. 무더위에 넓은 경내를 다음에 찾아보기로 했다.

선운정사에 있는 제주도 문화재 자료 제10호로 지정되어있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시대의 복합상을 보여줘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통일 신라 이후 조선 시대까지 약사여래 신앙이 백성들 사이에 널리 펴지면서 전국에 수많은 약사여래상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선운정사처럼 불상과 광배, 연화대가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더위에 취했나 보다. 정수기의 시원한 물을 얻어 마시니 더위가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듯 대웅전에서 불상이 보이지 않자 너른 선운정사 뜨락을 돌아다니며 찾아보는 것이 귀찮아졌다.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하다가 절문을 나섰다. 다음에 한 번 시간을 내어 선운정사 넓은 마당을 거닐며 찾아보리라. 내친김에 어도 오름도 한 번 올라보고.

 

설문대 할망 소원 돌. 들어봤지만 정성이 부족했는지 가볍게 들렸다.
설문대 할망 소원 돌. 들어봤지만 정성이 부족했는지 가볍게 들렸다.

입구에 설문대 할망 소원 돌이 있었다. 제주도의 돌 신앙은 돌에 조상의 영혼,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근대화의 여파로 사라져 가는 돌 신앙을 제주에서는 선운정사에서 최초로 복원했다고 한다.

소원을 비는 방법에 써진 대로 해보았다. 두 손바닥으로 돌을 감싸 쓰다듬으며 설문대 할망의 온기를 느낀다. 5cm가량 들어 올린 뒤 제자리에 놓는다. 두 손을 모아 마음을 편안히 하고 합장한 다음 자신의 인적 사항을 말하고 돌을 들어 올린다. 돌이 무거워 잘 들리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질 징조이며 가볍게 들어 올려지면 정성이 부족한 것이라 한다.

무거워진 것은 설문대 할망의 기운인가 보다. 염원과 정성이 부족했는지 돌이 가볍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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