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8코스: 제주시 간세라운지에서 조천 만세동산까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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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8코스: 제주시 간세라운지에서 조천 만세동산까지(13)
  • 김영희
  • 승인 2022.09.30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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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망무제의 신촌 포구 앞 바다
우주와 바다, 한 조각 배와 인생
팡세를 쓴 파스칼과 불가의 말
14살에 여행하여 호동서락기라는 기행문을 남긴 조선 말기 여성 시인 김금원의 시 '관해'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신촌 마을과 조천 마을의 경계지점 '대섬'
조천 마을의 '용천수 탐방길'
나의 연북정, 어디를 바라보며 무엇을 그리워 하며 살고 있나?
신촌 포구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신촌 포구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신촌 포구에 이르면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다.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누군가 바닷가 근처에 살면 눈이 좋아진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멀리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항상 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어느새 눈을 더 크게 떠가며 수평선을 응시한다.

넓은 바다에 떠 있는 배가 한 조각 점처럼 보인다. 우리네 인생도 광활한 우주에서 보면 한 조각 점만도 못하리라. 아니 점의 점만도 못할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며 자연 앞에 절로 숙연해진다. 볼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우주에게도. 문득 불가(佛家)의 말이 떠오른다.

 

     

바다에 떠있는 배의 모습이 한 조각 점처럼 보인다.
바다에 떠있는 배의 모습이 한 조각 점처럼 보인다.

 

     형상이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커다란 것은 바다요(有形之大者海也)

     형상이 없는 것 가운데 가장 커다란 것은 허공이다(無形之大者虛空也)

     형상이 있는 것 없는 것을 초월해 가장 커다란 것은 마음이다

                                                            (有形無形超越之大者心也)

 

팡세를 쓴 파스칼은 ‘이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떨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가에서 말하는 마음을 생각하니 갑자기 우주가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우주를 품고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뿌듯함과 함께.

오롯이 자연과 나만이 마주했다. 자연과 나만이 만난다. 자연으로 돌아가 하나가 된 느낌이다. 마음은 백지가 된다. 멍때릴 때 생각이 초기화되듯 마음도 어느새 초기화된다. 조선 말기 여행 도중 바다를 바라보며 ‘관해(觀海)’라는 시를 노래한 여성 시인이 있었다. 14살에 여행을 떠날 만큼 호방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초기화된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초기화된다.

 

     수많은 시내가 동쪽으로 굽이 돌아 흐름을 다하더니(百川東匯盡)

     깊고 넓고 아득하여 끝이 없구나(深廣渺無窮)

     바야흐로 천지가 커다란 것을 알겠도다(方知天地大)

     태 한가운데 모든 것을 받아들였구나(容得一胞中)

 

김금원(金錦園)이다. 몰락한 양반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기생이어서 기생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기생이 되기 전 세상을 유람하기로 했다. 남장을 하고서 다녔다. 14살에 여행한 것을 34살에 발문을 써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호(湖)는 충청남북도인 호서(湖西)지방을, 동(東)은 금강산과 관동팔경(關東八景)이 있는 강원도를, 서(西)는 평양과 의주가 있는 관서(關西)지방을, 락(洛)은 중국의 옛 수도 낙양(洛陽)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양(漢陽)을 의미한다. 약 1000km를 여행했다.

 

대섬 끝에서 마주한 거북등이 갈라진 모습 같기도 하고 빵이 부푼 모습 같기도 한 튜물러스 지형의 모습이 아름답다.
대섬 끝에서 마주한 거북등이 갈라진 모습 같기도 하고 빵이 부푼 모습 같기도 한 튜물러스 지형의 모습이 아름답다.

신촌 마을에서 조천 마을로 넘어가는 데 대섬이 있다. 두 마을의 경계다. 올레길에선 벗어나 있지만 대섬 끝까지 가보았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점성이 낮은 용암류가 넓은 지역으로 퍼지면서 표면만 살짝 굳어 만들어진 평평한 튜물러스 지형이라고 한다.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대섬을 벗어나 조천 마을로 접어드니 ‘용천수 탐방길’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띈다. 조천리(朝天里)는 용천수가 가장 많은 마을로 약 40여 개의 용천수가 있었는데 현재 30여 개의 용천수가 남아 있다. 그 중 23여 곳을 정비하여 용천수 탐방길을 조성하였다.

엉물을 탐방하다 바깥 바다 경치를 손전화로 찍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
엉물을 탐방하다 바깥 바다 경치를 손전화로 찍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들을 못 낳은 여자들이 자식을 빌었다는 수덕물, 물이 솟아 흘러내리는 모양이 생이(참새의 제주어) 입 모양같다고 하여 붙여진 생이물, 한 번에 물을 뜨면 두 말을 뜰 수 있다는 두말치물, 설문대 할망이 한 발은 장수물에, 또 한 발은 관탈섬에 발을 디디고 빨래를 했다는 장수물, 족박(작은 바가지의 제주어)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족박물, 제사를 지내고 제물(祭物)을 태웠던 자리에 있는 물이라하여 제주자리물, 양진사 절 안에 있는 빌레물이라고도 하는 양지사물, 그 외 엉물, 큰물 등이 있다.

엉물에는 이미 노부부가 탐방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용천수만을 탐방하러 와봐야겠다. 그래서 조천리가 3.1절 날 곳곳에서 용천수가 뿜어져 나오듯 독립 만세를 외쳤던 충절의 고장이 되었을까. 자연과 인문은 서로 닮는 것이기에.

유배 온 사람들이 화북 포구와 함께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북녘의 임금을 사모했다는 연북정의 모습이  애처롭다.
유배 온 사람들이 화북 포구와 함께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북녘의 임금을 사모했다는 연북정의 모습이 애처롭다.

마을 길을 굽이 돌아 양진사(養眞寺)에 이르니 연북정이 보인다. 임금님이 계신 북쪽(北)을 그리워(戀)한다는 뜻을 가진 정자인 연북정(戀北亭). 정자에 올라 하염없이 바다가 펼쳐진 북쪽을 바라본다.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마음속에 정자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하리라.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고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며 오가는 사람들과 주변 풍경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있는 공간인 정자를. 나는 어디를 바라보며 무엇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조천포구 바닷가를 굽이돌아 조천 만세동산을 향하여 난 길게 뻗은 길을 죽 걸어가면 제주올레 18코스 종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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