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2코스: 무릉 외갓집에서 용수 포구까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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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2코스: 무릉 외갓집에서 용수 포구까지(2)
  • 김영희
  • 승인 2021.04.22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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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시 '사월의 노래'와 목련
4월은 잔인함과 고귀함이 교차하는 계절
미국 시인 윌리엄 스태포드의 시 '인생이란(The way it is)'과 헤라클레스와 간디

 

산경 도예 내부의 모습. 맞아주는 사람이 없어 좀 서운하였지만 나를 보라는 듯 도자기들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산경 도예 내부의 모습. 맞아주는 사람이 없어 좀 서운하였지만 나를 보라는 듯 도자기들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음의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봄비로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어주고

   메마른 알뿌리로 가냘픈 목숨을 먹여 살려 주었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유명한 433행의 장편 시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제주 4·3 사건, 세월호 참사, 4·19 혁명으로 점철된 우리의 현대사와 잘 오버랩되어선지 사월이 되면 강력한 힘으로 다가오는 시다. 그림이 화가를 떠나면 화가의 것이 아니듯, 시도 시인의 손을 떠나면 더 이상 시인의 것이 아니다. 독자와 관객의 것이 된다. 원래의 의도야 어떻든 사월에 많이 인구에 회자 되는 시가 되었다. 그만큼 시인의 힘은 세다. 그래서 시인이 사는 마을은 축복받은 마을이라 하는가.

 

   

폐교 이전 등하교하는 어린이들을 맞이하였을 듯한 돌하르방의 미소가 온화하다.
폐교 이전 등하교하는 어린이들을 맞이하였을 듯한 돌하르방의 미소가 온화하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자연을 바탕으로 토속적 작품을 많이 남긴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이 작시한 것에 최초의 여성 작곡가인 김순애가 작곡해 봄이 되면 많이 부르는 ‘사월의 노래’다. 물 위에 핀 연꽃이 아닌 나무에 핀 연꽃이란 뜻을 가진 목련(木蓮)! 봄의 여왕인 목련꽃은 수많은 꽃들이 태양을 바라보기 위해 남쪽을 향하여 피는데 북쪽을 바라보며 피기 때문에 북향화(北向花)라는 애칭도 가졌다. ‘고귀함’이란 꽃말을 가져서인지 조선 왕조 왕실의 꽃이 되기도 하였다.

생명의 잔인함과 고귀함이 교차하는 계절인 사월! 어쩌면 인간의 내면에 숙명적으로 가지고 있는 양면성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 정화(self-purification)의 길이 동시에 사회 정화의 길이 되는 걸까. 인생에도 매양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한다. 밖으로는 시대의 파고(波高)로 인해 안에서는 감정의 파고에 의해. 이 둘에 휘말리지 않게 인생의 바다를 잘 헤엄쳐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 작황이 좋다는 양파 밭 저 멀리 좌로는 수월봉이 우로는 당산봉이 보인다.
올해 작황이 좋다는 양파 밭 저 멀리 좌로는 수월봉이 우로는 당산봉이 보인다.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다.(There’s a thread you follow. It goes among)

   변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가지만 변하지 않는.(things that change. But it doesn’t change.)

   사람들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 한다.(People wonder about what you are pursuing.)

   너는 그 실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You have to explain about the thread.)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But it is hard for others to see.)

   네가 그것을 붙잡고 있는 한 길을 잃지 않으리라.(While you hole it you can’t get lost.)

   비극은 일어날 것이고; 사람들은 다치거나(Tragedies happen; people get hurt)

   죽을 것이다; 그리고 너도 고통받으며 늙어갈 것이다.(or die; and you suffer and get old)

   세월이 펼쳐주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Nothing you do can stop time’s unfolding)

   너는 그 실을 꼭 붙잡고 놓쳐서는 안 된다.(You don’t ever let go of the thread.)

 

미국의 시인 윌리엄 스태포드의 ‘인생이란(The way it is)’ 시다. 실을 꼭 붙들어야 한다는 대목이 가슴에 와닿는다. 헤라의 영광인 헤라클레스가 황금 사과를 따기 위해 길을 떠났다. 라돈이라는 무시무시한 용이 황금 사과나무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그 비결을 아는 것은 바다의 버금 신인 네레우스다. 변신의 귀재인 그의 손목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서야 알아낼 수 있었다. 그처럼 실을 꽉 붙들고 있어야 한다. 모든 성공과 실패의 변곡점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꼭 붙들어서 포기하지 않는 데에. 간디가 추구했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운동도 그렇다. 진리(사티아)를 꼭 붙들고(그라하) 있어야 한다는 것!

신도 2리 밭길 사이를 지나면 해안도로가 펼쳐지며 신도 바당 올레가 시작된다.
신도 2리 밭길 사이를 지나면 해안도로가 펼쳐지며 신도 바당 올레가 시작된다.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도 지났고 사월도 중순을 넘었다. 녹남봉을 내려오니 옛 신도초등학교를 개조한 산경도예가 있다. 거기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다시 길을 나선다. 폐교 이전 교문에 있었던 것 같은 돌하르방이 웃으며 작별을 고한다.

도로를 건너면 신도 1리 마을이다. 포장된 마을 길을 지나 신도 교차로가 나온다. 교차로를 넘어서면 신도 2리다. 신도 1리, 2리, 3리가 무릉1리 마을이다. 신도 2리 밭길 사이를 지나다 보면 어느덧 해안도로가 나온다. 신도 바당 올레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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