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8코스: 월평 아왜낭목 쉼터에서 대평 포구까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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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8코스: 월평 아왜낭목 쉼터에서 대평 포구까지(2)
  • 김영희
  • 승인 2021.01.1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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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비원'과 오름 왕국 제주도
나의 버킷 리스트 '바다에서 보고 싶은 제주도 해안 절경'
남바치 물과 최영 장군과 열리
예래생태마을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의 문제들
급할수록 혼란스러울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자
인도의 간디와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대평의 대동세계와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우렁찬 종소리여 울려 퍼져라'
지난 해 코로나로 힘든 한 해를 아는지 모르는지 저녁 해는 대평 포구를 붉게 물들이며 지고 있다.
지난 해 코로나로 힘든 한 해를 아는지 모르는지 저녁 해는 대평 포구를 붉게 물들이며 지고 있다.

여태껏 제주도의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높고 길고 너른 다리인 천제 2교 밑을 흐르는 베릿내를 지나 중문 포구로 들어서기 전에 있는 안내 지도가 눈길을 끌었다. 제주 오름이란 오름들이 다 적혀있다. 언젠가 360여 개가 넘는 제주 오름들을 모두 탐방하고 싶다. 세계적인 오름 왕국이라는 제주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 왕국의 주인인 왕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작년 조카 결혼식으로 서울에 갔다가 딸이 즐겨 찾는다는 창덕궁이 내려다보이는 이층까페에 들렸다. 내친김에 창덕궁도 구경했는데 때마침 예약해야만 볼 수 있다는 창덕궁 후원도 현장에 있은 덕인지 관람 인원에 여분이 있어서 볼 수 있었다. 비원이라고도 부르는 창덕궁 후원은 한국 최대의 궁중 정원이다. 조선 시대 임금의 산책지로 설계된 곳인데 그때 문화 해설사가 왕이 된 마음으로 거닐어보라고 팁을 주었다. 시킨 대로 그렇게 하였더니 후원의 길과 정자들이 제 안뜰과 집들 인양 가깝게 다가왔다. 제주도의 오름들도 그 왕국의 주인인 왕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거닐고 오른다면 색다를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에선 제주도에 하나밖에 없다는 요트전용마리나를 그림과 함께 재미있게 홍보하고 있었다. 가격이 적당하다면 샹그릴라요트, 비바제트, 잠수제트 중 하나를 타서 아름다운 해안가 절경들을 보는 호사를 누리고도 싶다. 섶섬이 내다보이는 보목리 제지기오름에서 만났던 해양 경찰에 근무하는 아저씨가 육지에서 보는 서귀포 해안이나 섶섬, 문섬, 범섬의 모습보다도 바다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절경이라는 말에 버킷 리스트로 마음속에 품고 있기도 해서다. 언젠가는 서귀항에서든 중문 포구에서든 출발하여 아름다운 해안 절경과 한라산의 모습을 꼭 보리라.

예전에는 중문 색달해수욕장으로 올레길이 났었는데 코스가 변경되었나 보다. 구릉으로 이어진 목재데크 계단을 지나니 어느새 롯데 호텔 앞 포장도로에 와 있다. 도로를 따라 한라산 방면으로 가다 보면 중문관광단지 입구에 이른다. 큼지막한 안내 지도가 서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면서 현장 확인을 해보지 않아 중문 대포 주상절리대가 과연 1km에 이를까 의아했었는데 공중에서 촬영한 듯한 커다란 지도를 보니 갸우뚱했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양옆으로 나무가 울창하여 그늘을 드리워주는 도로를 지나면 예래 입구라고 써진 곳을 만난다. 바닷가를 향하여 20여 분 더 걸어가다 올레길에서 약간 비껴있는 곳이지만 ‘남바치물’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남바치물은 남쪽 밭, 남밭(남바치)에서 솟아나는 물이라는 뜻이며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용천수다. 주변 마을에 아는 사람들만 오는 듯한 으슥한 곳에 있는 우물인데 우연히 산책하러 나오신 할아버지를 만나니 마음도 놓인다. 예전엔 남바치물 주변에서도 논농사를 지었으며 제주 4·3사건에는 예래동과 근처 색달동 사람들은 피해를 많이 입었고 올레 8코스 종점 대평 포구에 있는 대평리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대평리는 지금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육지 사람들이 들어와 살아 북적되는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그 옛날엔 한적한 시골 마을로 박수기정과 군산으로 둘러쌓인 곳이라 비껴간 모양이다. ‘예래’를 왜 ‘열리’라고도 할까 하는 그동안 내 머리를 맴돌았던 의문점이 남바치물에서 해결되었다. 발음은 비슷한 것 같은데 연결이 잘 안 되어 의문이 떠나질 않았는데 남바치물에 있는 안내표지판을 보고서 무릎을 쳤다. 잃었던 연결고리 하나를 마저 찾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고려 1300년(충렬왕 26년)에 예래현(猊來縣)으로 불리다 1374년(우왕 원년)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진압하면서 예래동을 연래(延來)로 지칭했는데 민간에서는 열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예래> 연래 >열리! 고민 사항을 해결하라고 누가 이곳으로 떠민 것 같아 무척 기뻤다. 실제 배염(延)줄이라는 지명이 법환동에 있듯이 최영 장군은 그때 범섬에 있는 목호들을 퇴치하려고 뗏목을 연결해 범섬에 침투할 생각에 ‘이을 연(延)’자가 온통 그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으리라 추측하면서.

30여 분 걸어가니 조명물이 나온다. 예래생태마을 표지판 ‘물따라 길따라’를 보면 구시물, 거슨물, 남바치물, 조명물, 대왕수, 소왕수는 상예동에 속해 있고 논짓물, 차귀물, 돔벵이물은 하예동에 있는 용천수다. 예래동은 상예동과 하예동으로 나누는데 위에 있어서 상예동, 아래에 위치해서 하예동이라 부른다. 예래동은 한국반딧불이연구회 지정 ‘제1호 반딧불이 보호지역’이며 고인돌, 바위그늘집자리 등 청동기 시대 유적과 통일 신라 시대 적석시설물을 보유한 유서 깊은 마을이다. 사시사철 대왕수와 소왕수의 용천수가 흐르고 대왕수천에 백로, 해오라기, 가마우지, 청둥오리가 찾아오며 군산에는 수백 가지 야생화가 만발하는 환경부에서 12년간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한 생태자원의 보고인 마을이다. 그런 마을이 대왕수천 저류지에 있는 빛바랜 표지판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저류지 근처 안전한 화장실이라는 팻말이 있는 곳 옆에 표지판이 하나 있어서 궁금하여 가봤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명의로 된 안내문인데 요약하면 이렇다. 이곳 주변 시설물들인 ‘도로, 교량, 공원, 저류지, 주차장 등은 예래 휴양형 주거단지 설치를 취소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효력이 상실된 시설물이므로 사용하지 말라는, 사용해서 안전사고가 나는 경우 책임질 수 없다’는 내용이다. ‘안전한 화장실’마저 안전하지 않으니 사용하지 말라는 애기다.

대왕수천의 옛 모습을 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다른 곳에서 옮겨온 듯한 커다란 돌들을 사용하며 엄청난 공사비를 들여 산책로를 개발한 것 같다. 대왕수천 하류 바닷가에 이르는 곳에는 지금은 애물단지가 된 휴양 시설 건물들이 흉물이 되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금껏 올레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2코스에 있는 온평 마을 도로 위에서 펄럭이는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깃발들, 청둥오리들이 헤엄치며 노니는 맑고 아름다운 강정천 위 강정교에 휘날리는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깃발들, 지금 예래생태공원 길에서 마주하는 흉물스럽게 변한 시설물들을 보면서 행정 권력과 국가권력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본다.

군대의 군막을 친 것 같아 군산이라고도 하며 마치 호랑이가 사냥하러 누운 모습같다고도 한다. 바다에는 범섬의 표범이 있고, 육지에는 군산의 호랑이가 있고, 사자만 부족하여 동네 이름도 사자가 오는 예래동으로 지었을까. 올해는 범과 호랑이와 사자를 모두 거느릴 수 있는 제주도, 우리나라가 되길 기원해본다.
군대의 군막을 친 것 같아 군산이라고도 하며 마치 호랑이가 사냥하러 누운 모습같다고도 한다. 바다에는 범섬의 표범이 있고, 육지에는 군산의 호랑이가 있고, 사자만 부족하여 동네 이름도 사자가 오는 예래동으로 지었을까. 올해는 범과 호랑이와 사자를 모두 거느릴 수 있는 제주도, 우리나라가 되길 기원해본다.

모든 종교와 철학과 도덕과 법률의 기저에 흐르는 근본정신은 ‘인간 존중’ 정신이다. 만약 밑바탕에 그 정신이 빠져 있다면 그런 종교와 철학과 도덕과 법률은 무가치한 것이다. 과연 법률을 근간으로 움직이는 행정에도 인간 존중 정신을 지키며 그 정책을 펴고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교육도 결과 중심보다는 과정 중심 교육이 더 강조되며, 인생도 목표를 향하여 질주하여 과정의 행복은 생략하고 결과의 행복에 더 중점을 두는 인생보다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며 추구하는 인생이 더 바람직하다. 정책도 과정이 좋아야 한다. 과정이 좋으면 결과도 저절로 좋은 법이다. 더디지만 대화와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인내와 관용을 지키며 거쳐야 한다. 급할수록 혼란스러울수록 더 기본과 원칙을 지키며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이 가장 더디 가는 것 같지만 가장 빨리 가며 정확히 가는 길이다. 근본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그런 민주적 절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낫다. 국책사업이라는 미명하에 무리하게 밀어부쳐서는 안된다. 그런 과정에서 이득을 보는 세력은 과연 누구일까. 가장 이익을 보는 세력이 그 추진 세력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역주민일까, 정부의 소수 세력일까, 외세일까, 그것을 추진하는 사업자들일까. 국책사업이라면 무조건 통과가 되어야 하고 다시 검토해보면 안 되는 사업일까. 국책사업이라며 지역주민의 의견은 무시해도 되는 걸까. 지역주민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라면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있을까.

   국가라는 창녀야, 은 옷을 두른 음녀야,

   옷은 걷어 올렸지만 네 혼은 진흙 속에 끌리는구나.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주의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다. 국가와 행정 권력을 잘못 휘두른다면 그렇게 되리라. 멕시코와의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며 그런 국가에는 세금을 낼 수 없다고 거절하여 감옥 속에 갇혀 며칠 만에 쓴 책이다. 북미 인디언 이로퀴(Iroquois) 부족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반드시 다음 7세대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하물며 문명인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인디언들만 못해서 될 것인가.

대왕수천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곳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바닷물이 건너와 섞이기도 하며 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논짓물이 나온다. 거기에서 용이 드나들었다는 용문덕을 지나 예래포구라고도 부르는 하예포구까지 40여 분, 다시 하예포구에서 예래동과 대평리의 경계를 흐르는 대동천을 지나 8코스 종점 대평포구까지 40여 분 걸린다. 공자가 꿈꾸었던 이상향인 모든 것이 조화롭게 돌아가는 대평 마을의 시내 이름과 같은 대동세계(大同世界)가, 그리고 대평 마을 이름과도 같은 커다란 평화(大平)가 새해에는 펼쳐지기를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우렁찬 종소리여 울려 퍼져라(Ring Out, Wild Bells)’라는 시에 담아 소망해 본다.

   울려 퍼져라 우렁찬 종소리, 거친 창공에,(Ring out wild bells, to the wild sky,)

   저 흐르는 구름, 성에 낀 빛에 울려 퍼져라,(The flying cloud, the frosty light;)

   올해는 오늘 밤 사라져 간다.(The year is dying in the night;)

   울려 퍼져라 우렁찬 종소리, 지는 해를 보내라(Ring out, wild bells, and let him die.)

   낡은 것 울려 보내고 새로운 것 울려 맞이하라.(Ring out the old, ring in the new....)

   거짓을 울려 보내고 진실을 울려 맞이하라.(Ring out the false, ring in the true.)

   부자와 빈자의 반목을 울려 보내고(Ring out the feud of rich and poor,)

   온 인류를 위한 구제책을 울려 맞이하라(Ring the redress to all mankind.)

   울려 보내라, 서서히 죽어가는 명분을(Ring out the slowly dying cause,)

   그리고 케케묵은 당파 싸움을.(And ancient forms of party strife....)

   울려 보내라, 결핍과 근심과 죄악을,(Ring out the want, the care, the sin,)

   이 시대의 신의가 없는 냉혹함을.(The faithless coldness of the times....)

   울려 맞이하라,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을(Ring in the love of truth and right,)

   울려 맞이하라, 다 함께 선을 사랑하는 마음을.(Ring in the common love of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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