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21코스: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종달바당까지(1)

게릴라성 호우의 출현과 분꽃 분꽃 세상인 세화리 연대 동산 금방 내려가서 공놀이 하고 싶은 구좌읍 하도운동장과 전국에서 알아주는 구좌읍 당근 도랑물의 올레 오솔길과 하도리 별방진 제주도 제1호 해녀상을 받은 고이화 생가와 그녀의 삶

2023-09-28     김영희
세화리 연대 동산엔 까만 씨가 맺힌 분꽃을 비롯하여 분꽃 세상이었다. 올레길 마지막 21코스의 시작을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게릴라성 호우다. 그야말로 게릴라처럼 비가 출몰했다가 사라진다. 버스에서 채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제주 해녀박물관 버스정류장에서 옴짝달싹을 못했다. 어느덧 정류장 바닥에도 물이 차오른다. 신발도 벗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 정류장 밖으로는 분꽃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이번 올레길은 분꽃 풍년이다. 20코스에서 원 없이 보았던 분꽃들이 21코스 시작하는 마당에도 다시 눈을 즐겁게 해준다.

 

'수줍음 잘 타는 분꽃아, 겁쟁이라는 네 꽃말처럼 내 인생 마지막 여정을 조심스럽게 걷게 해주렴!' 분꽃에게 말을 걸어본다.

‘수줍어하는 분꽃아, 네 소심함이 내 마음 같구나. 겁쟁이라는 네 꽃말처럼 앞으로 나의 인생을 조심스럽게 걸어 나가게 해주렴!’ 분꽃에게 말을 걸어본다. 비가 그친 틈을 타 올레길을 시작하였다. 해녀박물관 정원을 벗어나자마자 연대 동산이 나온다. 조선 시대 통신수단이었던 연대가 있던 동산이다. 연대 동산도 분꽃 천지다. 오후 네 시 이후에야 꽃망울을 터뜨리는 수줍음을 잘 타는 꽃이라 그런지 얼굴을 가렸다. 까만 씨가 맺어 있는 분꽃도 보였다.

 

연대 동산에서 바라다 보는 구좌읍 하도운동장은 금방이라도 내려가서 공놀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눈길을 끈다.

연대 동산을 내려가자마자 구좌읍 하도운동장이다. 세화리에서 벌써 하도리다. 하도리 면수동 한길을 지나는데 당근밭이 많이 보인다. 전국에서 나는 당근의 70%가 구좌읍 당근이라고 한다. 색깔, 맛, 향기에서 으뜸으로 쳐준다. 올레길 1코스를 맨 처음 시작하면서 만났던 서귀포시 동쪽 첫 마을 시흥리 당근밭 생각이 나 기뻤다. 올레길 21코스 막바지에도 다시 만나 더없이 반갑다. 당근은 7, 8월에 파종하여 12월에 생산한다. 때는 9월이라 초등학생 중에서도 제일 귀여운 1, 2학년생 같다. 흙도 제주에만 있는 흑색 화산회토다. 제주 주변에 즐비한 흑색 현무암 돌들처럼 새까만 흙이라 그런지 마음까지 평온해지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하도리 면수동을 지나면서 보는 당근 밭은 올레길 1코스 시흥리에서 만났던 당근 밭을 떠올리게 해주어 반가왔다.

올레 오솔길은 벌써 도랑물을 이루었다. 가를 밟으며 조심히 지난다. 저 멀리 지미봉도 보인다. 하도 운동장에서 40여 분 걸었더니 하도리에 있는 별방진(別防鎭)에 도착했다. 조선 시대 제주 동부지역에서 가장 큰 진성(鎭城)이라고 한다.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타원형 성곽으로 둘레가 1,008m, 높이가 3.5m다. 제주 목사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 ‘별방조점(別防操點)’으로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 발길을 옮기니 고이화(高利花: 1916-2013) 해녀 생가도 보인다.

 

올레 오솔길은 내린 소나기로 도랑물을 이루었다. 가를 밟으며 조심히 걷는다.

       

       ....어머니를 따라 물질을 배워 14세부터 해녀가 되었다. 남달리 몸집이 크고

       숨이 길어서 어린 나이에도 ‘애기 상군’으로 불렸다. 어린 나이에 출가 해녀로

       일본과 전국 각지로 출가(出家) 물질을 다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해녀 활동을

       하던 중 일제강점기 시기인 1932년 3월, 우도 해녀 270명과 함께 10여 척의

       풍선에 나눠 타고 구좌읍 종달리 두문포에 내려 항일운동을 벌이다 일본 순사

       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해 생존 시까지 심한 상처가 남았다.

 

하도리 별방진은 조선 시대 제주 동부 지역에서 가장 큰 진성이었다.

   

   이듬해 부유한 시댁에 시집을 왔어도 일본 대마도까지 출가 해녀 생활을

   계속하였다. 해방을 맞아 제주도로 다시 돌아왔으나 4.3사건으로 시댁 식구들이

   모두 경찰에 죽임을 당하고 남편마저 화병으로 죽는 비극을 맞는다. 그 뒤

   충청도와 백령도 등지에서 물질을 계속하며 아들 4명을 잘 키웠다....

 

별방진에서 조금 발길을 옮기면 제주도 제1호 해녀상을 수상한 고이화 해녀 생가도 보인다.

두문포는 지금 종달항이다. 백령도와 충청도, 심지어 일본 대마도까지 집을 떠나 생계를 이어가는 출가(出家) 물질을 다녔던 제주 해녀들의 강인한 삶의 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생존 시에 제주 최고령 해녀로 활동하였으며 지역별 해녀 명창과 노래를 소개한 공로로 제주도 제1호 해녀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