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3코스: 온평 포구에서 표선 해수욕장까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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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3코스: 온평 포구에서 표선 해수욕장까지(2)
  • 김영희
  • 승인 2020.10.19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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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선생의 마지막 예서 작품과 김영갑 선생의 작품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신풍 신천 바다 목장'
자연과 인간은 한 몸
하천 포구와 산물통
표선 해비치 해수욕장 곁에 있는 달산봉과 제석오름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신풍 신천 바다 목장'.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그 모습까지 담지 못하여 아쉽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신풍 신천 바다 목장'.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그 모습까지 담지 못하여 아쉽다.

   최고 가는 좋은 반찬이란 두부나 오이와 생강과 나물(大烹豆腐瓜薑菜)

   최고 가는 훌륭한 모임이란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高會夫妻兒女孫)

추사 김정희 선생이 71세 돌아가시는 해에 쓰신 예서체 대련의 글귀이다. 글씨와 글 내용 모두 좋아한다. 가슴속에 새겨두며 생활한다. 처음 대하였을 때 충격이었다. ‘최고의 식사는 가족과 하는 소박한 식사이며 최고의 모임은 가족과 하는 모임’이라는. 파랑새를 평생 찾았지만 결국 파랑새는 아주 가까운 곁에 있었다. 추사가 마지막 도달한 경지를 나는 추사의 글씨를 통하여 그리고 책을 통하여 깨달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책은 나의 인생의 스승이다. 지난번 올레길에 김영갑이 찍은 용눈이 오름 사진들을 샀었다. 그때 김영갑이 찍은 사진으로 만든 책갈피 5장이 든 작은 봉투 하나를 함께 샀다. 딸에게 서울 올라가서 선물했다. 오늘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서 네 개를 더 산다. 아들과 며느리, 아내에게 주고 나머지 한 개는 나를 위해서다. 책을 읽으면서도 김영갑을 추모하고 제주의 아름다움을 추억하기 위해.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추웠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길가에 꽃 한 송이가 바람에 추운 듯 꽃잎들을 움츠리고 피어 있었다. 부용화였다. 혼자 걷는 나와 무궁화 닮은 꽃 부용화 한 송이, 동병상련인 듯 금방 친구가 되어 곁으로 가서 살며시 어루만진다. 신풍리 마을이라고 쓰인 표지석 앞 일주동로를 건너 좁은 길로 가다 보면 A코스와 B코스가 만나는 조그만 신풍 포구가 나온다. 그 곁 양어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신풍 신천 바다목장’이다.

신풍리와 신천리에 걸쳐 있는 바다 곁에 있는 목장이라 붙여진 이름이리라.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끝이 없는 파란 바다와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드넓은 푸른 초원.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지점에 이렇게 멋진 조합이 어디 있을까. 지난 추석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힘들 것 같아 코로나를 뚫고 제주에 내려온 딸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갔더니 감탄사를 연발한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제주를 잘 모른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그동안 몇 군데 가족들과 함께 올 곳들을 마음속에 찜해두었었다. 하지만 광치기 해변을 더 좋아했다.

바다목장을 벗어나자마자 우묵사스레피 나무가 즐비한 바닷가 올레길이다. 아열대 기후 북방한계선에 위치해 자라는 우묵사스레피 나무. 그 주변을 잠자리들이 비행하고 있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 길을 벗어나면 포장도로가 나오고 왼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벗하며 걸어간다. 길 오른쪽으로는 양식장들이 많다. 길 왼쪽은 움직이는 거대한 푸른 평원을 펼쳐놓은 듯 말 그대로 태평양이다.

제주 섬 서쪽 끝에 있는 올레 12코스와 대비가 되었다. 고산리 수월봉 앞 넓은 평원에는 농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동쪽 끝 올레 3코스에는 드넓은 바다와 이웃한 양식장들이 대부분이다. 농업과 어업. 자연환경이 인간을 지배한다. 기껏해야 인간은 그 속에서 몸부림칠 뿐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에게 가정과 자연환경이 7할이고 노력은 3할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동안 인간들이 자연환경을 망쳐 놓았으니 이제 코로나로 인한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자연과 그 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에게도 똑같이 인간처럼 존중해 줘야되지 않을까. 현대 문명의 거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위기는 앞으로 계속 닥치지 않을까. 수많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어나면서 길을 걸었다.

   하늘과 땅은 인간과 근원이 같으며(天地與我同根)

   만물은 인간과 같은 한 몸이다(萬物與我一體)

장자(莊子)가 한 말로 기억하고 있다. 몸 한쪽이 상하는데 다른 쪽이 병들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서울에 조카 결혼식이 있어 갔다 오는 길에 피곤하여 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코로나 시대에 좋은 점은 그동안 황사 먼지가 택시 전체를 온통 뒤덮었었는데 그게 없어져서 좋다고 한다. 방송에 어느 교수가 말하는 데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신이 대신하고 있다고. 아들이 저질러 놓은 일을 아버지가 뒤집어써서 대신해주듯이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을 신이 대신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표선 해비치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달산봉과 제석 오름의 모습. 땅에서 솟은 달과 하늘에 뜬 달, 바다에 비친 달의 삼중주의 모습은 어떠할까.
표선 해비치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달산봉과 제석 오름의 모습. 땅에서 솟은 달과 하늘에 뜬 달, 바다에 비친 달의 삼중주의 모습은 어떠할까.

지루한 길을 50여 분 걸었더니 자그마한 신천 포구가 나온다. 신천리 마을에 들어서니 해녀들이 바다에서 나온다. 고무 잠녀복을 입은 해녀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하천리 바다에까지 갔다 와버렸다는 서로 주고받는 말소리도 바람에 실려 온다. 10여 분을 더 걸어가면 배고픈 다리다. 한라산 돌오름에서 발원하여 상류 조천읍 교래리를 지나, 중류 표선면 성읍리를 거쳐 하류 하천리에 이르는 천미천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길목이다. 사려니숲길을 걸으면서도 만났던 천미천이라 반가웠다. 배가 고팠는지 배가 홀쭉 들어간 모양새의 다리다. 25km에 달하는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인 천미천을 경계로 성산읍 신천리와 표선면 하천리로 나뉜다.

10여 분 정도 더 걸으니 자그마한 하천 포구와 산물통이 나온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시절 농사일과 더위에 생긴 땀띠를 들어가게 하려고 백중절을 시점으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궈 여름을 나던 장소’라고 ‘산물통’ 표지석에 쓰여있다. 아무 치장도 하지 않는 옛날 그대로의 소박한 모습인 것 같아서 뙤약볕에 땀을 흘렸더라면 몸을 담그고 싶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옛날 제주 선인들이 썼던 그대로 놔두었으면 하는 곳들이 많다.

하얀 모래가 빛나는 백사장을 곁에 두며 걷는 길이 한결 가볍고 상쾌했다. 종점이 다가온다. 길이 0.8km이고 넓이 8만 평에 달하는 표선 백사장이 나온다. 썰물에는 커다란 원형 백사장인데 밀물에는 마치 둥그런 호수처럼 보인다는 표선 백사장. 썰물이어서 그런지 백사장 안에 들어가 사진 찍는 모습도 눈에 띈다. 드넓은 백사장을 보니 그동안의 여독이 풀리는 듯하다.

백사장에서 눈에 띄게 들어오는 두 오름이 있다. 달산봉과 제석오름이다. 달같이 생겼다고 하여 달산봉이라고도 하고 오름들 무리에서 이탈한 산봉우리, 즉 탈산봉(脫山峰)이 변하여 달산봉이 되었다고도 한다. 지형상 탈산봉이 변하여 된 것이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달 같이 생겼다는 달산봉이 더 매력적이다.

육지의 달과 하늘의 달, 표선 해비치 해수욕장 바다의 달이 동시에 뜨는 모습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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