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플라워 하얀 국화
내 마음의 플라워 하얀 국화菊花
한 복 섭
새하얀 국화꽃처럼 피어나고 싶다. 가을날의 주는 향기로 피어나는 마음이 되고 싶다. 잎새마다 송이마다 자그마한 소망의 꿈과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하얀 국화 한 송이마다 사랑을 담뿍 담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내 젊은 날의 그 큰 꿈을 이루듯이 못내 아쉬움보다는 풍성한 마음이 그윽한 향기를 담아 말이다.
이제껏 칠십 평생을 살면서 온갖 세상 것들로 더럽혀진 내 마음 한 편이 새하얗질 못하니 가을날에 애련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 이 가을의 잔털로 다듬어진 국화 옆에 있고 싶은 걸 어쩌란 말인가? 반성과 회개만이 살길이란 것을 어찌 내가 모른다는 말이 되지 않는 듯, 되묻고 싶다.
인생, 험한 고갯길 따라 굽이굽이 걷다 보니 어느새 황혼길에 접어들었다. 우수수 낙엽과 더불어 가을이고 보니 잎새마저 고결高潔한 마음을 안고 품위와 강한 자존심을 사로잡는다. 가을의 시샘은 아니련만, 십수 년 동안 어김없이 가을비가 내리고 그 비를 따라 새하얀 가을바람과 함께 털북숭이 꽃봉오리 속에서 가을날 때 이른 된서리 맞은 것처럼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흰 꽃잎을 펼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지난 며칠 전에 전례 없는 시월의 한파가 몰아쳤다.
내 평생에 시월의 한파라니 믿기질 않는다. 그리 대단하게 눈보라 비를 퍼붓는 것도 아니건만, 거의 꽃잎을 떨구는 듯 보인다. 학문을 익혀 문학을 배우고 공부하는 지성인知性人의 한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저 하늘에 계신 누군가가 활짝 핀 국화를 몹시 시샘하는 듯싶다.
절기상 입추가 지나고 추분 앞뒤로 본래 가을비가 자주 오는 편이긴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무렵엔 국화꽃을 피운다. 너무도 불행한 우연의 일치라 환경과 까닭이 혹여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 옮겨 심었기 때문일까. 의심해보지만 국화꽃은 동남아시아 원산지다.
백악기 중반부터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그러므로 국화는 이토록 개화 시기를 감내하며 오래도록 진화했다. 세상에 국화만큼 하얀 꽃잎처럼 사연도 없다. 사람의 곁에 서 있을 때는 한없이 희고 곱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칭송과 사랑과 애환哀歡을 같이한 사랑 나눔의 꽃이다.
어떤 이는 국화꽃을 보며 애틋한 옛사랑을 떠올린다. 가을비 내린 거리마다 그대 떠난 아름다운 추억, 사뭇 그리움으로 피어난 모습 이 가을에 피어나고 있다. 순진한 유년 시절의 소년이 모습 인양 말이다.
국화의 의미, 삼륜에는 우리의 선조들의 외양보다는 ‘덕德, 지志, 기氣,’를 취한다고 하였는데 국화菊花 에게는 이 세 가지의 뜻이 담겨있다. 일찍 심어 늦게 피는 군자의 덕, 서리를 이겨내는 신비의 지, 물 없이도 피어나니 한 사의 기라 하여 이것을 삼륜이라 했다.
늦가을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외압의 굳은 의지로 살아가는 기골奇骨이 있는 인물에 비유되기도 하며 고려의 사직을 지키려다. 순사 한 정몽주의 시, ‘국화탄’에서는 충절의 의미로 부여한다.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제주시 민속 오일시장에 들렀다. 전엔 오일시장에 오면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이 북새통을 이뤘는데 코로나19로 말미암아 한산한 편이다. 행여 상인들의 경제에 미치는 생활이 사뭇 걱정이 앞선다.
가을날 국화꽃 사연만큼이나 품바의 여정 같은 인생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한숨 부리고 지고 온 등짐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여기저기 들러보다 꼭 들러보는 곳이 있다. 가을 국화가 생각이 나서 꽃집에 들렀다. 아름답고 곱게 핀 화원이 나를 부르는 것 같다. 정말 화원에 둘러쌓인 내 모습, 어쩌면 자신도 품바의 여정 같은 인생이다.
몇 그루의 꽃을 샀다. 대만 한란寒蘭을 샀다. 가느다란 잎새에는 고귀한 품위를 지키며 엄숙하다. 내 품위와 자태를 지켜주는 것 같아 어깨가 으슥하다. 그런 다음 다복하게 화분에 심어놓은 빨강, 노란 국화꽃을 사서는 살고있는 베란다에 얹어 놨다.
역시 가을 국화 못지않게 가을 정서에 맞게 냄새가 물씬 풍긴다. 향기가 나를 부르기에 가까이 가서 입맛춤 하며 어루만졌더니 마지막 내 뿜고 넘겨주는 혼이 될 것이라고. 코끝이 시큰 등 내 마음엔 부서지는 파도의 여파가 몰려왔으리라.
문득 누군가에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지난해 내 가정의 아들에게 시집을 와서 도움을 주는 며느리 카오티엔(CAO THI YEN)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꽃을 선물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속으로 우러나왔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아들이 먼 곳 이국만리 베트남Vietnam 여성과 결혼을 했다. 가문의 1代를 이어갈 대장군 같은 손자까지 낳고 사랑스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손주와 며느리는 내 친딸 같은 며느리다.
아니나 다를까 친딸처럼 시아버지의 사랑으로 일관하고 있다. 머나먼 이국만리 부모 형제들과 이별을 하여 한국이란 곳으로 시집을 와서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대단하고 기특하다. “카오티엔 며느리, 애야”
“내 비록 부족하고 모자랄지언정 울타리가 되어 시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도움을 주고 지켜주고 싶단 말이다.”
한국의 성을 따서 시 아버지인 내가 이름을 지어줬다. 고高 한閑 나羅 라고~의미는 이러하다. 높고 한정수의 아름다움으로 곱게 피어나라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신이 며느리에게 선물 했다는 의미가 믿어지질 않는다. 한편으론 내 평생에 처음 있는 일이라서 어쩌면 순수하고 고결한 마음, 나눔의 정성 하나로 마음을 담고 담아 전해드리니 며느리도 내면으론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다. 살며시 미소짓는 모습에서 국화 향 내음 품은 가을 여인만이 지닌 소연素輦한 유정有情일 것이리라.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풀뿌리 나눔의 문화 정신으로 민족의 아픔을 나누고 제주인은 이웃과 나누며 세월을 살아왔다. 주는 마음, 며느리에게 선물 하고 나니 오늘 내내 마음 뿌듯하다.
가을볕에 들녘을 나서보면 기다란 목을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게다가 돌담장너머의 제주의 밀감 향기 노랗게 익어가는 모양 아름다운 모양을 보고 있노라니 하얀 국화 향기가 내 마음속에 그윽하다. 하얀색을 중심으로 노란 연분홍 수만 가지 셀 수 없는 국화 품종이 한대 어우러진 이 세월에 청춘의 일기장日記章을 써본다. 내 마음 밭에선 지금쯤 얼마나 많은 옛사랑이 그림자가 지고 있길래 오늘도 누구의 마음 밭에 바치오리까.
고통의 바람은 불어와 교만의 싹을 키우지 않기 위해 꾸준한 인내를 감내하며 이겨내는 행복으로의 새하얀 국화 송이처럼 마음이 다듬어져야 한다.
“가을볕이 좋은 날에 내 마음의 플라워 새하얀 국화 이고 싶다” (21.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