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코스: 시흥리에서 광치기 해변까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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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코스: 시흥리에서 광치기 해변까지(2)
  • 김영희
  • 승인 2020.09.23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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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같은 종달리 마을
휠체어 가능한 '시흥리 종달리 해안도로'
아쉬운 이생진 시비공원
4.3의 상처안은 광치기 해변
휠체어 가능한 '시흥리종달리해안도로'. 목화 휴게소 앞 빨래 줄에 널린 준치들 모습이 인상적이다.
휠체어 가능한 '시흥리종달리해안도로'. 목화 휴게소 앞 빨래 줄에 널린 준치들 모습이 인상적이다.

종달 초등학교는 운동장이 천연 잔디로 깔려 있어 아름다운 학교다. 가까운 곳에만 있다면 우리 손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천연 잔디만큼이나 예쁘다. 종달리 마을을 지날 때면 이름도 같은 종달새가 생각난다. 마치 종달새가 하늘 높이 솟아 노래 부르는 것 같은 마을! 종달새 노래 마냥 명랑하고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앙증맞은 까페와 도자기 파는 ‘도예시선’, 독채째 빌려 숙박하는 올레가 유혹적인 ‘이안제’, 술을 직접 빚어 파는 ‘술도가 제주바당’ 등 들리고 싶은 곳도 많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는가 싶으면 팽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갈대밭이 펼쳐진다. 16세기 강려 목사가 제주 사람을 육지에 보내 제염술을 배워오게 하여 갯벌에서 염전이 되어 해방 때까지 400여 년 동안 소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정에 진상하고 전라도 지역에까지 나갈 만큼 품질이 뛰어나 종달리 주민들을 ‘소금바치(소금밭 사람이라는 제주 방언)’라고 부를 만큼 유명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 육지 소금이 들어오면서 수지가 안 맞아 내리막길을 걷다가 간척사업으로 논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갈대밭이 되었다. 제주의 첫 염전, 첫 간척사업, 지금은 가보고 싶은 관광지로 탈바꿈한 앞서가는 마을인 것 같다.

종달리 마을을 벗어나면 우도와 성산 일출봉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해안도로가 나온다. 바당(바다의 제주 방언)올레의 시작이다. 여기서부터 오소포 연대까지 3.1km 정도 되는데 도보로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자전거 겸용 도로라 가끔 신경 써야 하지만 휠체어 구간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똑같은 경치가 길게 펼쳐져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바다를 좋아한다면 원 없이 걸을 수 있어서 좋은 도로이기도 하다. 종달리, 시흥리가 갈리는 ‘시흥리 종달리 해안도로’ 라고도 한다. 종달리는 제주시에 속하고 시흥리는 서귀포시에 속하니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경계선 조금 너머에 목화휴게소가 있다. 여기서 중간 스템프도 찍고 쉬어가면 지루함이 덜하다. 준치 한 마리에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우도와 바닷가를 보면서 먹으면 그동안의 피로도 잊고 여행의 맛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여행의 청량제가 되어준다고나 할까.

오소포 연대를 지나 15분 정도 가면 성산 갑문 입구가 나온다. 성산 갑문을 다 지날 즈음 예전엔 성산항으로 갔던 길이 조경과 도로 공사로 인하여 우회하게 되어있다. 예전 길인 성산항을 지나 옆길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언덕빼기가 나온다. 그곳에 앉아 쉬면서 우도와 광활하게 펼쳐진 성산 앞바다를 바라다보노라면 절로 사색하는 철학자가 된다. 또한 이생진 시비 공원에서 돌에 새겨진 19편의 이생진 시인의 시들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인이 되어간다. 그 기쁨이 사라져 아쉽다. 우리나라 섬 3천여 개 가운데 1천여 곳을 다녔다는 ‘섬 시인’ 이생진! ‘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라는 시어처럼 온통 둘러봐도 바다다. 그래서 나도 시인의 말처럼 ‘삼백 육십 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이 될 것만 같다.

제주 4.3의 아픔을 간직한 광치기 해변.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슬픔을 간직해서 일까.
제주 4.3의 아픔을 간직한 광치기 해변.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슬픔을 간직해서 일까.

성산 일출봉 앞에 있는 절 동암사를 지나면 수마포가 나온다. 조선 시대 제주에서 기른 말을 육지로 보낼 때 말을 받아서 보냈다(受馬)는 수마포. 거기서 성산 일출봉을 보니 구멍들이 크게 뚫어져 있는 것들이 여러 개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폭탄 실은 특공 소형선을 감춰놓기 위한 비밀의 자살 특공기지라고 한다. 확인된 동굴 진지만 해도 18곳이나 된다고 하니 상처투성이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는 마음이 씁쓸하다. 모진 풍상을 견뎌낸 그 모습이 고맙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광치기 해변에 들어서는 입구에 ‘앞바르(앞바다의 제주 방언) 터진목(트인 길목의 제주 방언)’이 있다. 제주 4·3항쟁 당시 성산읍 일대의 주민들이 끌려와 집단학살을 당한 곳이다. 2008년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쓴 제주 4·3 기행문 기념비가 있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 유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떪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초록과 검정, 섬의 우 수,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1948 년 9월 25일(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 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오늘날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 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벽안의 외국인이 절절히 써 내려간 ‘제주 기행문’을 보고 있으면 새삼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2014년 국가 추념일로 지정되었지만 72년이 지난 지금도 비석 표면에 아무런 글자도 새기지 못한 채 제주 4·3 평화 기념관에 백비가 누워있다. 부끄러운 4·3의 현주소다.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백비를 일으켜 세울 날이 언제면 올 런지. 제주 올레길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곳일수록 제주 4·3의 아픈 상처가 많이 남아 있음을 본다. 200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터키의 최고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자전적 에세이 ‘이스탄불’에 나오는 첫 구절, ‘풍경의 아름다움은 그 슬픔에 있다’는 말처럼 슬픔이 있어서 풍경의 아름다움이 있는 걸까. 그래서 이생진 시인도 그의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이렇게 읊고 있는 것일까.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도 좋은 곳

성산포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지 않아 서로 떨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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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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