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읽는 오늘] 고길선의 시, '군드러진 줄기 끝 꽃 날개는......,'
상태바
[시 한 편 읽는 오늘] 고길선의 시, '군드러진 줄기 끝 꽃 날개는......,'
  • 유태복 기자
  • 승인 2024.04.03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드러진 줄기 끝 꽃 날개는......,'

고길선

지분거리는 하늬바람에 쓰러지는 낮달이 시리다.
숨고르기 하며 비워 내는 하늘
날빛 부끄러워 쪽 구름 뒤에 매달린 풍경들
해그늘 기운 뜨락에 시선으로 머문다.

남몰래 들어앉은 도담스런 너덧의 살사리꽃
너설 틈에 끼어 숨 가쁘게 매달려 나달거린다.
군드러진 줄기 끝 꽃 날개가 애처러워 보이는 건
견디다 지쳐버린 내 모습
새 처마 끝 오래되어 사그랑대는 저녁 시간
비틀거리며 골목을 지나는 바람 소리
돌담 끝에서 꿈을 꾸는

작은 이야기를 듣는다.
 

고길선의 시, ‘군드러진 줄기 끝 꽃 날개는......,’ 전문 
『월간 문예사조』 2024. 3월호.

 

고길선 시인
고길선 시인

시작 Note
음력 오월 무렵이다. 초여름 들어서는 계절. 서해바다 어디쯤에서 철 지난 하늬바람에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본 하늘에서는 쪽빛 구름에 매달리는 시간들이 풍경으로 다가온다.

선모양으로 낱낱이 갈라진 잎을 가진 성질 급한 자주 빛깔 살사리 꽃 그녀가 눈에 들어온 것은 남은 하루 끄트머리였다.

낮달에 고개 숙인 그녀. 훈풍에 나달거리는 그 모양이 애달파 보여 시선이 머물렀음이다.

어디서 날아왔을지 모를 살사리 꽃 씨앗이 혼자서 의지할 곳 없는 구석진 너설 틈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모양새를 보니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내를 들킨 볼 빨간 새댁의 몸짓처럼 애처로워 보였음이다.

여름 끝 초가을의 정취 중 늘 군드러진 줄기 끝 조각조각의 꽃잎을 보면 어머니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고 줄기 끝 나달거림은 당신 닮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내게 간절하게 닿길 바라는 손짓이지 않았을까. 혼자서도 의연하게 버티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돌담 끝 올레로 돌아드는 한 세월 이야기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내게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