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 모루 숲길과 거친 오름을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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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 모루 숲길과 거친 오름을 거닐며
  • 김영희
  • 승인 2020.09.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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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을 굽는 동산 숯모루
비밀의 '나의 의자'
감동을 주는 편백나무 숲
거칠지 않는 거친 오름
열병식을 하는듯 도열해 있는 편백나무 숲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열병식을 하는듯 도열해 있는 편백나무 숲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난 1년 동안 제주 올레길 26코스 425km를 완주하느라 한라 생태숲을 가보지 못했다. 머나먼 여정을 끝내고 제주시 내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라 생태숲 ‘숯 ᄆᆞ루 숲길’을 거닐기로 했다. 내친김에 ‘숯 ᄆᆞ루 편백 숲길’의 종점 거친 오름까지. ‘숯 ᄆᆞ루’란 ‘숯을 굽는 동산’을 뜻한다고 한다. 내가 걷는 이 길 어디에서인가 옛날 제주 선조들이 숯을 구워서 시장에 가져다 팔았으리라. 숯을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다.

부쩍 그동안 알려져서인지 걷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어르신들과 연인들, 때로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걷는 부부들도 보인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연을 알리는 더없이 좋은 학습장이 될 것 같다. 어르신들에게도 경사가 완만하여 오르락내리락 걷기에 좋은 트래킹 코스이다. 숯 ᄆᆞ루 숲길 입구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가면 나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한 ‘나의 의자’가 나온다. 의자에 앉아서 나는 절물자연휴양림으로 넘어갈 것인지, 그냥 한라 생태숲 한 바퀴만 돌 것인지 결정한다. 한라 생태숲 한 바퀴만 도는 것이 4km의 ‘숯 ᄆᆞ루 숲길’ 코스이고, 숯 ᄆᆞ루 숲길과 절물자연휴양림 분기점에서 거친 오름까지 가는 것이 8km의 ‘숯 ᄆᆞ루 편백 숲길’이다. ‘나의 의자’에 앉아서 독서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편히 쉬다가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나선다. ‘나의 의자’에 앉으면 그 주변이 ‘나의 정원’ 같다. 성경의 진복팔단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요’라는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하늘나라만이 아니라 땅의 나라도 그들의 것 같다. 어디 나의 의자가 있고 나의 정원이 있으리오만 마음속으로 찜해두는 것이다. 진정한 부자는 마음이 가난한 데서 오는 것 같다.

셋 개오리오름 정상을 넘어 내려가면 울창한 편백 나무숲이 나온다. 처음 대했을 때 그 벅찬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늘로 향하여 곧게 뻗은 편백 나무들이 도열 하여 열병식을 하여 마치 나는 왕이 된 것 같았던 그 느낌이.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어 주는 편백 나무는 산림욕에도 좋다. 조금 더 걸으면 임도 사거리가 나온다. 숯 ᄆᆞ루 편백 숲길과 절물 장생의 숲길이 겹치는 길, 절물 주차장으로 가는 길, 한라 생태숲으로 되돌아가는 길과 통행할 수 없는 비자림로로 가는 길들의 갈림길인 임도 사거리가. 여기가 8km의 중간 지점에 해당한다. 거친 오름까지는 4km가 더 남았다. 30 여분 정도 걸으면 노루생태관찰원 입구가 나온다. 목재 계단이 있는 언덕을 오르면 573m의 진물굼부리(진 머리) 오름이다. 오름을 내려가면 들개로부터 노루를 보호하기 위한 노루생태관찰원 철문이 나온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친 오름(618m)이 눈앞에 편안히 반기는 듯 앉아있다.

가을의 정취를 흠뻑 머금고 있는 단풍이 물든 아그배 나무와 그 주변.
가을의 정취를 흠뻑 머금고 있는 단풍이 물든 아그배 나무와 그 주변.

단풍이 든 아그배나무와 그 단풍잎들이 쌓인 의자들을 보면서 올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만끽한다. 조그만 연못 속에는 잠자리 두 마리가 밀어를 나누고 있다. 모든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하다. 진 머리 오름을 거칠게 넘어왔지만 거친 오름은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중턱에 정자가 하나 있다. 눈앞으론 멀리 견월악과 셋 개오리오름, 왼쪽으론 절물오름과 민오름, 뒤론 거친 오름이 마치 초록과 갈색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펼쳐진다. 평화의 섬 제주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차 한 잔을 마신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않는 나만의 비밀 장소로 남기고 싶다. 언제든 마음이 울적할 때면 홀로 와서 거닐고 싶은. 거친 오름을 오르는 길은 걷기 편하게 풀들과 나무들이 잘 단장이 되어 있다. 만약 ‘오름 청결상’이라는 것이 있다면 드리고 싶을 정도이다. 정상에서 펼쳐진 오름 군락은 눈 호강하기에 충분했다. 저 멀리 다랑쉬 오름과 붉은 오름도 보인다. 내려와 보니 노루들이 풀을 뜯고 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지상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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