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친절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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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친절의 시작
  • 유태복 기자
  • 승인 2023.11.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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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민 / 서귀포시 감귤농정과 주무관
황수민 주무관
황수민 주무관

‘친절’은 언젠가부터 직업적인 특성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행정 역시 서비스가 된 요즘, 친절은 기본 중에 기본이 되었고, 흔히 웃는 얼굴, 부드러운 말투 등으로 ‘친절’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이 제대로 된 ‘친절’일까. 직업적인 특성으로 ‘영혼 없는’ 친절을 행하거나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과연 내가 생각하는 친절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웃는 얼굴, 부드러운 말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민원인은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게 되는 것일까.

원하는 답변을 들었을 때는 나의 불친절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을 때는 내가 아무리 친절해도 나의 친절은 무용지물이 되기 다반사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친절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어느 틈엔가 면피할 만큼만 친절을 담기도 한다. 그야말로 ‘영혼 없는’ 친절이다.

민원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요구로 속이 아플 지경이었는데,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었다.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민원인은 “할 수 없어요.” “불가능해요.” “안됩니다.”라는 말을 ‘바로’ 듣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안 된다는 말에 바로 발끈하는 민원인들은 자신의 상황을 더 소중하게,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친절’은 여기에도 답이 있을 것 같다.

상대를 상황을 한 번 더 헤아려 보려 하고, 가능한 선에서라면 수용할 의지가 있음을 전달하며 “나는 당신의 의견(상황)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나는 당신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담는 것.

상대를 소중히 여기면서 말하는데 평소보다 부드러운 말투, 웃는 얼굴이 나오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

내가 종종 하는 “그렇게는 안 됩니다, 어렵습니다.”라는 말도 조금은 부드럽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며, 걸려 오는 전화에 깊은 심호흡을 하고 “한 번 더 들어주자, 같이 고민해 주자”를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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