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5코스: 한림항에서 고내 포구까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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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5코스: 한림항에서 고내 포구까지(5)
  • 김영희
  • 승인 2021.07.16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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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리의 자랑 금산 공원
금산 공원 안의 포제청
송석대와 인상정에 걸려 있는 납읍 초등학생들의 시
새못과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인생은 학교 우리는 영원한 학생
텅 빈 공간이 가져다 주는 여러가지 것들
납읍리 금산 공원 입구이다. 바로 곁에 납읍 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납읍리 금산 공원 입구이다. 바로 곁에 납읍 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납읍리가 자랑하는 금산공원은 한라산 서북쪽 노꼬메오름에서 발원한 용암이 애월 곶자왈의 끝자락에 다다라 형성된 곳이다. 1만 3천여 평에 다양한 식물 200여 종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제주시 서부지역에 위치하여 평지에 남아있는 보기 드문 상록수림 지대이다.

자연림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원식생 연구에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천혜의 난대림 식물보고지로서 매우 가치가 높다고 한다. 인상정(仁庠亭)과 송석대(松石臺)가 있어 선인들이 글을 짓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1993년 천연기념물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도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금산 공원 안에 있는 포제청의 모습이다.
제주도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금산 공원 안에 있는 포제청의 모습이다.

공원 안에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포제청이 있다. 포제청에는 제단이 세 개 있다. 객신으로서 인물재해(人物災害)의 신을 위한 포신단,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위한 토신단, 서양에서 들어온 마마, 홍역의 신을 위한 서신단이다. 매년 정월에 남성들이 주관하고 유교식으로 봉행한다. 현재는 서신을 제외한 토신과 포신에게만 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금산공원 안의 어떤 종가시나무와 후박나무는 두 손으로 감싸 안아도 못 안을 만큼 덩치가 큰 아름드리나무다. 인상정과 송석대에는 금산공원 바로 곁에 있는 납읍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가 걸려있다.

 

 

금산 공원 안의 송석대와 인상정엔 납읍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가 걸려 있다.
금산 공원 안의 송석대와 인상정엔 납읍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가 걸려 있다.

 

   나무는 우뚝 햇빛은 반짝

   새들은 짹짹짹

   뱀들은 스르르르

   바람은 살랑살랑

   낙엽을 밟으면 바스락

   비가 오면 똑독또독

   금산공원을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름다운 금산공원

 

5학년 어느 학생의 시 ‘금산공원’이다. 의성어와 의태어의 조합과 배열이 맛깔스럽다. 납읍초등학교는 제1회 ‘아름다운 학교를 찾습니다’ 사례 공모전에서 아름다운 학교로 뽑혀 대상을 받은 학교이기도 하다. 천연 잔디가 깔려있고 작고 아담해 근처에 산다면 우리 손주를 보내고 싶은 학교다. 제주 올레 1코스를 걸을 때 동부지역의 종달초등학교가 그랬었는데 올레 15코스를 걸으면서 서부지역에도 그런 곳이 한군데가 더 생기다니 좋다.

새못 주변에 연꽃이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새못 주변에 연꽃이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납읍리 중심에 있는 ‘새못’이라고도 부르는 공동정호(共同井戶)에 얽힌 일화가 재미있다. 새못을 만들기 위하여 무를 정사각형으로 잘라서 한 조각 한 조각 붙여 쌓아 올려보고 못을 만들려면 규격화된 돌이 몇 개 필요하다는 계산하에 마을의 각 호마다 일정하게 돌을 다듬어 오게 하여 큰 못과 작은 못을 만들고 두 못의 물을 밑으로 통할 수 있게 하였다는.

공사를 맡은 도로 총감독은 어떤 분이었을까.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의외로 반갑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에 주변에선 구두쇠로 소문이 나서 부끄러웠었다. 사적인 영역에서의 그런 모습이 배움을 통하여 공적인 영역으로 옮겨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여기서 돌에 새겨지며 상찬받는 것처럼은 아닐지라도.

배움! 역시 중요한 영역이다. 평생 배워야 하는 평생 교육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학교이며 우리는 그곳에서 배우는 영원한 학생일 뿐이다. 지금도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노라니 아버지의 옛 모습이 그립기까지 하다.

제주 올레 15코스에는 포함이 안 되었지만 고내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바닷가 모습이 인상적이다.
제주 올레 15코스에는 포함이 안 되었지만 고내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바닷가 모습이 인상적이다.

새못에서 30여 분을 걸으면 과오름 옆을 지나게 된다. 과오름에서 고내봉 입구까지도 30여 분 걸린다. 고내봉에 있는 절인 보광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올레길에 포함되지 않지만, 경사가 심하지 않아 어린이들도 오르기에 좋다. 탁 트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텅 빈 공간에서 오로지 한라산하고만 단둘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텅 빈 공간 사이를 가로지르며 제주 비행장을 향하여 날아가는 비행기를 본다. 텅 빈 공간이 비행기를 품어주는 모습을 보며 여유, 여백, 여운이라는 낱말을 떠올려 본다. 우리는 얼마나 여유, 여백, 여운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 마음속에 그런 텅 빈 공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걸까.

보광사 입구에서 고내봉 옆길로 15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일주서로가 지난다. 그곳을 건너 다시 15분 정도 고내마을을 지나면 올레 15코스 종점인 고내 포구가 나온다. 마을 우영팥(텃밭의 제주어)엔 참깨가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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