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0코스: 화순 금모래해수욕장에서 하모 체육공원까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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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0코스: 화순 금모래해수욕장에서 하모 체육공원까지(3)
  • 김영희
  • 승인 2021.02.10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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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와 산방산 전설
항망대에서 바라본 시원한 풍경과 아쉬운 용머리 해안
진시황과 용머리 해안 전설
가족섬 같은 형제섬
고정관념과 습관을 깨뜨리는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의 길
근경에 황우치 해변과 화순항, 중경에 월라봉과 박수기정, 그 너머 군산이 월라봉 위를 비스듬히 누워 있고 원경에 한라산이 보인다. 눈과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풍경이다.
근경에 황우치 해변과 화순항, 중경에 월라봉과 박수기정, 그 너머 군산이 월라봉 위를 비스듬히 누워 있고 원경에 한라산이 보인다. 항망대에서 바라보는 눈과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풍경이다.

차 한잔을 하니 기운이 샘솟는다. 눈앞에는 황우치해변이 있다. 7코스 서귀포 올레에서 만났던 황우지해변과 이름이 비슷하다. 산방산 정비사업으로 해변으로는 갈 수 없고 옆으로 나 있는 샛길을 따라 용머리해안을 향하여 갔다. 오른쪽에는 산방산(표고 395.2m)이 듬직하게 버티고 서 있다. 80만 년 전에 형성된 용암 덩어리, 10코스 내내 마주하는 산이다. 때론 가까이 때론 멀리 하면서. 점성이 강한 조면암으로 이루어졌고 암벽에는 희귀한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376호로 보호되고 있다. 옛날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냥을 하러 갔다가 사슴에게 쏜다는 것이 잘못하여 옥황상제 엉덩이에 맞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지금의 산방산, 뽑힌 자리는 백록담이 되었다고 한다. 백록담의 둘레와 산방산의 둘레가 비슷하다고 하니 전설치고는 제법 그럴싸하다. 태초의 한라산 봉우리를 사냥꾼 덕분에 지금 여기서 보고 있다니!

20여 분 걸어가면 6·25 전쟁 때 모슬포 제1 훈련소에 군수물자와 장병들을 실어날랐던, 황우치 해변에 정박해있는 미국수송선 사진이 찍힌 표지판이 있는 항망대에 이른다. 거기서 내다보는 전망이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파도가 밀려오는 황우치해변과 화순항, 눈 덮힌 한라산과 군산, 월라봉과 박수기정! 멀리서 보니 월라봉의 높이와 박수기정 위 평원의 길이도 생각했던 것보다도 그 이상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산방연대와 하멜기념비를 거쳐 내려가면 용머리해안 매표소가 나온다. 세찬 바람이 불어 파도가 많이 일거나 만조 시에는 통제된다. 파도가 높아 볼 수가 없었다. 아쉽다. 120만 년 전에 태어난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를 볼 수가 없다니. 작년 처음으로 제주 올레길을 완주할 때 얼마나 탄성을 자아내면서 보았던가. 입이 딱 벌어질 따름이었다. 언제 다시 보아도 새롭다. 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운 손길들이.

기후변화홍보관 창문에 붙여있는 홍보물 사진은 용머리 해안 바닷가에서 찍은 항공사진 인듯하다. 위기를 느낀 진시황이 호종단을 보냈을 만큼 용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명작이다.
기후변화홍보관 창문에 붙여있는 홍보물 사진은 용머리 해안 바닷가에서 찍은 항공사진 인듯하다. 위기를 느낀 진시황이 호종단을 보냈을 만큼 용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명작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하멜 제주 표착 300주년(2003)을 기념해서 만들었다는 하멜상선전시관이 나오고 그 옆에는 기후변화홍보관도 있다. 근처에 천하를 호령할 제왕이 태어날 것을 염려한 진시황이 그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호종단을 시켜 용머리 혈맥을 끊었다는 용의 잔등 지점이 표시되어있는 팻말이 흥미로웠다. 아니 그럴 만도 했다! 날씨가 나빠서 전시관과 홍보관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홍보관 창문에 붙어 '기후변화 랜드마크, 용머리해안'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바닷가 공중에서 찍은 듯한 사진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마치 산방산에서 뻗어 나온 용이 바다를 향하여 질주하면서 하늘로 오르려는 듯한 기세등등한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다. 서귀포에는 오래 살기 위해 불노초를 캐러 서불을 보냈고, 용머리해안에는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호종단을 보낸 것을 보면 진시황에게 제주도는 대단한 섬이었나 보다.

사계리 해변 잔디밭 길에서 본 형제섬. 대지를 낀 바위는 어머니, 큰 바위는 바다에서 금방 돌아온 아버지, 가운데 조그만 바위는 어머니를 향해 있는 자식처럼 보였다.  의좋은 '형제섬'이라기 보다 따뜻한 '가족섬'이라고나 할까.
사계리 해변 잔디밭 길에서 본 형제섬. 대지를 낀 바위는 어머니, 큰 바위는 바다에서 금방 돌아온 아버지, 가운데 조그만 바위는 어머니를 향해 있는 자식처럼 보였다. 의좋은 '형제섬'이라기 보다 따뜻한 '가족섬'이라고나 할까.

10여 분 정도 걸어 마을 길을 벗어나면 사계포구가 나온다. 형제섬이 가까이 보이는 사계해변이 펼쳐진다. 올레길을 벗어나 해변으로 내려가 파도와 벗하며 고운 모래 위를 걸었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이 파도가 모래 위에 부드럽게 나이테 같은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마치 자신이 오고 간 자취를 남기려는 듯이. 올레길인 해변가에 넓게 펼쳐진 잔디밭 길로 다시 올라갔다. 잠시 차 한잔을 하며 쉬어가기로 했다. 거기서 보니 산방산은 종 모양이 아니라 내겐 제주 돌하르방이 쓴 벙거지 모자처럼 보였다. 형제섬은 ‘형제섬’ 보다는 ‘가족섬’처럼 보였다. 약간의 대지를 낀 바위는 어머니, 바다에 나갔다 금방 돌아온 것 같은 큰 바위는 아버지, 가운데 조그만 바위는 아버지 바위처럼 생겼는데 어머니를 향하여 서 있다. 모든 자식들이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듯이. 그동안 형제섬이라 명명하여 놓아서 그런지 서로 쳐다보는 의좋은 형제들처럼만 보아왔는데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보니 가족들 처럼 보였다. 그동안의 고정 관념때문이었을까. 고정관념과 습관은 무섭다. 인간 자체가 습관 덩어리가 아닌가. 카르마 덩어리! 중력보다도 더 강한 자기장을 가진. 그것을 일깨워 주는 동양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1913)을 탄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The Lamp of the East)'이 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In the golden age of Asia)

   빛나던 등불 하나 코리아(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동방을 환히 비추리라(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

   지식은 자유롭고;(Where knowledge is free;)

   세계가 국가의 좁다란 담벼락으로 조각조각 나지 않는 곳;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말과 글이 진리의 심연에서 나오는 곳; 

   (Wher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 벌리는 곳;

   (Wher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s perfection;)

   지성의 맑은 흐름이 죽은 습관의 황량한 모래벌판 위에서 길 잃지 않은 곳;

   (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ert sand of dead habits;)

   영원히 뻗어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내 마음이 당신에 의해 인도되는 곳;

   (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님이시어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를 깨어나게 하소서.

   (Into that heaven of freedom,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

 

 

우리 민족의 앞날을 예언한 시라고도 한다. 시인들은 선지자이면서 예언자일까. 먼저 아니까 미리 말하는. 간디에게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이름을 지어준 타고르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을 방문했을 때(1929)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써준 시라고 한다. 습관과 고정관념 속에 잠자는 나를 일깨워 주며 애송하는 시이기도 하다. 개혁은 어렵다. 혁명보다도 더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국가의 각 조직 속에 뿌리 깊이 박힌 고정관념과 습관을 떼어 내야 하는 것이기에. 개인들에게도 갑각류처럼 단단히 박힌 습관과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하는 것이기에 자신을 개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일상생활에서부터 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러나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후손들과 미래의 나에게 부담과 죄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털고가야 한다. 무거운 짐을 계속 이고 갈 필요는 없다. 나중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큰 수술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시대적 과제, 역사적 과제를 제때 제대로 해결하지 않아 많은 시련과 고통을 안고 지금 살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나를 위해서도 어렵지만 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겨울처럼 어려운 시기에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봄을 위한 씨앗을 뿌리며 등불이 다시 한 번 켜지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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