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포 김구 선생 전북-제주 교류 학술 세미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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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포 김구 선생 전북-제주 교류 학술 세미나 개최
  • 유태복 기자
  • 승인 2023.12.01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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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포 김구(金坵, 1211-1278) 고려시대,
문신 학자, 17살 과거급제
1234년고종21~고종26년까지 제주판관 5년 근무
김구(金坵)의 밭담 시책에 담긴 휴머니즘

지포 김구 선생 전북-제주 교류 학술 세미나가 11월 28일(화) 오후 2시부터 29일까지 개최하여 성료됐다.

이 행사는 전라북도가 주최하고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가 주관하고 제주특별자치도가 후원하였다. 첫날은 제주시 연동 신라스테이호텔(3층 세미나실)에서 진행됐는데, 김경학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과 김정기(전라북도의회 도의원은 유튜브 영상과 같이 인사말이 있었다.

김관영 전라북도지사,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국주영은 전라북도의회 의장은 "오늘날 밭담은 현재 제주도의 명물이자.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라고 지면으로 축사를 남겼다.

이어 발표에 김순이 (전 제주문화원)원장은 ‘제주 판관 지포 김구의 업적과 성과’라는 주제로 영상과 같이 발표했다.

김동호 (문정공 지포 김구기념관) 관장은 ‘지포 김구 관련 유적을 통한 전북·제주 교류사 검토’라는 주제로 영상과 같이 발표했다.

이어 종합토론시간이 마련되어 좌장에 문영택 질토레비 이사장이 리더가 되어 진행했으며, 토론자는 강민경(제주국립박문관) 학예연구사, 김진돈(전라북도문화제위원)전주문화원 사무국장, 김동호 관장, 김순이 원장, 관객 등이 유튜브 영상과 같이 심도 있는 토론시간을 가졌다.

둘째 날은 김세연 제주도 학예연구사 안내로 제주시 삼양동 한라마을작은도서관 소재 제주판관(濟州判官) 김구(金坵)의 공적비 및 제주 지포 김구 기념관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답사하며 일정을 성공적으로 종료 했다.

김순이 원장의 발표문에 의하면 지포 김구(金坵, 1211-1278)는 고려시대, 고종·원종·충렬왕 때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그는 17살에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총명했으며 문장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1234년(고종 21) 고려의 변경인 제주의 판관으로 좌천돼 와서 1239년(고종26)까지 5년간 근무했다. 제주판관은 현재의 제주시장 직에 상당한다. 그의 나이 24세였다.

당시 제주도의 상황을 살펴보자. 제주는 탐라국에서 고려에 복속되어 고려조정에서 관리가 파견돼 와 행정을 폈으나 탐라의 왕족과 귀족들, 고위관리 계급이 아직도 백성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군림하여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김구가 제주판관으로 왔을 때 행정 상관인 제주 부사(副使, 현재의 제주도지사 직에 해당)는 최자(崔滋, 1188-1260)였다. 그는 『보한집』의 저자로 이규보와 함께 고려시대 대표적인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최자의 나이는 47세로 김구와는 23세의 나이차이가 있었다. 최자는 김구의 어렸을 적부터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며, 제주에서 같이 근무할 때 에피소드가 있다. 서울의 과거 시험장의 문제가 매우 어려웠는데 이 제목을 입수하자 최자는 김구에게 글을 청했다고 한다. 김구는 심상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바로 문장을 지었는데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문장이었다고 한다. 최자는 아들에게 “이 글은 준승(準繩; 기준이 되는)이니 잘 간직하라.” 했다. 김구의 실력을 바로 인정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매우 중요하다. 상관인 최자는 김구 판관이 밭담 시책을 폈을 때 그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패기를 전폭적으로 밀어줌으로써 성공한 시책으로 자리 잡게 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줬던 것이다.

김구 판관이 부임해 보니 밭의 경계 관련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강포한 토호들에게 밭의 경계를 누에가 뽕잎을 먹어가듯이 잠식당해 결국 토지를 빼앗겼다는 백성들의 하소연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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