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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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상
  • 한복섭
  • 승인 2020.09.1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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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수필가 한 복 섭

가을을 부르는 전령사를 들라면 단연 귀뚜라미다. 사람들은 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 내어 우는 소리가 들리면 추흥秋興에 젖기 시작 한다. 그 것도 별들이 조용한 밤에 우는 소리는 마음을 설레게까지 한다. 가을이여 어서 오라고.

가을의 또 다른 상징으로는 높고 파란 하늘이다. 하지만 뭉게구름이 두둥실 피어올라야 제격이다. 뭉게구름은 온갖 세상을 만들며 사람들을 동심으로 이끈다. 결실의 계절을 예고하듯 우리의 마음을 둥글게 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가을의 절기를 일컬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다. 처서를 말함이다. 처서는 입춘으로 시작하는 24절기 가운데 여름이 머문다는 뜻이다.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다.

오늘은 가을이 깃든다는 처서다. 폭염특보 속에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 속담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다. 모기의 극성이 사라져 아침저녁으로 산들 바람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1년 열두 달 농가에서 할일을 월별로 읊은 조선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를 보면 “늦더위가 있다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쏘냐”고 폭염의 퇴각을 예고한 것이다. 절기의 변화가 참으로 오묘하다.

옛 어른들은 이때가 되면 여름 동안 장마에 젖거나 더위에 눅눅한 곡식이며 옷이며, 땀에 젖은 몸도 마음도 선선한 가을바람에 쐬고 볕에 말렸다.

그런가 하면 우리도 할일이 있다. 조상의 선묘를 찾아 벌초를 해드려야 한다. 처서 이후엔 햇볕이 누그러져 풀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몸은 여전히 고달프지만 벌초를 하고나면 마음의 뿌듯하고 풍성해진다.

시인 김현승 은 ‘가을의 기도’에서<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고 갈구 했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릴케도 ‘가을날’에서<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 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들판위엔 바람도 놓아 주십시오···>라고 읊었다. 기도조의 어조로 내적 충실을 기원하고 있다. 이들의 가을의 의미는 절절하게 온 마음을 다해야 사랑을 깨닫는다 함이다 참으로 경건하다.

계절은 인간이 어떤 오만 함도 위선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유달리 더웠던 지난 여름날, 잘잘못과 비 양심을 깨우치며 다시 맞는 가을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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