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하얀 잠옷
아내의 하얀 잠옷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이른 아침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밖을 내다보니 저 산 너머 남촌에서 봄이 오고 있었다. 산과 들에 울긋불긋 철쭉과 진달래가 한창이어서 이와 같이 봄은 우리의 가슴에 안식 할 수 있는 주님의 품속처럼 언제나 따뜻하다.
며칠 전에 섬기고 있는 ‘제주서문교회’에서 사월 한 달을 맞아 부활절, 고난의 주일을 맞이했다.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인간人間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다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기독교인들에게는 한없는 기쁨이요. 영광이다.
이와 같이 모든 새 생명의 탄생과 함께 축복을 받는 주님의 계절을 맞이하며 내겐 언제나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을 수 있어서 머무르고 싶은 계절이다.
따뜻한 봄이 오면 좋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지난날, 삶의 어려웠을 때의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우선 경제적인 예를 둘 수 있다. 가정이 가난하여 남들처럼 여유롭게 살지를 못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다.
아내와 어린 자식들에게 미안하기 이룰 데가 없어 늘 마음이 아렸다. 봄은 여름에 이어지기까지 땔감 걱정 겨울 난방비가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나와 같이 가진 것이 없는 시골 사람에게는 늘 따뜻함이 맴도는 고마운 계절이다.
지난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리라. 고향 집, 뜰 안에 나와 앉아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어머니가 이른 봄날, 갯가에서 캐다 며칠 동안을 정성들여 봄볕에 말린 시원한 우미 냉국이며 평화의 섬, 삼다 제주도 특유의 자리 돔 물회를 만들어 먹던 추억이 오늘따라 아련히 떠오른다.
“이 봄날, 거리에는 연둣빛 실은 사랑 노래가 넘실거리는데, 시원한 우미 냉국 한 그릇 만들어 줄 사람 거기 누구 없소” 혼자서 중얼거리며 이렇게 긍정의 힘을 잃지 않고, 용기 있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집에서 글을 쓰려고 이것저것 서재를 뒤척이는데, 아내가 시장을 보고 오라는 말을 한다. 그 말에 난 귀가 솔깃하여 시원한 냉커피 한잔 만들어주면 갔다 오겠노라고 했더니 선뜻 만들어준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걸어갈 나의 길, 세상 밖으로 나서고 있다. 언제나 밖에 나설 때면 장애인용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지난 2003년, 오래전의 일이다. 제주시 용담2동에서 셋방살이 할 적에 ‘KBS한국방송‘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에서 전동휠체어를 지원을 받고 한국복지재단에서 건네받았다.
그때는 생활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내 힘으로 한국복지재단에 문의 하여 얻어낸 것이 나의 손과 다리 역할을 해주는 장애인용 전동휠체어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 오늘도 불편한 몸을 싣고 이곳저곳을 쉽게 다닌다. 창조주의신 주님의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다닐 수가 있기에 얼마나 고마운 일인 가.
전동휠체어만 타면 어디든지 가지 못하는 데가 없고 즐거운 찬송가를 부르며 길을 나선다. 살고 있는 삼양일동으로 곧장 내려와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많은 지인들을 거리에서 만난다. 많은 행렬 속에서 내가 살아야 한다는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거리에서 웃음 가득한 정담을 나누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신작로 길에서 반갑기가 이를 데 없다.
시내 화북동 뉴 월드 마트에 들어섰다. 거기서도 모르는 지인이 없을 정도로 인기 만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시장을 봐주겠다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내가 인심이 후해서 그런 걸까. 고마운 사람들이다.
물건을 사려고 이 가게 저 가게 두루 살피다가 언뜻, 아내 생각이 떠올라 2층 여자 옷가게로 들어섰다. 양말, 외,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놓고 이곳저곳을 살피는데, 내가 서 있는 발 앞에 하얀 까운, 여자 잠옷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유난히 눈에 띈다.
문득, 아내에게 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조심스레 옷가게 여주인에게 값이 얼마냐고 물어봤다. 자주 오는 손님이라서 싸게 드릴 테니 “아내를 사주면 기뻐할 것”이라 했다. 난 속으로 빙그레 웃으며 싸달라고 했더니 여자 주인이 잠시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기도를 하는 것으로 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난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느라고 애썼다.
처음으로 아내의 잠옷을 샀다. 느낌이 이상하다. 예전에도 시내에 와서 옷을 사주긴 했지만, 오늘 이 순간만은 사뭇 기쁘고 마음 설렌다.
예쁜 핑크색 포장에 리본까지 달아 옷가게 주인은 지극 정성으로 아내에게 “여보! 사랑합니다”라고 하면서 건네주라 한다. 옷가게 주인이 하는 말에 집에 오면서도 그 말이 내내 귓전에 맴돌며 여운으로 남았다.
시장 나들이를 보고 돌아왔다. 아내가 문 앞에서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갔다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하며 시장을 보고 온 물건을 들고 방에 들어섰다. 짐을 풀고 나서는 내가 사온 하얀 잠옷을 “사랑합니다” 하며 옷가게 여자 주인이 시킨 그대로 말하면서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사 온 하얀 잠옷을 잠시 보더니만 아내가 우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다. 나도 울었다. 우리 부부는 같이 울었다. 한 참 동안 지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나니···.
잠시 후, 주님의 인도 따라 환한 모습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게 한다. 내가 처음 교회를 나가 섬기면서 예수님과 첫사랑으로 만났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저 높은 곳에서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 주님과 우리 셋이서 오늘 하루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다.
세상 살면서 아내에게 미안한 일들이 너무나 많아 글을 쓰거나 할 때면 주님과 아내를 떠올린다. 장애인의 몸인 우리 부부는 신앙을 갖고 하나님이 맺어준 보금자리에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
저녁이 됐다. 저녁 식사를 아들하고 셋이 함께하며 낮에 있었던 아내의 잠옷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아들도 바라보며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하얀 까운의 아내의 잠옷! 아무리 아내를 처다봐도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내가 잠자리에 들면서 입고 있는 모습을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뽐을 내다 “여보! 내 모습 어때요” 하면서 나에게 다가와선 보인다.
아~ 이게 웬일이야!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다. 최고의 사건이 아닌가. 아내가 10년? 아니 20년을 젊은 여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보다 열 살 아래인 젊으나 젊은 예쁜 아내인데 내가 놀라서 웃는 소리에 아들도 또다시 뛰어나와 빙그레 웃으며 보고 간다. 옆에 아들만 없었더라도, 지극히 사랑하여 주련만-.
“주님! 고맙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 자그마한 마음의 증표로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순백純白의 새하얀 잠옷을 바칩니다. 속죄하는 마음의 증표를.” (202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