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21코스: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종달바당까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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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21코스: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종달바당까지(5)
  • 김영희
  • 승인 2023.11.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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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해안가를 돌아 지난번 멈추었던 올레길까지 가는 길
'생개남 돈짓당'과 종달리의 자연 불턱들
지미봉 뒷길과 정상에 펼쳐진 풍경
지미봉을 내려와서 마주친 새들의 천국
제주올레 마지막 코스의 쓸쓸함과 고도원의 아침 편지
종달리 해녀들과 어부들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해신당인 '생개남돈짓당'은 갯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와 나무를 그대로 신석과 신목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종달리 해녀들과 어부들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해신당인 '생개남돈짓당'은 갯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와 나무를 그대로 신석과 신목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지난번 올레길은 하도리 창흥동에 있는 철새도래지 다리를 건너서 멈추었다. 종달초등학교 곁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201번 버스를 하차했다. 종달리 바다 해안가를 돌아 지난번 멈추었던 곳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곳까지 1시간 반이나 걸렸다. 1800년대부터 두문포라고 불렸던 종달항을 거쳐 어부와 해녀들이 물질 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해신당인 ‘생개남돈짓당’도 지났다. 갯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와 나무를 신석(神石)과 신목(神木)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동그란 밭 불턱은 종달리에 위치한 자연 불턱이다. 갯가에 있는 여(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가 동그란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그란 밭 불턱은 종달리에 위치한 자연 불턱이다. 갯가에 있는 여(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가 동그란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자연 지형을 잘 이용한 종달리 불턱들도 볼 수 있었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어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물질 작업 도중에 쉬기도 하는 공간이다. 벳바른(볕이 잘 드는) 불턱, 동그란 밭 불턱, 고망난(구멍난) 돌 불턱, 돌청산(성산일출봉과 비슷하게 생긴 돌) 불턱, 회길이네 못(회길이란 주민이 경작하던 밭의 못) 불턱, 독터럭 밭(닭깃털처럼 생긴 밭) 불턱을 차례로 지났다. 불턱 이름들이 정이 가고 친근감을 준다. 하도리 해녀들 못지않은 종달리 해녀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지난번 멈추었던 올레 길에 닿자 지미봉이 더 가까워 보인다.
지난번 멈추었던 올레 길에 닿자 지미봉이 더 가까워 보인다.

독터럭 밭 불턱을 지나자 지난번 멈추었던 올레길에 닿았다. 지미봉이 더 가까워 보인다. 밭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오름 군락들을 바라보며 2, 30분 걸으니 어느새 지미봉 중턱이다. 지난해 왔을 때와 비슷하다. 걷는 도중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적막하다. 새소리조차 없다. 헐떡거리며 오름을 올랐다. 10여 분 걸었더니 정상이다. 성산 일출봉, 우도, 식산봉이 한눈에 펼쳐진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동안의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지미봉 앞 종달리와 지미봉 뒤 종달리는 딴 세상 같다. 인적이 드문 지미봉 뒷길을 걸으며 적적하고 센티멘털했던 가슴이 탁 트인 광경을 보니 금세 풀렸다. 마음도 명랑해지고 릴랙스해졌다. 누군가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진다.

 

지미봉 정상에 오르자 저 멀리 우도와 성산 일출봉, 식산봉이 한눈에 펼쳐진다. 누군가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
지미봉 정상에 오르자 저 멀리 우도와 성산 일출봉, 식산봉이 한눈에 펼쳐진다. 누군가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

지미봉은 비고 160m의 오름이다. 조선 시대에는 정상에 정의현 소속의 지미망(指尾望)이라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정상을 내려와서 성산 일출봉과 제1코스의 말미오름이 보이는 종달리 해안가를 걷다가 다시 불턱을 만났다. 할망집 알(영등할망을 모셨던 집 아래) 불턱, 방망세기 불턱-종달리의 유일한 인공형 불턱-이다. 불턱을 지나니 새들의 천국이다. 지미봉 뒷길에서 들리지 않아 안쓰러웠던 새소리를 이곳에선 하늘에서 쏟아지는 생생한 사운드로 듣는다.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아기자기한 새들 모형들이 집안에 가득한 딸이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새들을 좋아해서 새처럼 세계 곳곳을 날아다니려 했지만,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날개를 접어 지금은 서울에 둥지를 튼.

 

할망집 알 불턱과 방망세기 불턱을 지나자 새들의 천국이다. 아기자기한 새들 모형이 집안 가득한 딸이 갑자기 보고 싶다.
할망집 알 불턱과 방망세기 불턱을 지나자 새들의 천국이다. 아기자기한 새들 모형이 집안 가득한 딸이 갑자기 보고 싶다.

지미봉 정상에서 올레 21코스 종점까지는 어림잡아 50여 분 걸렸다. 종점에는 전에 없던 컨테이너 하우스도 새로 생겼다. 한치와 캔 맥주, 과자 등을 팔았다. 처음 제주올레 1코스를 시작하면서 목화 휴게소에서 치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동안의 올레길 여정을 반추해 보면서 캔 맥주 하나를 사서 마신다. 얼마 전 읽었던 고도원의 아침 편지가 생각났다.

 

     꽃은 자신을 떨구어 말끔히 지워냄으로써 열매를 잉태합니다.

     삶을 산 뒤에 맑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가는 인생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뒷모습이 맑은 사람은 그 영혼이 환할 것입니다.

 

어딘가를 향하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새들 모습이 눈길을 끈다.
어딘가를 향하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새들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럴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딸린 코스 5개만을 남기고 제주올레 정 코스인 21개 코스를 모두 완주한 셈이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허전하다. 올레길 마지막을 환영하는 상징물이 없어서일까. 어느 코스을 기점으로 삼고 시작하거나 끝내는 것은 올레꾼들의 몫이다. 시작하는 1코스와 끝나는 21코스는 무언가 제주올레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이정표같은 상징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맺고 끊음이 확실한 대나무의 마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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