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6코스: 쇠소깍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까지(1)
상태바
제주 올레길 기행 6코스: 쇠소깍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까지(1)
  • 김영희
  • 승인 2020.11.26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과나무와 귤나무의 농심
산남의 최고하천 효돈천
3관왕을 달성한 보물섬 제주도
전업주부와 같은 마음으로 '생물권보전지역' 보존을
쇠소깍의 평화로운 뱃놀이 풍경
해국 자생지 게우지코지와 파초일엽 자생지 섶섬
제지기 오름과 보목포구 한기팔 시인의 시 '자리물회'
쇠소깍에서 뱃놀이하는 모습이 평화스럽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에메랄드 빛 물 색깔 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쇠소깍에서 뱃놀이하는 모습이 평화스럽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에메랄드 빛 물 색깔 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232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남원읍에 속한 수망리, 의귀리 등의 마을을 지난다. 예전에는 이름도 낯설고 풍경들도 생경했지만, 이제는 익숙하고 다정스럽게 다가온다. 풍성하게 익은 감귤들을 보면서 지나노라면 농부들의 넉넉한 농심이 된다. 젊은 시절 친구와 육지 여행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주왕산이 있는 경북 청송군의 어느 시골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과나무밭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사과들을 보며 저절로 내 마음도 사과들처럼 부풀어 올랐다.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농부들이 한여름 비지땀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수망리와 의귀리에서 서로 몸 싸움하듯 빽빽이 열린 감귤들을 보며 묻혔던 옛날 추억이 떠오른다.

하례 1리에서 내렸다. 10여 분 남짓 걸어서 내려가면 올레 6코스 시작점인 쇠소깍이 나온다. 쇠소깍은 효돈의 옛날 지명인 쇠둔의 ‘쇠(소의 제주어)’와 연못을 뜻하는 ‘소(沼)’, ‘깍(끝을 뜻하는 제주어)’의 합성어다. 쇠소의 끝이라는 의미다. 효돈천의 끝이기도 하다. 효돈천은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하여 중상류 돈내코 계곡을 흐르다 하효동, 하례리를 거쳐 하류의 쇠소깍에 이르는 13km의 산남(한라산 남쪽) 최고의 하천이다. 남원읍 하례리와 서귀포 하효동으로 나누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생물권보전지역(2002), 세계자연유산(2007), 세계지질공원(2010) 인증을 받았다. 3관왕을 차지한 세계가 인정하는 보물섬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3개의 자연과학 분야를 동시에 달성한 것이다. 세계적 자연경관의 모든 테마(섬, 화산, 폭포, 해변, 국립공원, 동굴, 숲)를 골고루 다 갖추고 있다. 3관왕을 따는 일도 어렵고 소중한 것이지만, 잘 보존 유지하는 것은 더 힘들고 중요한 일이다. 3관왕을 따는 데는 이목을 집중하지만, 보전 유지하는 일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전업주부와 같은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주부의 일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일이듯이. 그러려면 평상시 관심을 가지며 알아주는 마음이 중요하다. 2002년 제주도 면적의 45%에서 2019년에는 제주도 육상 전역과 해안선에서 5.5km 이내의 해양 구역까지 생물권보전지역이 확대되었다. 후손들에게 물려주는데 부끄럽지 않을 만큼 현재 우리는 잘 보전하고 있을까. 현재의 자연 자원은 미래 후손들의 것이기도 한 것을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인데.

효돈천 계곡 주변에는 난대 상록활엽수림대, 온대 낙엽활엽수림대, 아고산 관목수림대 등 해발고도에 따른 다양한 색생이 분포하고 있다. 한란, 으름난초, 솔잎란, 암매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고 팔색조, 긴꼬리딱새 등이 서식하고 있다.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구역으로 생물 다양성 보전이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효돈천 중류에 있는 물웅덩이 소남물곶(소나무곳)을 지나 내려가다 보면 하례1리 버스 정류장에서 20여 분도 안 되어 올레 6코스 시작하는 쇠소깍이 나온다.

쇠소깍은 사람들이 몰려 줄을 서서 뱃놀이할 만큼 명소가 되었다. 뱃놀이하는 풍경이 평화스럽다. 멀리 지귀도가 보이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기도 한 쇠소깍 해변에선 자전거 타고 여행하는 두 아가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한 아가씨는 양말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고서. 여행을 즐길 줄 아나 보다. 따라서 하고 싶은 마음이 인다. 아쉬운 쇠소깍을 뒤로 하고 소금이 귀하던 시절, 바닷물을 길러 가마솥에 끓여 소금을 만들어 저장하였으며, 그것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도 있었다는 소금막을 지났다. 하효항을 내다 보는 정자에 앉아 차 한잔을 한다. 저 멀리 지금껏 지나온 큰엉 곶과 태흥리 곶이 바다를 향하여 줄달음치다 육지가 이기지 못하여 고개 숙여 바다로 들어간 모습도 보인다.

서귀포 앞 바다의 문섬과 범섬, 저 멀리 송악산과 삼매봉 너머 산방산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인다. 제지기 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해안의 풍경은 일품이다.
서귀포 앞 바다의 문섬과 범섬, 저 멀리 송악산과 삼매봉 너머 산방산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인다. 제지기 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해안의 풍경은 일품이다.

20여 분 걸어가니 게우지코지다. 바닷가로 불쑥 튀어나온 모양이 게웃(전복내장의 제주어)같은 코지(곶을 뜻하는 제주어)라고 한다. 해국(海菊) 자생지이기도 하다. 낭떠러지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민 꽃들은 그동안의 여로를 달래준다. 게우지코지를 돌아드니 표선리 해녀탈의장에서부터 얼굴을 내민 섶섬이 바로 코앞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 있다. 파초일엽의 자생지인 섶섬은 천연기념물 제18호로 보호되고 있으며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구역이기도 하다.

해녀들이 물질과 수영을 배운다는 큰업통(넓고 큰통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에는 새내기 해녀들이 연습하는 모습이 귀엽게 보인다. 표지석이 없다면 몰라보고 그냥 지나갈 효돈동과 보목동의 경계라는 골매(골은 마을, 매는 뫼를 뜻함)를 지나 제지기오름(표고 94.8m)에 다다랐다. 옛날 굴사(窟寺)가 있었는데 절을 지키는 절지기가 살았다고 해서 절지기 오름이라고 하며, 오름 모양이 낟가리(눌)와 비슷하여 저즉지(貯卽只)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근경의 섶섬, 보목포구와 중경의 서귀포 해안과 새섬, 문섬, 그리고 원경의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방산과 송악산의 풍경은 동양화를 보는 듯 일품이다. 제지지 오름을 내려오면 기후가 따뜻하여 거의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자리물회로 유명한 보목포구다. 이곳 보목리 출신인 한기팔 시인의 시 ‘자리물회’가 새겨진 시비가 서 있다.

   자리물회가 먹고 싶다

   그 못나고도 촌스러운 음식

   정다운 고향 말로

   자리물회나 ᄒᆞ레 갑주

   아지망!

   자리물회나 줍서 하면

   눈물이 핑 도는

   가장 고향적이고도 제주적인 음식

   ......

   ......

   가족들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먼 마을 불빛이나 바라보며

   하루의 평화를 나누는

   가장 소박한 음식

   삶의 참뜻을 아는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