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2코스: 무릉 외갓집에서 용수 포구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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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2코스: 무릉 외갓집에서 용수 포구까지(1)
  • 김영희
  • 승인 2021.04.12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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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푸드 운동과 로컬 기업 '무릉 외갓집'
'일강정 이도원 삼번내'
농자천하지대본과 식량주권
미술사학자 이동주 선생의 추사체 제주도 성립론
명당이란?
눈길 끄는 좌기동 한길가 꽃들
평지 교회와 고은의 단시 '그 꽃'
녹나무의 효능과 녹남봉 그리고 모란 꽃
마을 기업 '무릉 외갓집' 내부의 모습. 무릉리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마을 기업 '무릉 외갓집' 내부의 모습. 무릉리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신제주 로터리에서 820번 버스를 타고 무릉2리 인향동에서 내렸다. 11코스의 종점이자 12코스의 시작점인 무릉 외갓집에 가기 위해서다. 한길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지나온 모슬봉과 함께 가시오름도 보인다. 10여 분 걸어 도착하였다. ‘무릉 외갓집’은 무릉리 마을 농부들이 생산한 농산물들을 취급하는 마을 기업(로컬기업)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소비자의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와 식품 안전의 우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로컬푸드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로컬푸드란 소비되는 곳과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되는 식자재, 또는 그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말한다. 로컬푸드를 소비함으로써 환경 보호와 생산자의 안정적인 소득 창출, 소비자의 안전한 먹거리 확보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성을 형성하고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게 되는 바람직한 운동이다. 인너넷에 들어가 무릉 외갓집을 쳐서 회원으로 신청하면 택배로 배달도 된다고 한다. 대형마트에서도 살 수 있도록 진열해 놓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하니 수수료가 비싸다고 한다. 제주 사람은 제주에서 난 농산물을 먹어야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아니던가.

좌기동 한길가의 꽃들은 길손에게 기쁨을 주며 가던 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좌기동 한길가의 꽃들은 길손에게 기쁨을 주며 가던 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강정 이도원 삼번내’라는 말이 있다. 일등은 강정마을, 이등은 도원마을, 삼등은 번내마을이라는 뜻이다. ‘번내’는 화순 마을의 옛 지명이다. 볏내가 변하여 벗내>번내로 되었다고 한다. 벼를 많이(벼) 수확하며, 물이 있는(내) 동네가 합쳐진 마을 지명이다. 제주에서 토양이 비옥하기로 소문난 마을들이다. ‘농업은 천하에서 가장 으뜸이 된다(農者天下之大本)’라는 말처럼 옛날은 농사가 제일이니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처럼 오랫동안 사용되며 전해 내려오는 말도 드물 것 같다. 태평성대라고 일컬어지는 중국 한(漢)나라의 3대 황제인 문제 2년(文帝, B.C.178)에 황제가 손수 쟁기로 밭을 가는 권농 행사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쓰고 있으니 2100여 년 동안 생명력이 있는 말인 셈이다. 지금도 유효한 말이며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코로나 시대에 백신을 구하는 것이 힘든 것처럼 기후 변화 시대에 식량난이라도 생긴다면, 값이 싼 외국 농산물로 대체하면서 식량주권마저 확보하지 못하여 자급자족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추사 선생이 힘든 귀양살이에도 가끔 좋은 제주 목사를 만나면 숨통이 트여 제주시에 있는 오현단까지도 왔다 갔다고 한다. 지금의 무릉리와 신도리 마을에도 들렸다가 ‘무릉도원(武陵桃源)’ 같다고 말한 것이 이곳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어느 책에선가 읽은 것 같다. 신도리의 옛 지명은 도원마을이다. 힘든 유배 생활에서도 유머과 여유를 잃지 않는 추사의 면목을 엿볼 수 있다. 추사의 예술 세계는 제주도 유배지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한다.

   

대정 암반수 마농 밭 너머로 한라산과 제주 남서부 오름들이 동양화의 원경처럼 펼쳐진다.
대정 암반수 마농 밭 너머로 한라산과 제주 남서부 오름들이 동양화의 원경처럼 펼쳐진다.

   

    많이 썼을 거예요. 아마 심심해서 쓰고, 화가 나서 쓰고, 쓰고 싶어서도 쓰고,

    마음 달래려고도 쓰고.....그 실력과 그 학식에 그렇게 써 댔으니 일가를 이루지

    않고 어떻게 되겠어요. 또 왕이건 친구건 제자건 관리건 글씨 주문이 좀

    많았습니까. 그러나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었다는 계기가 추사체의

    비밀이지요. 원래 예술로서 글씨란 남을 위하여 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쓰는 것인데 그것을 차단해 버린 셈이죠. 울적한 심사를 달래려고 썼건 그걸

    쏟아내려고 썼건 자기 멋대로, 자기 맘대로 써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괴이한 개성이 나온 거 아니겠어요.

 

미술사학자 이동주 선생의 추사체 제주도 성립론에 대한 평이다. ‘미술을 알기 위해서는 이론보다 철저하게 작품을 우선하라’는 실물 감상과 안목을 강조했다. 국제정치학자로서는 이용희로, 미술사학자로서는 이동주로 두 삶을 성공적으로 살다간 이명동인(異名同人)이다.

사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무릉도원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멋진 인생이다. 명당이 풍수지리에 있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바로 곧 명당이라고 하지 않는가. 석가모니와 예수가 거친 곳은 모두 성지가 되고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서양의 여느 철학자들과 작가들이 차를 마셨던 까페도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절도 경치가 수려하고 절집이 화려해서 유명한 절이 아니고 훌륭한 큰 스님이 살고 있으면 참된 도량이고 명승지가 되는 것처럼. 사람이 먼저고 땅은 나중이다.

철새들이 날아와 추운 겨울을 나는 도원 연못 둑길. 저 멀리 녹남봉이 보인다.
철새들이 날아와 추운 겨울을 나는 도원 연못 둑길. 저 멀리 녹남봉이 보인다.

무릉 외갓집을 뒤로 하고 걷다 보면 좌기동 마을이 나온다. 길가에 심어 놓은 많은 꽃들이 꽃망울들을 터뜨렸다. 금잔화, 데이지꽃, 브라질에서 건너온 귀화식물인 청사초롱 같은 아부틸론 꽃, 자색을 자랑하는 ‘서로 잊지 않다’는 꽃말을 가진 자란 꽃까지. 집에 심으면 일곱 가지 복이 찾아온다는 다육식물 글라우카(칠복수)도 보인다.

좌기동을 지나면 이름도 편안하고 아름다운 ‘평지교회’가 있는 평지동이다. 이름이 멋있어 지난 올레 때 감탄했었는데 평지동에 있어 평지교회인 것은 이번 올레에서야 알았다. 유래야 어떻든 기억에 오래 남을 교회 이름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철쭉 꽃과 산당화가 활짝 피어있는 녹남봉은 일구는 밭과 함께 다른 여느 오름과 다른 친밀감을 준다.
철쭉 꽃과 산당화가 활짝 피어있는 녹남봉은 일구는 밭과 함께 다른 여느 오름과 다른 친밀감을 준다.

고은 시인의 석 줄, 열다섯 자의 단시(短詩) ‘그 꽃’이다. 끝없는 평지에 펼쳐진 도로 너머로 저 멀리 녹남봉이 아련히 보인다. 밭 사잇길로 들어서니 양배추를 수확하기 위해 바쁜 손놀림을 하고 있는 농부들 모습과 빈혈과 간에 좋다는 곤드레 농사를 짓기 위해 트랙터로 땅을 다지는 모습도 보인다.

무릉 외갓집에서 시작하여 1시간 40여 분 걸었더니 신도리에 위치한 도원 연못이다. 철새들이 찾아와 추운 겨울철을 쉬어간다는 자연 습지로 둑을 따라 풀숲길이 이어진다. 30여 분 걸으면 녹남봉(표고 100.4m) 정상이다. 정상에는 가꾸는 밭이 있고 철쭉과 산당화가 활짝 피어있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정겨운 오름이란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마을 언덕같은 녹남봉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유채꽃들. 저 멀리 앞으로의 여정인 수월봉도 어렴풋이 보인다.
마을 언덕같은 녹남봉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유채꽃들. 저 멀리 앞으로의 여정인 수월봉도 어렴풋이 보인다.

최근에는 오름 이름에 걸맞게 녹나무를 많이 심고 있다고 한다.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어서 녹나무로 목침을 만들어 베고 자면 불면증에서 해방될 수 있다. 옛 제주 선인들은 큰 상처를 입거나 갑작스런 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이른 환자들 침상에 녹나무 잎이나 가지를 깔아서 그 위에 눕힌 뒤 방을 뜨겁게 불을 지펴서 자게 하면 녹나무 약효 성분이 뜨거운 열기와 함께 증발되면서 염증을 소독하고 균을 죽였다고 한다. 커다란 줄기를 가진 녹나무만 보다가 작은 녹나무를 봐서 어리둥절했는데 이파리로 녹나무인 것을 알고는 기뻤다. 작은 녹나무들은 햇병아리마냥 귀여웠다.

나지막하고 편안한 오름이라 내려오다 보면 동네까지 편안하게 보인다. 저 멀리 앞으로 걸어가야 할 수월봉과 당산봉도 보인다. 어느 집 뜨락에 심어 놓은 모란꽃이 지친 여로를 말끔히 씻겨준다. 남도 문화 답사 일번지라는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에 찾아갔다가 그 곁에 있는 김영랑 생가를 들렸는데 그때 본 이후로 까마득히 잊었다. 두 번째로 보는 모란꽃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며 부귀영화와 장수를 나타낸다는 꽃 중의 왕 모란꽃! 영랑의 시가 떠오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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