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그리고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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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그리고 겨울밤
  • 한복섭
  • 승인 2019.12.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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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 그리고 겨울밤  

                                                                                       시인. 수필가 한 복 섭

   밤이 깊어간다. 섣달 초닷샛날 밤이···.
 
이맘때쯤이면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교회의 성탄 축하 성가대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새벽 송을 부르며 집 집마다 돌아다니며 부르던 그 여운이 남아 고요를 깨침직도 한데 거리에는 질주하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로 가득하고 왠지 마음은 얼어붙어 삭막하기만 하다.
 
1950~60년대 어렸을 때의 일이다.
 
~~땡 새벽이 가까이 옴을 알리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 들으며 자라나던 추억이 있다. 시골 고향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두 곳의 예배당에서 매일 아침, 이른 새벽이면 들려오던 종소리가 여운을 타고 들려온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에는 정을 쏟아준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카드 하나 손에 들고 사랑하는 연인이나 친구에게 보내고 싶을 때 우리의 마음을 선하게 울려 많은 위안과 그리움이었던 새벽 종소리다.
 
시계가 거의 없던 시절, 교회를 섬기던 사람이 던 섬기지 않던 사람이던 먼동이 틀 무렵 시간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 새벽밥을 지었고 아버지는 서둘러 직장으로 출근길, 형 누나는 등굣길로 나섰다.
 
은은한 종소리는 이른 새벽과 노을이 지는 저녁이면 평화롭게 잠들던 시골 마을은 봄이면 연둣빛으로 순진한 아이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희망이 소리요 사람의 손으로 흔들어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워 울려주던 소리였다. 한데 지금은 그 종소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매주 일요일이면 둘째 누나의 손을 잡고 교회로 따라나선 적이 있다. 참으로 좋았다. 매주 일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세월 살았다. 이날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 나가서 기도를 드리고 찬송가를 힘차게 부르고 벗들과 어울리는 게 정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간 해가 비끼고 저녁이 돼서야 집으로 와서는 누나께서 손과 발을 깨끗이 씻어주고 차려준 저녁밥 먹고 방에서 놀다가 누나가 들려주는 자장노래 속에 포근하게 잠을 잤던 날들-.
 
세월의 흐른 오늘이 지금(只今)! 문명이 이기는 생활의 편리함을 준다는 현대, 메카니즘의 도시의 생활 속, 소음 공해라는 이유로 한 시대의 세월 속에 묻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여운으로 남긴 채 더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때로는 거리를 지나다 십자가 우뚝 서 있는 교회의 건물을 바라볼 때면 우리들에게서 고유의 운치마저 빼앗아 가버린 지난 어린 날의 겨울 추억들. 빅톨위고의 노틀담의 꼽추라는 세계의 명화 속 종직이가 세상 사람의 영혼을 깨우기 위해 힘껏 내리치는 성당의 종소리, 크리스마스 전날 밤의 성도님들의 한 해의 행복을 빌어주는 새벽 송, 못내 아쉬움을 남기며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렸다.
 
집에서 쉬고 있는 일요일이면 한 번쯤은 먼 데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 들으며 우리의 영혼이 깨어남직도 한데, 그러하던 날이 사뭇 그립다.
 
조용히 서재에 창문을 닫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 옛날엔 그랬다. 밤늦도록 부스럭거리며 소리 내어 신문이나 야담 전집을 읽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추녀 끝에 낭랑히 메어 달릴 때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집어 삼켜버리고 골목길로 슬금슬금 퍼져나가곤 했다.
 
거기에 하모니를 이루듯 뒤뜰 고목 나무에선 태고의 순성을 터뜨렸고 시골집 초가지붕에 걸터앉은 듯한 섣달 초생 달빛은 그저 평화롭게도 히죽히죽 거리는데, 그러다간 아버지께선 얘야하고 부르셔서는너 부엌에 가서 시원한 무 한 개를 꺼내오렴.”하고는 곧잘 말씀하셨다.
 
그러면 난 읽던 성경책을 접어두고 이죽거리며 나아가 무를 꺼내 와서는 식칼로 껍질을 깎아서 시원한 무 쪽을 아삭아삭 거리며 먹었던 일이 생각이 난다.
 
요즈음 같았으면 의례것 마트 같은 곳에 가서 새우깡이나 맛동산을 사들고 와서는 먹었겠지만, 그때의 그러하던 시절이 어쩜 그렇게도 즐거웠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대 문명은 너무나도 많은 옛날을 앗아가 버렸다.
 
화롯불 가에서 오순도순하던 식구들의 정담도 사라졌다. 컴퓨터와 TV가 가로채어서는 마음을 제각기 갈라놓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마저 슬쩍 따돌려 화면에 모든 시선을 쏟도록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이기주의자가 되게 하였다.
 
상보(床褓)에 학() 을 수놓던 처녀의 순진함은 시류(時流)에 의하여 통금 오 분 전에 스스럼없이 부저를 누르게 하였고 여관은 하룻밤 묵어가는 길손의 객잔이 아니라 사랑의 제이의 장소로서 체모를 바꾸었으니 이름하여 현대(?) 현대는 고독을 낳았다.
 
아내도 자녀도 TV하고 사는 듯 날이 갈수록 따뜻한 보일러 방 짊어지고 옛날옛날 그 옛날을 듣고 구수함도 사라진 지금이 한없이 허허롭기만 하다.
 
문풍지 바르르 떨던 그 밤에 인자하신 어머니는 헤어진 양말 쪽 들고 석유 등잔불 밑에서 뽀얗게 긴긴 겨울밤을 새우셨는데···.
 
겨울밤엔 그래도 인정이 익었는데 이 밤 서러운 것은 잊혀져가는 그 옛날의 운치가 그리워서 이리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섬기고 있는 교회 형제들이 살고있는 아파트 현관에까지 이르러 복섭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고 발길을 돌릴 때면 난 꿈과 낭만이 부풀었고 육신이 병든 몸인 나는 위안을 받고 새벽 송처럼 종소리처럼 한없이 울었다.
  올해 정초엔 고향의 옛 어른을 찾아가 절하고 묵은 정이라도 나누어야 할까 보다.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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