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20코스: 김녕 서포구에서 제주 해녀박물관까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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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20코스: 김녕 서포구에서 제주 해녀박물관까지(8)
  • 김영희
  • 승인 2023.08.15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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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리 들판에서 마주한 수줍은 분꽃 행렬
한동리의 고태문로
삼정승의 태어날 기맥을 가진 마을이란 뜻의 괴위리인 한동리와 회화나무
한동리 둔지오름과 오름지기 고승사에 대한 추억
좌가연대에서 바라본 한동리 들판 모습. 저 멀리 다음 여정인 굽어진 올레 길이 자그맣게 보인다.
좌가연대에서 바라본 한동리 들판 모습. 저 멀리 다음 여정인 굽어진 올레 길이 자그맣게 보인다.

좌가연대를 지나 한동리 들판을 지난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도 있고 밭 사이 오솔길도 있다. 밭 주인이 심었나. 시멘트 포장로에 접해있는 밭담 아래로 분꽃이 대열을 이루었다.

씨앗에 분가루 같은 녹말이 들어 있어 이름이 분꽃이다. 실제 이 분말을 분가루 대용으로 사용했다. 수줍음, 소심, 겁쟁이가 꽃말이다. 어린 시절 나를 닮았다. 나도 아버지로부터 겁을 잘내는 겁재라는 말을 종종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후 네 시 무렵이면 꽃을 피웠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진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four o’clock이라고도 부른다.

시멘트 포장로에 접해있는 밭담 아래로 분꽃이 길게 대열을 이루어 올레길 길손을 반겨주는 것 같아 피로를 잊게 해준다.
시멘트 포장로에 접해있는 밭담 아래로 분꽃이 길게 대열을 이루어 올레길 길손을 반겨주는 것 같아 피로를 잊게 해준다.

좌가연대에서 시멘트 포장로와 오솔길을 번갈아 가며 30여 분 걸으면 해안가 한길이 나온다. 우도가 보이는 탁 트이고 시원한 한길이다. 그곳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고태문로다.

한동리 출신인 고태문 대위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진지 사수가 어렵게 되자 중대원들을 먼저 철수시키고 자신은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고지를 탈환하라는 유언이 나중에 알려지자 다음날 대원들에 의해 351고지가 탈환되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에 더욱 절실한 분이다.

밭과 밭담과 어우러진 분꽃이 수줍은 새색시 마냥 더없이 아름답다.
밭과 밭담과 어우러진 분꽃이 수줍은 새색시 마냥 더없이 아름답다.

한라산 동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한동리는 한라산의 기와 둔지오름의 맥이 이어진 마을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삼정승이 태어날 만한 곳이라 하여 괴위리(槐位里)라고 하였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삼괴(三槐)라고 했다. 삼공(三公)의 지위(位)를 괴위(槐位)라고 불렀다.

괴(槐)는 회화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회화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행운목으로, 중국에서는 출세의 나무로 서양에서는 학자의 나무(scholar tree)로 알려져 있다. 악귀를 물리치는 나무로도 알려져서인지 우리나라의 궁궐이나 서원, 향교 등에 많이 심어졌다.

시원하게 탁 트인 해안가 한길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호국영웅 고태문로가 나온다.
시원하게 탁 트인 해안가 한길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호국영웅 고태문로가 나온다.

약 2년 전에 한동리에 있는 둔지오름에 오른 적이 있다. 둔지오름은 표고 282m, 비고 152m인 오름이다. 제주도에서 유택(幽宅)의 최고 명당자리로 소문난 곳이다. 사진작가 김영갑이 사랑한 ‘구름의 언덕’도 그 주변에 있다.

그곳에는 오름지기 고승사가 있다. 성함이 절 이름 같다. 시인들의 시에 등장할 만큼 유명한 분이다. 그 비결이 아낌없이 베푸는 친절에 있는 것 같다. 친절은 법정 스님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다. 다랑쉬 오름에서 15년간 산불지기 하다가 자기 고향에 있는 둔지오름으로 옮겼다고 한다.

2021년 4월 2일 둔지오름에 올라갔을 때 산불감시원 초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재산없이 줄 수 있는 7가지'가 곱씹을수록 새롭다.
2021년 4월 2일 둔지오름에 올라갔을 때 산불감시원 초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재산없이 줄 수 있는 7가지'가 곱씹을수록 새롭다.

 

     다랑쉬 오름에 절 하나 있다

     비가 오면 문을 닫고 낮에만 문을 여는

     그런 절이 있다

     ........

 

     메마르고 냉한 세상 펄펄 끓이는

     다랑쉬 오름지기 고승사

     사람 냄새가 난다

     마음 비운 분화구에 넉넉한 인심 담아

     오는 사람 가는 사람 한 잔씩 따라준다

     털털한 웃음까지 덤으로 준다

     .......

 

홍기표 시인의 시, ‘다랑쉬 오름 고승사’다. 다음에 언젠가 주변을 지날 일이 있으면 해물짬뽕 잘하는 곳이 자기 마을에 있다면서 전화를 꼭 주라는 말이 생각난다. 다음 올레길엔 전화를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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