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아들. 해녀박물관을 찾아서
여성으로서의 해녀들은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정신으로 물질을 하면서 제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해녀(어머니)들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해녀박물관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프로그램을 통하여 관람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 불턱(쉴 수 있는 곳이며 불을 쬘 수 있는 장소)을 보는 순간 필자가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가서 물질(바다에 들어가 해산물 등을 채취하는 일))하고 나온 어머니의 모습과 불턱 주위에 동그랗게 앉아 물속에서의 얼어붙은 몸과 추위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힘들게 물질을 하고 추위를 녹이려고 미리 집에서 준비해 온 땔감들을 모아 불을 지피고 젖은 물옷을 불을 쬐면서 어린 아들에게 소라를 구워서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났다.
해녀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랬듯이 물속에서의 언 몸과 추위를 불턱에 몸을 녹이면서 물속에서의 전율과 풍경 그리고 바다농장의 생태 본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해녀 간의 용기와 의욕, 힘을 복 돋게 하는 말과 농사일까지 주고받으면서 몸이 따스함을 느낄 때쯤이면 물질하러 올 때의 옷을 갈아입고 태왁(바다에 뜰 수 있는 큰 박과 그물로 된 바구니)을 정리하여 물질의 일과를 마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살아계실 적 해녀 때의 지나간 일에 있어 말을 할 때면, 그거(큰 전복) 잡아서 부자도 안되었는데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손만 병신 되었다고 한다.
물속으로 잠수를 하여 구살(성계) 옆에 큰 전복을 보는 순간 꼭 잡아야 겠다는 생각에 빗창(뾰쪽하면서 조금 넓은 철로 만든 도구)을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큰 바위와 바위 사이에 큰 전복이 붙어 있어 여간해서는 따고 나오는데 바위틈에 구살이 붙어 있어 숨이 벅차 물속에서 나와 숨을 고르고 난 다음 들어가서 전복을 따는데 구살 가시가 엄지손가락에 쏘이는 동시에 전복을 캐고 나왔지만 엄지손 가락에는 피가 흘러도 물때(썰물 시간에만 먼 바다까지 들어갈 수 있는 시간) 때문에 물질을 계속하고 나왔다고 하면서 또 손을 주무르면서 잡아도 혼자 말처럼 부자도 안됐다고 하며 세월이 흘러 엄지손가락이 휘어져도 누구를 탓하지 못하고 오르지 먹고 사는 데만 신경 쓰다 보니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요즘 세대의 젊은 사람들은 어머니(해녀)의 손을 보면 여성의 손이라 할 수가 없다 할 것이며, 병원가서 구살 가시를 빼고 치료를 받았을 텐데 당시에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은 해외 나가는 것처럼 큰 비용이 들어가 엄두도 못 내는 시절이였으며, 조금 아픈 것에는 참고 견디고 크게 아프다 할 때는 심방(신을 모시는 사람, 신내린 사람)을 모셔다가 굿(신께 비는 제사 )을 하던가 신당 또는 바닷가에 가서 정성을 다하여 제를 지냈던 기억이 박물관 1층 전시실에 짚으로 만든 작은 배들을 보니 당시에는 얼마나 신에게 의지를 많이 했었는지 알 수가 있었으며,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우선순위가 굿을 했던 기억이 지나간 역사를 보는 것 같았다.
이처럼 제주의 해녀(어머니)들은 온몸을 바다의 신께 맡기고 억척스럽게 가족과 가정을 위해 오르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해녀(어머니)들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