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21코스: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종달바당까지(2)
하도리에서 가장 오래된 서문동 우물 하도리의 옛 마을 이름 '별방'의 유래 제주다움을 잃지 않고 개발하려는 하도리 마을 우묵 사스레피 나무와 광활한 태평양 바다 하도리 신동 코지 불턱과 애월읍 유수암 마을 우물 문주란 자생지 '토끼섬'
현대식으로 복원해 놓은 서문동 우물도 지난다. 하도리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이라고 한다. 마을의 일곱 동네에 한 곳씩 우물이 있었다고 하니 이곳은 서문동 마을에 있었던 우물인가 보다.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동네 이름을 물었다. ‘하도’라고도 하고, ‘별방’이라고도 한단다. 작은 동네 이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큰 동네 이름을 말씀하신다. 별방진이 갖는 무게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도리의 옛날 마을 이름이 별방이다. 중종 5년(1510) 제주 목사 장림(張琳)이 우도를 왜구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김녕 방호소를 철폐하고 이곳으로 옮겨 구축한 진이 별방진(別防鎭)이다. 제주의 9개 진성(鎭城) 중에 ‘특별한 방어(別防)가 필요한 진(鎭)’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별방이라는 마을 이름도 유래되었다. 1702년 제주 목사 이형상(李衡祥)이 화공 김남길을 시켜 제작한 기록 화첩인 <탐라순력도> 41점의 그림 중 별방조점(別防操點)과 별방시사(別防試射) 두 점이 수록될 만큼 역사적인 장소다.
하도리의 일곱 동네는 면수동, 서문동, 서동, 신동, 굴동, 동동, 창흥동이다. 제주에서 가장 긴 해안선(6.7km)을 보유한 마을이다. 해안선 굴곡이 심하고 수심은 얕으며 오름이나 건천이 없다. 처음 마을 공동체 사업을 본격화할 때 기존의 실패사례와 성공사례를 면밀히 분석하여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외부로 보이는 형식에 치중하는 사업이 아니라 내실을 다져 관계를 튼튼히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도리가 소득,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부문에서 모범적인 마을 만들기 사례로 손꼽히는 이유다. 제주다움을 잃지 않고 개발하려는 모습이 아름답다.
길가 엉성한 밭 담장엔 우묵 사스레피나무도 자라고 있었다. 사스레피 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이 뒤로 말려 우묵하게 들어가 이름이 우묵 사스레피다. 열매가 쥐똥 같고 해변에서 자라므로 갯쥐똥나무라고도 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탁 트인 해변이 나온다. 제주도의 동쪽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세계 바다 면적의 반을 차지한다는 태평양(太平洋)이다. 글자 그대로 광활하게 크고 평평하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갈 준비도 하며 작업 중 쉬기도 하는 신동 코지 불턱에도 들렀다. 하도리 신동 마을에 위치한 불턱이다. 이곳에서 해녀들은 물질 요령, 어장의 위치 파악 등 물질에 대한 정보와 기술을 습득한다. 1980년대 고무 옷을 입고 해녀들이 물질하면서 사라졌지만 하도리에는 열여섯 곳의 불턱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도 서문동 우물처럼 너무 현대식으로 복원되어 있어 옛 모습을 가늠할 수가 없다. 문화재 복원은 옛 모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면 좋을 것 같다.
작년엔가 무화과 익는 시절 무화과 따러 동서 부부랑 삼별초가 항쟁했었던 항파두리 위에 있는 마을 유수암에 갔었다. 그곳에 있는 우물을 보고 적이 놀랐다. 옛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었고 용천수가 콸콸 넘치게 흐르는 모습을 보고 마음도 용천수처럼 솟아올랐다. 제주도에 이런 기품있는 우물이 있다니. 과거 유수암엔 정말 큰 선비가 살았었나 보다. 다시 한번 그 우물만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일 만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신동 코지 불턱에서 10여 분 걸었더니 저 멀리 굴동 포구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표류하듯 떠 있는 작은 섬인 토끼섬이 보인다. 문주란(천연기념물 19호) 자생지다. 한여름 문주란꽃이 하얗게 펴 섬을 덮으면 그 모양이 토끼 같아 토끼섬이라고 한다.
하늘은 뿌옇게 구름이 깔리기 시작하고 금방 호우가 몰아친다. 우의를 꺼내 입고 등산 가방도 비에 젖지 않게 커버를 씌웠다. 우산을 펴니 비바람에 날려 우산 살이 굽어진다. 광야에 선 은수자마냥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