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1코스: 하모 체육공원에서 무릉 외갓집까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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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1코스: 하모 체육공원에서 무릉 외갓집까지(2)
  • 김영희
  • 승인 2021.04.0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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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잔화 꽃무리들의 반가운 인사
솔로몬 왕의 영화보다 더 입은 벚꽃 나무
산불 지킴이 아저씨의 귀여운 해설
황사영 백서 사건과 '서울 할머니' 정난주 마리아 성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와 수선화
귀한 수선화를 안타까이 바라보는 추사
울담 밑 금잔화 꽃무리들이 웃으며 반기는 모습이 가슴을 파고드는 것만 같다. 올레꾼들 끼리 주고 받는 인사보다도 더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
울담 밑 금잔화 꽃무리들이 웃으며 반기는 모습이 가슴을 파고드는 것만 같다. 올레꾼들 끼리 주고 받는 인사보다도 더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

동일리 마을을 지나 일주서로를 건너면 대정 청소년수련관 가는 길에 밭 사이 좁은 울담 길이 있다. 금잔화가 울담 밑에서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올레길 걸으며 서로 만나는 사람끼리 하는 인사도 반갑지만, 소리 없이 웃으면서 맞아주는 꽃무리들은 더없이 반갑고 기쁨을 준다. 큰길을 건너 대정여고를 향하여 가다 보면 어느새 모슬봉(180.5m) 오르는 입구에 다다른다.

마늘밭들과 보리밭들을 보면서 가다 보면 모슬봉 중턱에 있는 벚나무가 꽃들을 만발하게 피웠다. 솔로몬 왕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못하다는 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멀리서 목련꽃인가 했더니 가까이 가보니 벚꽃들로써 다른 곳에서 본 여느 벚나무 꽃잎들보다 크다. 땅이 좋아서 그런가.

모슬봉 중턱에 피어있는 벚꽃 나무.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는 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모슬봉 중턱에 피어있는 벚꽃 나무.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는 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모슬봉에는 무덤들이 여기저기 많다. 완만한 둘레길을 지나면 모슬봉 숲길이 나타난다. 나무들 사이로 언듯 보이는 산이 단산인가 하였더니 나중에 보니 송악산이다. 역시 대지의 여신에게서 난 자식들은 서로 모양이 형제같이 닮았나 보다. 시멘트 포장로가 모슬봉 밑으로 뻗어나간 곳에서 보는 단산과 산방산의 모습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듯이 10코스 올레 길에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중간 스탬프를 찍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산불 지킴이 안내소가 있다. 지킴이 아저씨가 제주 국제학교가 있는 대정읍에 속한 구억리와 신화역사공원이 있는 안덕면에 속한 서광리를 가리킨다. 제주 국제학교는 자랑하는데 신화역사공원은 별로라고 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사는 곳이 대정읍에 속해서 그런지 안덕면은 관심 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보성리와 안성리의 경계 쯤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적거지와 함께 길 건너에 있는 인성리의 위치도 말해준다. 해설사를 산에서 은연중 만난 것 같아 무척 복이 있는 날이었다.

평지 위에 솟은 단산과 그 뒤의 산방산의 모습. 단산 근처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적거지가 있으며 송악산에서 바라 보았을 때가 가장 박쥐 모양에 가까웠다.
평지 위에 솟은 단산과 그 뒤의 산방산의 모습. 단산 근처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적거지가 있으며 송악산에서 바라 보았을 때가 가장 박쥐 모양에 가까웠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여태껏 힘들여 걸어 올라온 보람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근처에서 귀양살이했다는 단산과 베레모같이 보여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산방산, 바다 위의 형제섬과 저 멀리 송악산의 모습이 제주 남서부 오름 군락들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올라갔던 방향과 반대편으로 모슬봉을 내려오면 대정읍 7리 공동묘지가 나온다.

아스팔트 길, 밭길 사잇길, 때로는 시멘트 포장길을 40여 분 걸어가면 정난주 마리아 성지가 나온다. 정약현과 이벽의 누이인 이윤혜의 딸로서 숙부가 약전, 약종, 약용이다. 1801년 천주교에 대한 신유박해 때 남편인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어머니는 거제도, 두 살 난 아들 경한은 추자도에 유배되었다. 아들은 추자도 어부 오씨에 의해 하추자도 예초리에서 키워졌으며 남편인 황사영은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이라는 대역죄인에 해당하는 형벌을 당하였다. 모슬포에 관노로 살면서도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주민을 교화하여 ‘서울 할머니’로 불렸다. 1838년 병환으로 돌아가기까지 37년간 신앙의 산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제주 천주교 신앙의 모범으로서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묘역을 성역화하였다.

제주 천주교 선교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신앙의 산증인 정난주 마리아의 묘역을 성역화 하였다.
제주 천주교 선교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신앙의 산증인 정난주 마리아의 묘역을 성역화 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조카인 정난주 마리아가 돌아가신 지 2년 후에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모슬포로 귀양을 왔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은 당시 귀한 수선화를 선물할 만큼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추사는 중국에 다녀온 사람이나 가져올 수 있는 수선화를 평양에서 얻어 고려자기에 심어 유배지에 있는 다산에게 보냈을 만큼 24년 선배인 다산 선생을 공경했다. 제주에는 지천으로 널린 게 수선화였다. 소나 말의 먹이로도 취급하고 보리밭에서도 나기 때문에 제주 시골 장정이나 아이들이 한결같이 호미로 파버리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수선화를 노래한 시가 다섯 수가 전하는데 그중 하나다.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一點冬心朶朶圓)

   그윽하고 담담하고 영롱하게 빼어났네(品於幽澹冷雋邊)

   매화가 기품이 높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梅高猶未離庭砌)

   맑은 물에서 참으로 해탈한 신선을 보네(淸水眞看解脫仙)

 

고려자기에 고이 심어 귀하디 귀한 수선화를 추사가 다산 선생에게 선물했을 만큼 오늘 우리도 보물섬같은 제주에 있는 귀한 것들을 함부로 다루고 있지는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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