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기행 1코스: 시흥리에서 광치기 해변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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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기행 1코스: 시흥리에서 광치기 해변까지(1)
  • 김영희
  • 승인 2020.09.21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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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에서 바라본 풍경. 시흥리 들판과 우도, 성산 일출봉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말미오름에서 바라본 풍경. 시흥리 들판과 우도, 성산 일출봉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시작이 반이다. 시작을 잘하면 이미 반만큼 간 것이다. 글을 쓰는 데도 첫 문장이 중요하고 사람을 만나는 데도 첫인상이 좌우한다. 서예를 하는 사람들도 첫 획에서 이미 그 실력을 알아본다고 한다. 제주 올레길도 처음 만들 때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아마도 많이 고민하였으리라.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작점에서 발흥(始興, 시흥)하여 종착점에 도달(終達, 종달)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인생을 고사성어처럼 네 글자로 표현한다면 ‘시흥종달(始興終達)’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옛날 제주 목사들이 처음 부임하면 시흥리에서 시작하여 종달리에서 시찰을 끝냈다고 한다.

시흥리는 성산읍에 속하고 종달리는 구좌읍에 속한다. 제주 올레길 1코스의 백미인 두 오름, 말미오름은 시흥리에 속하고 알오름은 종달리에 속한다. 이웃하여 있는 말미오름과 알오름이 사람들이 그어놓은 경계선으로 이산가족이 되었다. 우리나라 남한과 북한의 현실처럼. 시흥리 사람들은 말미오름만 말하고 종달리 사람들은 알오름만 이야기한다고 한다. 올레길이 인연이 되어 경계선이 허물어져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제주 올레길은 치유의 길, 상생의 길, 평화의 길이 헛말이 아니다.

이미 완주했지만 제주 올레길을 다시 걷기로 했다. 학창 시절 복습을 할 때 여유로운 마음으로 했듯이 이번 올레길도 더욱 천천히 걸으면서 그동안 놓친 것이 없나 다시 한번 살피고 싶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내면의 깊은 곳에 강같이 흐르는 한시가 하나 있다. 성리학의 시조 주자가 학문을 권하는 시다.

     숲에서 쉬고 돌에서 앉아 쉬다가 가는 노인의 걸음은(休林坐石老人行)

     겨우 삼 십리가 하루길이라(三十里爲一日程)

     만일 한 달을 가면 천 리를 갈 수 있으니(若將一月能千里)

     노인의 걸음으로써 뒤에 학문하는 사람을 경계한다(以老人行戒後生)

고등학교 시절 영어와 한글로 된 어느 명언 집에서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있다.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서 나오는 속담이다.

  느리고 꾸준하면 경기에서 이긴다(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제주 올레길의 상징은 ‘간세’다. 제주 조랑말을 나타내는 간세는 ‘간세 다리(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 방언)’라는 말에서 왔다. 게으름뱅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놀멍 쉬멍 걸으멍’ 가는 제주 올레길! 노인의 걸음걸이처럼, 거북이가 느릿느릿 꾸준히 경주하는 것처럼, 간세다리처럼 내 인생길도 걸어가리라 다짐하면서. 시흥 초등학교 입구 근처에서 역사적인 시작 스템프를 찍었다. 말미오름 기슭에 있는 제주 올레 안내소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당근밭들이 많이 나오는 데 전국적으로 70%가 제주도에서 생산될 만큼 겨울철 제주 당근은 유명하다. 특히 색, 맛, 향이 뛰어난 구좌 당근을 최고로 쳐준다. 당근은 7, 8월에 파종하여 12월부터 수확한다. 초등학생 정도 된 초록의 당근잎들이 나를 반긴다. 당근밭 흙 색깔도 싱싱하다. 당근이 잘 자라는 제주에만 있는 흑색 화산 회토라고 한다.

안내소에서 말미오름 정상까지도 15분 정도 소요된다. 말미오름은 됫박처럼 생겼다고도 해서 두산봉(斗山峰)이라고도 하고 땅 끝에 위치하고 있어 말미오름이라고도 한다. 말미오름은 ‘말머리’오름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우리 집 손주가 있는데 아직 어려 할머니를 ‘할미’라고 부른다. 말미오름도 ‘말머리’ 오름에서 발음하기도 쉽고 그렇게 된 것은 아닌지. 말미오름(126.5m)에서 내려다보이는 시흥리 들판, 우도와 성산 일출봉, 섭지코지와 수산봉, 이를 에워싼 드넓은 바다는 장관이다. 시야가 트여서인지 눈이 시원하니 마음까지도 싱그럽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시흥초등학교의 모습도 보이고 내가 걸어 올라왔던 시흥리 들판 길도 찾을 수 있었다. 학생 시절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복습을 해야 했듯이 역시 두 번 오길 잘했다. 내려오는 길에 눈앞에 지미봉이 보인다. 제주 올레길 마지막 21코스에 위치한 지미봉! 시작점에서 종점을 마주하며 걷는다. 멀리 남쪽으로 다랑쉬 오름이 보이는 데 지미봉과 모양새가 비슷하여 쌍둥이 오름 같았다. 말미오름에서 보는 알오름은 한쪽 머리가 벗겨진 대머리 영감 같은 오름이다.

알오름 중턱에서 바라본 풍경. 오름들이 한라산을 향하여 가는 코끼리떼 행렬같다.
알오름 중턱에서 바라본 풍경. 오름들이 한라산을 향하여 가는 코끼리떼 행렬같다.

말미오름에서 50 여분 정도 걸으면 알오름(145.9m) 정상에 다다른다. 제주 동부 오름 군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프리카에 온 것 같다. 코끼리 떼 같은 거대한 동물 떼들이 한라산을 향하여 가고 있는 행렬 같다. 새끼(오름)들이 어미(한라산)를 찾아 ‘엄마 찾아 삼만리’ 가는 모습 같기도 하고. 백두산을 부산(父山)이라고 하고 한라산을 모산(母山)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한라에서 백두까지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그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알오름에서 내려와 종달초등학교까지 걷는 길은 1시간쯤 걸리는데 다소 지루하다. 여기까지 대략 6km 정도 왔고 앞으로 광치기 해변까지 9km 정도 남아 있다. 종달초등학교 앞에 있는 정류장엔 버스들도 많이 오간다. 제주 올레길의 맛을 느끼고 싶지만, 시간이 없는 여행객들에게는 2, 3시간 정도면 충분한 이 길을 추천해주고 싶다. 서귀포시에 속하는 동쪽 첫 마을 시흥리와 제주시에 속하는 마지막 마을 종달리가 만나는 제주 올레길 1코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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