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수(白壽)를 바라보며
김창렬 주교 / 제주 새미 은총의 동산에서(2024. 9. 9.)
나는 백수(白壽)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들과 소감을 나누고 싶어 짧은 글 몇 편을 보내드리오니 너그러이 해량하시기 바랍니다.
◎ 소요(逍遙)
나는 본래 나서기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몸을 사리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아니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성화같이 나더러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으니 바깥출입을 삼가라는 것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나는 그 권유대로 몸과 마음의 자유를 잃고 노후 생활을 하는 신세이다.
나는 이 굴레를 벗어버리고 내가 타고난 나서는 성격을 되찾고자 애쓴다. 내가 상대방의 의사를 묻지 않고 덮어놓고 글을 써 보내는 것도 그 굴레를 벗어버리는 수단의 하나이다.
◎ 고유성(固有性)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문체가 있다.
다른 말로 그 사람만이 가지는 고유한 체취, 곧 암내가 있다.
나는 나만의 고유한 문체 곧 암내가 있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즉시 나에게서 나오는 암내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고유한 암내를 맡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피부로 느끼기에 호불호 상관없이 눈 감고 글을 써 보내는 것이다.
◎ 참행복이 있는 곳
사람들이 바로 저 언덕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 떠들어대기에 귀가 솔직하여 바로 저 언덕 너머에 있는 행복을 손에 쥐고 싶어 젖 먹은 힘까지 다하여 그 험한 언덕을 기어올라 그 아래를 보니...
아~! 내가 쏟아놓은 그 아까운 정력이여!
그 지긋지긋한 언덕을 넘어 내려다 보니...
아! 허망타! 그것은 한낱 공중누각이더이다.
내 사랑하는 벗이여, 나는 그대를 나처럼 사랑하기에 남이 들을세라 그대에게만 귓속말로 말한다. 행복은 그대 곁에 있다. 아니 그대 속에 있느니라. 그대가 할 일은 오직 행복이 있는 곳을 어떻게 해서든지 탐지하여 손에 꼭 쥐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면 내가 그대에게 보증하니 그대는 남부럽지 않은 백만장자가 되리라.
◎ 나의 장수 송가 (長壽 頌歌)
이것은 무엇에 깜짝 놀라 소리 지르는 사람의 심정으로 남들과는 달리 예외적으로 장수의 특혜를 누리고 있는 나의 찬가로 기쁨과 놀라움의 노래입니다.
나는 그리 많지 않은 연세로 영생으로 들어간 한 스승님으로부터 천수를 다한 기쁨을 노래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사제로서의 자신의 생의 종말은 무심히 살다가 또한 무심히 마치는 것이라 하시곤 했습니다.
주심께서는 평소 그가 간직하고 있던 그 소원대로 해주셨습니다.
아, 복되어라. 그의 죽음이여!
그리고 나는 한 분의 특별한 선배 대주교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분은 한국의 성직자 중에서 가장 오랜 생을 누리시어 백수(白壽)를 경축한 지 이미 몇 해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이곳 제주교구에서도 나의 백수를 두고 경축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나는 듣곤 합니다.
이 어인 일인가! 사제 된 지 5년이 되던 해에 앞으로 5년 정도밖에는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기도 했던 내가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살고 있으니 그저 감격할 뿐입니다.
이러므로 나의 장수의 송가는 사랑의 송가요, 감사의 송가입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로부터 영원히 이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