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한 편 읽는 오늘] ‘그해 늦가을은’ - 박효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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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한 편 읽는 오늘] ‘그해 늦가을은’ - 박효찬 
  • 유태복 기자
  • 승인 2021.04.28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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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회천마을 지나가는 좁은 길 옆에 묘가 이체롭다.
제주시 회천마을 지나가는 좁은 길 옆에 묘가 이체롭다.

 ‘그해 늦가을은’ 
 

아버지는 대대로 내려오는 농부였다
무자년 늦은 가을
아버지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텃밭 웅덩이에 양식과 의복을 묻었다 

그리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는 *동괴로 식구를 데리고 
어스름한 달빛을 따라 동굴을 봉했다
시대적 아픔으로 흔들리는 촛불 같은 자식들의 목숨을 건져내기 위해
토벌대라는 명분으로 무자비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

하룻밤이 지나고
평화가 아닌 공포의 세상을 맞으며 동괴의 입구는 열리고
공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달리던 열세살 어린 조카의 발목이 잘렸다
군인은 백성들에게 처형의 고백을 알리고 훈장처럼 발목을 내놓았다
초목도 죽고 꽃들도 울었다 

그러나
군인은 울지 않았다
공비도 울지 않았다
불을 내뿜은 총구와 몽둥이와 함께 춤을 추웠다
시냇물처럼 널브러진 시체들을 건너다니며 

그렇게
봉아름의 그해 늦가을 왕벚꽃나무는 서럽게 울었다.

- 박효찬 시인의 시 ‘그해 늦가을은’ 전문 -
 

*동괴 : 이 자연 동굴은 제주시 서회천에서 약 700m 남쪽에 위치에 있다. 남쪽으로 굴 입구가 크게 뚫어져 있고 동북쪽으로는 한 사람 들어갈 정도의 굴 입구가 있다. 남쪽으로 뚫인 큰 입구는 돌담으로 쌓아서 막았고 작은 입구를 사용하여 제주 4•3사건 당시 사람들이 이 굴에서 생명을 부지한 곳이기도 하다.

 

박효찬 시인
박효찬 시인

박효찬 작가의 시작 노트에는 ‘외삼촌(제주4.3사건의 기록-고한구 씀)과 엄마가 겪으며 아파했던 삶을 그려낸 글이다’라고 한다

이 작은 굴 입구는 바위틈으로 한 사람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을 넓은 돌 하나로 덮어 막으면 어느 쪽이 굴 입구인지 사용했던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 굴 입구를 발견하지 못한다. (자료: 제주4•3사건의 기록-고한구씀)

4월이 되면 제주도민들 집에는 제사가 많다. 4•3사건이라는 슬픈 역사로 인하여 아픔을 묻으며 제사를 지낸다.

우리 기억에서 잊혀가는 4월의 봉아름, 역사의 산증인이 모습을 그려지는 마을이다 시인의 외가이며 역사이기도 하다

박효찬 시인은 강원도 속초 출생이다. 출생지가 제주도인 부모님 따라 엄마의 친정인 제주시 봉개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제주4•3사건을 겪고 자란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듣고 사건의 비극을 시로 승화 시켰다.

박 시인은 [월간 시사문단] 시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최충문학상 위원장과 본심 심사위원으로 있다 이외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갈밭의 흔들림에도]. [화려한 나들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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