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생흔학 탄생케한 사계화석 산지
산이수동에 살 수 있다면!
제주 제일 비경은?
영국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피파의 노래'
사계포구에서 송악산 입구까지 3km 정도 되는 해안도로는 휠체어 구간이기도 하다. 탁 트인 바다를 한없이 볼 수 있다. 올레 1코스 종달리 옛 소금밭에서 성산갑문 입구까지 약 4km가 되는 휠체어 구간과 비슷하다. 1코스가 우도와 성산 일출봉을 보면서 가는 해안도로라면 10코스는 형제섬과 송악산을 바라보면서 간다.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있는 1코스와 10코스! 참 대비되는 코스다. ‘형제 해안로’로 이름 붙여진 이 길은 건설교통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힌 길이기도 하다.
사계리 모래 해변을 조금 벗어나면 ‘제주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 화석산지’가 나온다. 응회암질 쇄설성 퇴적층으로 방사성 탄소 동위 원소 연대 측정 결과 약 1만5천 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2004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지질학회의(IGC)에 발표되었고 500여 점의 사람 발자국과 육식동물, 조류, 연체동물, 절지동물, 무척추동물, 식물 화석 등 다양한 화석들이 나온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개최한 2회의 국제심포지엄을 계기로 국제학술지(Ichnos) 특별호가 출판되었고 이를 계기로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 '인류생흔학(Homind Ichnology)'과 '새로운 사람발자국화석 이름(Hominipes modernus)'이 탄생하게 된 발상지다.
도로 건너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사람발자국화석과 다양한 화석들을 저장하여 홍보하는 곳이며 4, 5개월 지나 문을 연다고 한다. 제주도가 세계지질공원인증을 딴 곳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화석산지는 출입 통제되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니 어느덧 바닷새들의 낙원이 되어 있었다.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덜 닿을수록 자연은 잘 자라고 있다. 이 곳을 벗어날 즈음 안덕면과 대정읍이 나뉘는 산이수동이 나온다. 대정읍 상모1리에 속한 곳이다. 모슬포 윗 동네는 상모, 아래 동네는 하모다. 여기서 15분 정도 형제섬을 보며 해안도로를 걸으면 마라도여객선 선착장이 나온다. 송악산 입구다.
송악산 입구에서 송악산 출구로 나오는 데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산이수동에서 시작하여 나오면 다시 산이수동이다. 목재데크 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가파도와 마라도도 보이고 무엇보다 탁 트인 바다를 항상 보아서 그런지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겨나가고 마음도 바다처럼 탁 트여 시원하며 넓어지는 느낌이다. 산이수동에 산다면 좋은 이 길을 매일 산책하며 얼마나 좋을까.
산이수동에서 조금 올라가 송악산 앞 둔덕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제주 제일 비경'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올레 1코스 대수산봉에서 바라본 경치와 견줄만하다. 이제는 이곳을 엄지 손가락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 같다. 공부에서도 복습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듯 역시 같은 길을 두 번 걷다 보면 안 보이는 게 보이는 법이다. 산방산이 걸죽하게 서 있고 좌로는 모슬봉,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 앞에서 귀양살이했다는 단산, 그리고 지나온 용머리 해안과 저 멀리 박수기정, 월라봉, 그 너머의 군산, 조그맣게 보이는 서귀포 앞의 섶섬, 문섬, 범섬까지 아우르는 경관은 제주제일 풍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경치를 그냥 두고 얼른 지나쳐 버린다면 경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 참 보다가 평범해질 때까지, 아니 질릴 때까지 봐야 한다. 그런 다음 그 자리를 뜬다. 나만의 감상법이다. 조물주도 첫 번째로 정방폭포, 천지연 폭포, 황우지 해변과 남주해금강, 외돌개 등 아름다운 서귀포를 빚고 나서, 두 번째로 중문의 천제연 폭포, 신의 궁전이라는 중문대포주상절리대를 만든 다음,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듯 아쉬웠던지 세 번째로 안덕면의 박수기정, 황우치 해변과 산방산, 용머리 해안을 빚고서 송악산에 앉아 자신이 지은 비경을 만족하며 감상한 다음, ‘참 좋구나!’하고 떠나지 않았나 싶다.
해는 봄(The year’s at the spring)
날은 아침;(And day’s at the morn;)
아침 일곱 시;(Morning’s at seven;)
언덕엔 진주 같은 영롱한 이슬들;(The hillside’s dew-pearled;)
하늘엔 높이 나는 종달새;(The lark’s on the wing;)
가시나무 위엔 달팽이;(The snail’s on the thorn:)
하늘나라엔 신이 계시니(God’s in his heaven-)
모든 것이 참 좋구나!(All’s right with the world!)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피파의 노래(Pipa’s song)’다. 봄을 이렇게 간결하면서 아름답게 노래한 시가 있을까. 텅빈 충만이 느껴진다. 이월의 입춘과 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풀려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도 지났다. 봄이 천천히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