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5코스: 한림항에서 고내포구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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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5코스: 한림항에서 고내포구까지(1)
  • 김영희
  • 승인 2021.06.26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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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을 반기는 한수리 물가의 자귀나무
수원리, 조물케와 잠수포
친절한 아주머니와 수원리 마을 기장밭
손바닥 선인장 꽃과 영서생이물
대림리 사장밭 후박나무 밑의 산들바람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의 시 '나무'
한수리 입구에 있는 부부금슬 좋은 자귀나무가 반기는 것 같다.
한수리 입구에 있는 부부금슬 좋은 자귀나무가 반기는 것 같다.

올레 14코스 종점에서 조금 걷다 보면 한수리가 나온다. 한림리와 수원리의 중간에 있어 한림리의 ‘한’, 수원리의 ‘수’가 합쳐져 된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분홍빛 꽃술이 아름다운 자귀나무가 반긴다. 낮에 양쪽으로 펼쳐져 있던 잎들이 밤이 되면 맨 끝에 있는 잎까지도 짝을 맞춰 온전히 하나로 겹쳐진다. 부부금슬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합환수(合歡樹),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라고 한다. 소들이 쌀밥처럼 자귀나무 잎을 좋아하는지 소쌀밥나무라고도 부른다.

한림 해안로를 따라 대수포구를 지나면 수원리다. 한수리와 수원리 사이에는 대섬이 있다. 제주 동부지역 신촌과 조천 사이에 있는 대섬과 이름이 같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같은 지명이 동쪽에 하나 서쪽에 하나, 마치 저울추에 균형을 잡듯 대칭으로 나온다. 대섬, 초록마을, 신설동, 수산봉 등.

수원리 정자에 앉아 숨을 고른다. 귀화 식물이며 ‘상쾌한 기분’이라는 꽃말을 가진 노란 코스모스 닮은 금계국과 가자니아가 활짝 피어있다. 하얀 나비들이 그 위를 뛰논다. 기분도 덩달아 상쾌해진다. 수원리의 옛 이름은 ‘조물케’다. 물에 잠기는 포구란 뜻이다. 만조가 되면 식수로 쓰던 11개나 되는 샘물들이 바닷물에 잠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잠수포(潛水浦)다. 이름 때문인지 해녀들의 사망 사고가 많아 1882년 수원리로 바꿨다고 한다.

열매가 좁쌀보다 조금 크다는 수원리 마을 안의 기장밭. 벼처럼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열매가 좁쌀보다 조금 크다는 수원리 마을 안의 기장밭. 벼처럼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해안 도로에서 마을 길로 들어서니 큰 탱자나무가 인상적이다. 나무 밑에선 마을 노인인듯 낮잠을 즐기고 있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농촌의 부러운 풍경이다. 마을 길 주변 밭에선 벼인 듯 벼가 아닌 고개 숙인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지나던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기장이라고 한다. 좁쌀보다 조금 크며 5월에 파종하고 7월 중순이면 수확한다고 한다. 다음은 쪽파를 심는다고 친절하게 말해준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자주 깨닫는 사실이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얻는 것이 최고의 정보라는 것을.

수원리사무소에서 올레 15코스가 A코스와 B코스로 나뉜다. A코스는 영등할망이 처음 제주에 올 때 들어오는 길목인 귀덕 포구, 곽지 해수욕장, 요즘 뜨는 관광지인 한담 해안산책로가 있다. B코스는 대림리, 밭담이 아름답고 많은 귀덕리, 곽지리, 납읍리 마을을 거치는 중산간 지역이다.

월령리에서 보지 못했던 손바닥 선인장의 꽃을 여기서 보았다.
월령리에서 보지 못했던 손바닥 선인장의 꽃을 여기서 보았다.

B코스를 선택했다. 가족과 함께 갔던 금산공원과 고내봉을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수원리사무소를 지나 일주서로를 지난다. 길가는 월령리에서 봤던 손바닥선인장이 노란 꽃을 피웠다. 보라색 열매인 백년초도 매달려있다. 주인이 없는 길가 담 옆 선인장이라서 열매 하나를 따서 살짝 눌러보니 짙은 보라색 즙이 손에 흘러 잘 지워지지 않는다. 색깔에 감탄하면서 마셨던 백년초차가 생각났다.

30여 분 걸으니 영서생이물이 나온다. 대림리 주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제비들이 못에서 즐겨 노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고 한다. 주변 지형보다 낮고 연못 바닥은 암반이다. 마을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좋은 재료인 이곳의 황토 찰흙을 파 가다 보니 자연히 연못이 되었다고 한다.

대림리 사장밭에서 바라본 풍경. 과연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할만한 장소다.
대림리 사장밭에서 바라본 풍경. 과연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할만한 장소다.

10여 분 더 걸어가니 사장(射場)밭이다. 마을의 관전으로 활쏘기 장소였다. 현재의 한림리, 수원리, 상대리가 1884년까지 대림리의 행정관할로서 이곳이 무예를 연마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한림읍의 원조격이 되는 마을이 대림리라고나 할까. 후박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남쪽으로는 저 멀리 금악오름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비양도도 어렴풋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앞으로 가야 할 곽지리 과오름이 누워있다. 초여름 햇볕이 세다. 가끔 불어오는 자연이 만들어준 산들바람은 어떤 에어컨 바람, 선풍기바람, 부채 바람 보다도 더 좋다. 볕을 가려 그늘을 주는 후박나무들도 더없이 고맙다.

 

   결코 보지 못하리(I think that I shall never see)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를.(A poem lovely as a tree.)

   

   배고픈 입을 대고 있는 나무.(A tree whose hungry mouth is prest)

   단물 흐르는 대지의 가슴에(Against the earth’s sweet flowing breast;)

 

   온종일 신을 바라보며(A tree that looks to God all day,)

   기도하려고 잎 무성한 팔을 벌린 나무.(And lifts her leafy arms to pray...)

 

   눈꽃들이 그 위에 드러눕고(Upon whose bosom snow has lain;)

   비와 정답게 사는 나무.(Who intimately lives rain.)

 

   나 같은 바보는 시를 만들고(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오로지 신만이 나무를 만든다.(But only God can make the tree.)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Joyce Kilmer)의 시 ‘나무(Tre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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