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4코스: 저지 예술정보화마을에서 한림항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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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4코스: 저지 예술정보화마을에서 한림항까지(1)
  • 김영희
  • 승인 2021.05.24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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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간!
중산간 올레 반, 해안 올레 반인 14코스
귤향과 감자꽃
아테나 여신과 미네르바의 부엉이
에밀리 디킨슨의 시 '무명인'과 무명천
김상현 시인의 시 '5월'과 그린 카펫
하얀 감자 꽃이 피어있다. 연분홍 빛깔을 띤 감자 꽃도 몇몇 보인다.
하얀 감자 꽃이 피어있다. 연분홍 빛깔을 띤 감자 꽃도 몇몇 보인다.

13코스는 해안에서 내륙, 중산간으로 올라가는 올레다. 14코스는 그 반대다. 내륙, 중산간에서 해안으로 내려가는 올레다. 제주의 허파라는 중산간에서 해안 저지대로 내려간다. 중산간은 제주에서 해발 200m~600m의 지대를 말한다. 600m 이상은 한라산 국립공원이다. 해안 저지대와 한라산 국립공원과의 완충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중산간은 도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동식물이 서식하는 오름이 있다.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숲인 곶자왈이 있다. 기능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경관적으로나 보물 창고와 같은 곳이다.

인간 영역(해안 저지대)에서 신의 영역(한라산 국립공원)으로 가는 중간지대라고도 한다. 어느 시인은 제주의 중산간을 아버지의 가슴과 같다고도 하였다. 제주도 전체 면적(1848km²)의 31%(589km²)다. 그런 중산간이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버지의 가슴이 파헤쳐지는 것이다.

'자그락 자그락' 소리 나는 밭담 사이로 난 좁은 자갈길이 있어서 좋다.
'자그락 자그락' 소리 나는 밭담 사이로 난 좁은 자갈길이 있어서 좋다.

중산간에 있는 한경면 저지 마을에서 해안 저지대에 있는 한림읍 월령리로 향한다. 14코스의 반 정도 되는 중산간 올레다. 중간 스탬프를 찍는 선인장 자생지인 월령리에서 비양도 가는 배가 뜨는 종점 한림항까지가 또 14코스의 반을 차지한다. 해안 올레다.

밭담이 쌓인 길을 따라 걸어 나간다. 귤꽃이 핀 귤밭에서 나오는 향기는 길손을 기쁘게 한다. 저지오름을 왼쪽에 끼며 가다가 점점 뒤로 하며 걷는다. 감자밭에서도 감자꽃들이 활짝 폈다. 하얀 꽃들만 있는 게 아니라 연분홍 꽃도 몇몇 있다. 감자꽃이 피는 것을,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랫동안 서서 지켜보았다. 감자꽃도 따줘야 감자알이 크게 자란다고 한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 나는 송이길도 좋지만 ‘자그락 자그락’ 소리 나는 밭담 사이 좁은 자갈길도 좋다. 목재 다리도 놓여 있다. 올레 지기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무 그늘에서 쉬어도 간다. 봄볕이지만 제법 따사롭다.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가 지났다. 하지만 햇볕이 충만하여 모내기를 시작한다는 소만은 여러 날 남았다. 옥수수밭들이 많이 눈에 띈다.

고즈넉한 나무와 아름다운 봄 하늘은 상념에 젖게 한다.
고즈넉한 나무와 아름다운 봄 하늘은 상념에 젖게 한다.

고즈넉한 나무와 구름이 아름다운 봄 하늘을 쳐다보며 상념에 젖는다. 때로는 관객도 되고 때로는 배우도 되는 삶의 가장자리에 와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젊은 시절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가게 안 녹슨 청동상에 눈을 떼지 못했다. 여러 번 마주한 그것을 어느 날 기어코 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한 손엔 부엉이, 다른 한 손엔 전쟁 마차를 몰고 가는 청동으로 만든 단순한 조각상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저서 <법철학>에 나오는 말이다. 미네르바는 그리스 신화 아테나 여신에 해당하는 로마 신화 지혜의 여신이다. 하루로 치면 저녁, 계절로는 가을, 인생의 그 시기에 와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되어 아름다운 하늘을 훨훨 날고 싶다.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길을 묻고, 길을 찾고, 길을 발견한다.

오시록(호젓하고 비밀스럽게 숨어있다는 제주어)한 농로를 지난다. 작년 걸었을 때와는 달리 밭담들도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어 아쉽다. 저지오름 정상에서 봤을 때 큰 공장 건물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와서 보니 제주 양돈농협의 청정배합 사료공장이다. 그 옆에 선인장 밭이 있다. 많은 선인장의 군집을 보며 적이 놀랐다. 월령리 선인장 자생지를 미리 보여주는 전주곡인 것 같다.

청정 배합사료 공장 옆에 있는 선인장 밭은 선인장 자생지 월령리의 전주곡 같다.
청정 배합사료 공장 옆에 있는 선인장 밭은 선인장 자생지 월령리의 전주곡 같다.

조금 더 가니 무명천 산책로 입구가 나왔다. 무명천은 이름이 없는 시내다. 그래서 무명천(無名川)이다. 평상시에는 메말랐다가 비가 오면 흘러내리는 건천(乾川)이다.

 

   나는 무명인입니다! 당신은요?(I’m Nobady! Who are You?)

   당신도 무명인이신가요?(Are you-Nobody-too?)

   우린 같은 한 쌍이네요!(Then there’s a pair of us!)

   쉿! 말하지 마세요(Don’t tell!)

   쫓겨날지도 모르니!(They’d banish us-you know!)

 

   얼마나 끔찍한지요, 유명인이 된다는 것!(How dreary–to be-Somebody!)

   개구리처럼 얼마나 요란한지(How public-like a frog-)

   개골개골 자기 이름을 외쳐대는 건(To Tell your name-)

   6월 내내(the livelong June-)

   찬양하는 늪지를 향해!(To an admiring bog!)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무명인(I’m Nobody)’이다. 무명인을 예찬하는 노래, 무명인 찬가다.

여기서 일주서로가 지나는 월령리 마을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무명천을 따라가는 지루한 길이다. 중간에 시멘트길, 숲길, 흙길도 나오지만 폭신한 잔디 같은 풀이 있는 풀길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배우들의 시상식장에 레드 카펫이 깔린 것처럼 마치 그린 카펫을 밟으면서 걷는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지리하던 길도 기쁘고 한결 마음도 가벼워진다.

무명천 산책로 길은 다소 지루하지만 마치 무명 배우들이 그린 카펫 위를 밟고 걷는 것 같아 기쁨과 마음의 위로를 준다.
무명천 산책로 길은 다소 지루하지만 마치 무명 배우들이 그린 카펫 위를 밟고 걷는 것 같아 기쁨과 마음의 위로를 준다.

더구나 새들은 노래하고 나비들도 명랑한 날개 비행을 하며 축하해 준다. 꽃들도 활짝 웃는 낯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 같다. 나뭇잎들은 산들바람과 함께 손을 흔든다. 가는 곳곳 찔레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인동초와 붓꽃, 철쭉, 토끼풀과 크림슨 클로버라고도 하는 진홍 토끼풀도 얼굴을 내밀었다. 김상현 시인의 ‘5월’이 제격인 5월의 축제장이다.

 

   나와 봐

   어서 나와 봐

   찔레꽃에 볼 부며대는 햇살 좀 봐

   햇볕 속에는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려고

   멧새들도 부리를 씻어

   

   들어 봐

   청보리밭에서 노는 어린 바람 소리

   한번 들어 봐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애

   자꾸만 부르는 것만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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