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6코스: 쇠소깍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까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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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6코스: 쇠소깍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까지(2)
  • 김영희
  • 승인 2020.11.27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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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면 개가 짖는 보목리
한기팔 시인의 시 '보목리 사람들'
구두미 포구와 직선과 곡선의 도로
소천지와 전국 유일의 국궁장, 검은여
소정방 폭포의 물맞이와 소라의 성
여행에서 일탈의 묘미 정방하폭과 이중섭의 자구리해안, 소암 선생의 소남머리
제주도의 얼굴 서귀포시
높이가 5m 정도인 아담한 소정방 폭포의 모습. 한여름이라면 들어가 시원스럽게 물맞고 싶은 마음이 든다.
높이가 5m 정도인 아담한 소정방 폭포의 모습. 한여름이라면 들어가 시원스럽게 물맞고 싶은 마음이 든다.

232번 남원행 버스에서 281번 서귀행 버스로 갈아탔다. 보목포구까지 가는 길이 가깝기 때문이다. 버스를 다시 갈아타고 11시쯤에 보목포구에 도착하여 올레를 시작했다. 보목리의 옛 이름은 ‘볼래낭개’다. 볼래낭(보리장나무)이 우거진 갯마을이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최남단에 있고 아열대기후로 겨울에도 포근하여 눈이 내리면 개들이 짖는다고 한다. 거의 눈이 내리지 않은 곳이라 눈이 내리면 개들이 놀라서. 하늘은 흐렸으나 파도가 이는 보목포구는 평화로웠다. 조그만 수풀 오솔길을 지나면 시야가 탁 트인 해안도로가 나온다. 여기서도 ‘보목리 사람들’ 시가 새겨진 한기팔 시인의 시비가 보인다. 보목리 사람들은 한기팔 시인을 사랑하는구나. 아니, 한기팔 시인이 보목리를 사랑하는구나.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아리송한 생각을 하면서.....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사는 맛나게 사는 거 있지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 사람들은 그걸 안다.

 

   보오보오

   물오리 떼 사뿐히 내려앉은

   섶섬 그늘

   만조 때가 되거든 와서 보게

     

   가장 큰 바다는

   언제나 우리의 등 뒤에 있고

   이 시대의 양심인 양

   아무 말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

   ......

   ......

 

운동 기구들도 있는 쉼터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가까이 있는 섶섬도 감상하고 사진도 찍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직선으로 뚫린 포장도로를 걷다 보면 이내 지루해진다. 역시 도로는 곡선의 도로가 나에겐 좋다. 우리네 인생처럼 굴곡이 있고 사연이 있는 것 같은. 올레 길을 걷는데 웬만하면 직선의 도로인 평화로나 번영로가 아닌 곡선의 도로인 5·16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두미 포구까지 직선의 해안로가 펼쳐지는데, 도로 양옆에 핀 분꽃, 칸나, 산국이 지루함을 달래준다. 도로 화분에 심어진 가자니아도 꽃말처럼 수줍은 듯 반겨준다. 또한 바다와 가까이는 섶섬, 멀리는 문섬과 범섬을 보며 가는 것도 직선의 피곤함을 덜어준다. 30여 분 걸어 구두미포구에 다다랐다. 서쪽 전경 초소에서 바라보면 거북이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구두(龜頭)미포구라고 한다. 안내 표지판에는 구두미포구가 ‘보목동 1351번지 부근’이라고 소개되는데 보목동장이 아닌 송산동장 명의로 되어있다. 궁금하여 길거리에서 트럭장사 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보목동이 작아 서귀포시 송산동에 포함되었다고 말한다.

10여 분 더 걸어가면 소천지가 나온다. 백두산 천지를 축소해 놓은 모습과 비슷하다는 소천지. 날씨가 좋은 날은 한라산이 소천지에 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사진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보목하수처리장을 지나면 백록정(白鹿亭)이라는 이름의 국궁장이다. 해안을 가로질러 과녁에 활을 쏠 수 있는 궁수들에겐 짜릿한 곳이다. 내기를 하는 듯 활을 쏘는 두 아저씨가 보인다. 때마침 이런 광경을 보다니 안복(眼福)도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서귀포 칼 호텔 남쪽 해녀의 집 앞에 있는 검은 바위 군집들로 이루어진 ‘검은여’가 펼쳐진다. 토평동 사람들이 메역(미역의 제주어), ᄆᆞᆯ망(모자반의 제주어) 등 해산물을 채취하기도 하며 테우(떼배의 제주어)를 메어 두기도 한 곳이다. ‘여’는 썰물일 때는 드러나고 밀물일 때는 물에 잠기는 바위, 또한 물 속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 바위를 이를 때 쓰는 말이라고 안내 표지판은 전한다.

건축가 김중업 작품이라는 소라의 성.  소라 고둥이 말려 올라간 끝 부분을 나타낸 것이라는 안내원의 설명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건축가 김중업 작품이라는 소라의 성. 소라 고둥이 말려 올라간 끝 부분을 나타낸 것이라는 안내원의 설명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50여 분 걸으니 소정방 폭포와 건축가 김중업 작품이라는 소라의 성이 나온다. 200m 위에 있는 소정방 샘터를 수원(水源)으로 하는 소정방 폭포는 높이 5~6m의 아담한 폭포로 백중날 물맞이하는 곳이다. 물맞이는 농사일로 지친 몸을 추스르기도 하고 신경통에도 좋다고 하여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많이 찾는다고 한다.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수 물줄기를 보니 그동안의 여로가 말끔히 씻겨 나가는 듯하다.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여 4면이 각각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소라의 성. 안내원이 동그랗게 말려 들어간 꼬리 부분의 소라고둥 부분을 가리켰을 때 절로 탄성이 나왔다.

올레 코스에는 포함 안 되지만 근처의 영주10경 중 정방하폭(正房下瀑)으로 유명한 정방폭포에 들렀다. 가끔 이러한 일탈이 여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진정한 여행은 길을 잃어버렸을 때부터 비롯된다고 하지 않은가. 높이 23m, 너비 10m의 곧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폭포. 수원은 정모시라는 못이며, 진시황의 사자 서불이 한라산 불노초를 캐러 왔다가 정방폭포를 지나며 서불과지(徐市過之)라 새겨놓고 서쪽으로 떠났다는 곳. 서복전시관을 뒤로 하고 가다 보면 소암기념관이 나오고 서귀포 초등학교를 지나 서귀진성이 나온다. 서귀진성에서 조금 올라가면 이중섭거리를 지나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을 거쳐 종점인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 이르게 된다. 서귀포 초등학교 바로 근처에 자구리 해안이 있다. 게를 많이 잡아 미안해서 게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화가 이중섭도 자주 찾아왔다는 해안이다. 이곳에서 보는 서귀포 해안의 모습은 절경이다. 멀리 지나온 섶섬도 보이고 소정방과 정방폭포를 숨긴 병풍처럼 둘러쳐진 해안 절벽은 한 폭의 동양화다. 소암 선생이 서예 작품이 잘 안되면 와서 거닐었다는 소남머리도 보인다.

조각가들은 인체를 조각할 때 뒷모습부터 빚고 앞모습인 얼굴을 나중에 만든다고 한다. 조물주도 제주도의 뒷모습인 제주시를 먼저 만들고 얼굴인 앞모습 서귀포시를 만든 것 같다. 약간은 촌스러운 도시, 도시화와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인정이 남아있을 듯한 정감이 있는 도시, 뭔가 부족한 듯하면서 여백이 넉넉한 도시, 그래서 더 매력이 있는 서귀포시가 마음에 쏙 든다. 여기 와서 살고 싶은 마음이다. 교통 표지판이 없어도 차들이 잘 운행되고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물줄기들이 흘러 천지연 폭포와 정방 폭포가 되어 바다로 나가는 곳. 제주시에서 태어나서 항상 육지를 바라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제주시가 앞모습 같았는데 이제는 아니다. 서귀포시가 앞모습이다.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앞으로 태평양 시대가 열리면 서귀포는 진정한 제주도의 얼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서귀포 모습이 더 좋다. 앞으로 개발이라는 광풍이 불어 자연을 훼손하는 이상한 모습으로 발전하지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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