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3코스: 용수 포구에서 저지 예술정보화마을까지(2)
영국 시인 A.E. 하우스먼의 시 '가장 아름다운 나무, 벚나무' 아홉굿물과 설문대 할망 그리고 저거홀물 용선달리와 낙천리를 잇는 평온한 잣길 보리밭의 사중주 색상 변주곡 용선달리의 두 그루 나무와 평상 올레길 13코스에서 마주한 세 개의 오름과 저지오름
수령이 오래된 고목 숲길, 고사리가 무성한 고사리 숲길을 지난다. 숲길을 벗어나면 낙천리 아홉굿마을로 이르는 포장도로가 곧게 뻗어 있다. 양 길가에는 벚나무들이 낙천리 마을까지 나란히 서 있다. 팔만대장경판의 반 이상을 만들었다는 나무다. 나뭇결도 아름답고 매우 단단해서 가구나 식기로 만들어 썼다. 벚꽃이 필 무렵 걸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가장 아름다운 나무, 벚나무가 지금(Loveliest of trees, the cherry now)
가지마다 주렁주렁 꽃 매달고(Is hung with bloom along the bough,)
숲속 자전거도로 주변에 서 있네(And stands about the woodland ride)
부활절에 하얀 옷을 입고서(Wearing white for Eastertide.)
내 일흔까지 산다면(Now, of my threescore years and ten,)
스무 해는 다시 오지 않으리(Twenty will not come again,)
일흔 번 봄에 스물을 빼면(And take from seventy springs a score,)
나에겐 쉰 번 봄만 남았으니(It only leaves me fifty more.)
만발한 벚꽃을 보기 위해(And since to look at things in bloom)
쉰 번 봄날은 많은 것이 아니니(Fifty springs are little room,)
숲속으로 나는 가리(About the woodlands I will go)
눈처럼 매달려 있는 벚꽃을 보러(To see the cherry hung with snow.)
영국의 시인 A.E. 하우스먼의 ‘가장 아름다운 나무, 벚나무(Loveliest of Trees, the Cherry Now)’라는 시다. 시인이 스무 살 때 지은 것 같다. 앞으로 몇 번의 봄을 맞이하여 몇 번이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10여 분 걸으니 아홉굿물이 나온다. 굿은 샘을 뜻하는 제주어로 아홉 개의 샘이 있는 물이다. 낙천리는 1670년경 제주에서 처음으로 주조업(대장간)이 시작된 곳이다. 주재료인 점토를 파낸 아홉 개의 구멍에 샘이 고여 아홉굿물이 되었다. 저지, 청수, 조수, 낙천리 주민들의 음용수 역할을 하였다. 상수도가 보급되자 통합 저수지로 조성하여 농업용수로 이용되었다.
포장된 마을 길을 지나다 보면 어느 집 담벼락엔가 글이 새겨있다. ‘농사일처럼 힘든 섬 제주를 만들다가 한경면 낙천지경에서 설문대 할망이 오뉴월 땡볕에 떨어뜨린 땀방울이 아홉 개 연못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주에서 유명한 곳은 반드시 설문대 할망 전설이 있다던데 아홉굿물도 그런가 보다. 농사일이 얼마나 버거웠으면 설문대 할망 일에 비겼을까.
몇 걸음 더 가면 낙천리 중심에 저거홀물(저갈물)이 있다. 아득한 옛날 빌레(암반을 뜻하는 제주어) 웅덩이에 뭇짐승들이 물을 먹기 위해 찾았다. 특히 멧돼지들에 의해 연못이 크게 만들어졌다. 돼지 저, 클 거, 물 잦을 홀 자를 써서 저거홀이다. 낙천리 마을이 있게 된 근원지다. 연못 중심에는 의자 마을답게 잔돌을 시멘트에 입힌 커다란 의자 조형물이 놓여있다.
낙천 잣길 전망대 시설 공사로 올레길이 우회하게 되었다. 2년 동안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만들었다는 3층 높이의 나무 의자로 된 문과 1천여 개의 의자 조형물로 이루어졌다는 의자 공원을 볼 수 없어 아쉽다. 다행히도 우회로는 곧바로 잣길로 이어져 아쉬움을 달래줬다.
화산 폭발로 저지오름과 이계오름이 만들어질 때 흘러내린 돌무더기로 농토를 만드는 과정에서 잣길이 만들어졌다. 사람 이름 같이 재미있는 용선달리와 낙천리를 연결하는 통로다. 농공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한 길이다. 2011년 886m를 복원했다. 옛 제주 선인들의 발자취가 담겨 있어서인지 무척 정감이 가는 길이다.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진다.
잣길의 매력에 푹 빠져 걷다 보니 호박 같은 데 비닐에 씌워져 귀하게 대접받고 있었다. 궁금하여 일하는 주인에게 물었더니 단호박이라 한다. 초당 옥수수도 키운다고 한다. 찌지 않고 날것으로 먹어도 맛있는 옥수수라고 한다. 제주도 동부 지역은 무, 당근 등 뿌리가 깊은 심는 작물을, 서부 지역은 콜라비, 비트, 브로콜리, 단호박, 초당 옥수수 같은 뿌리가 덜 깊은 뜨는 작물을 재배한다고 한다. 동부 지역은 화산회토로 뜬땅이고 서부 지역은 비화산회토로 된땅이라서 그럴까.
진초록의 청보리밭,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와 함께 덜 익은 보리가 뒤섞인 초록과 노란색의 보리밭, 잘 익은 보리로 뒤덮인 노란색의 보리밭, 완전히 익은 황금빛의 보리밭 등 보리밭들의 색상 변주곡을 감상하면서 가노라면 어느덧 조수리에 속한 용선달리에 이른다.
한경면 중산간 4개 마을을 있게 한 근원지다. 1610년경 전주이씨 일가가 입주해 살기 시작했다. 거주민이 늘어남에 따라 조수, 낙천, 저지, 청수리로 퍼져나갔다. 설촌 당시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한라산 물장오리에서 땅속 물줄기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는 구멍목이에서 나오는 물을 식수로 썼다고 한다. 여름철 큰비가 오면 구멍목이가 터져 주변 농경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자 구멍목이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6개의 물통을 팠다. 4개 물통은 식수로 2개 물통은 가축 급수와 더울 때 사람들 목욕물로 썼다. 지금은 물통 4개가 남아있다.
두 그루 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주고 평상이 놓여있다. 쉬어가기에 딱 좋다. 등산 가방을 부려놓고 지친 두 다리를 뻗는다. 마을을 내다 볼 수 있어 전망도 그만이다. 코로나 이전 히말라야에서 트레킹을 한 고산병에는 아스피린이 최고라는 올레꾼과 만나 한참을 이야기했다. 한달살이해서 그런지 길 재촉을 하여 가고 조금 후 그 마을 청년인듯 한 손엔 작은 책상과 다른 손에 가방을 들고 왔다. 그 마음 알겠다. 자리를 비켜주고 길을 나선다.
오름 셋과 벗하면서 30여 분 정도 걸으면 저지오름 기슭에 다다른다. 맨 왼쪽 오름을 용선달리에서 만난 그곳이 고향이라는 그 청년에게 물어봐도 몰랐다. 가는 길에 만난 아저씨에게 여쭸더니 독세기(달걀의 제주어)오름, 또는 두병악이라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온다. 오름 지도에는 위치상 판포 오름같이 보이는데 거리상 차이가 나는 것 같아 확증할 수가 없다. 미지수로 남겨두자. 어차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인생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성이러니 생각하면서.
중간에 있는 오름은 정월이 오름이 확실하다. 그 앞에는 한림읍 월림리에 있는 더마파크가 있고 뒤로는 협재해변과 금능해수욕장이 있고 비양도가 작게 보인다. 맨 오른쪽 오름은 한림읍 상명리에 있는 느즈리오름(망오름)이다. 오름 뒤로는 한림항이 어렴풋이 보인다. 한림항에서 한라산 쪽으로 봤을 때 유독 눈에 띄는 오름이다.
저지오름(표고 239m)은 예로부터 저지리 일대에 닥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닥모루 오름이라고도 한다. 2007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오름 정상에는 깊이가 60m에 달하는 원형분화구가 있다. 목재데크 계단이 있어 분화구 안까지 내려가서 볼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이 사이좋게 잘 공존하는 오름 같다. 저지오름을 내려오면 저지 예술정보화마을이 있다. 13코스 종점이자 14코스, 14-1코스의 시점이다.
*지난번 제주 올레길 기행 12코스(4)에서 수월봉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 옆 오름은 병악오름이 아닌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금악오름으로 정정한다. 병악오름은 안덕면 상천리에 있는 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