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伐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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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伐草)
  • 한복섭
  • 승인 2020.09.1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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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수필가 한복섭

 

가을의 문턱, 처서가 지나고 벌초 시기가 돌아왔다. 예로부터 처서가 지나면 햇볕이 누그러져 자라던 들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벌초 시기인 듯싶다. 몸은 여전히 고달프지만, 조상의 선묘에 벌초를 해드리고 나면 그렇게 마음 뿌듯할 수가 없다.

벌초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 유교가 전해진 이후부터일 것이다. 유교의 관혼상제는 기제사 대상에서 제외된 5대조 이상의 조상은 시제(時祭)나 묘제(墓祭)로 모시도록 한다.

송나라 주자가 ‘가례’ 묘제를 중시한 이후, 조상의 묘를 돌보는 풍습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설이다.

제주지역은 해마다 음력 팔월 초하루가 가까우면 어느 하루를 정하여 친척들이 한데 모여 제주 특유의 ‘모둠 벌초’를 한다. 모둠 벌초는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조상의 선묘를 찾아 벌초를하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얼마 동안의 헤어졌던 가까운 친척에서 먼 친척까지 만날 수가 있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모둠 벌초는 각자 집안별로 하다가 부계 8촌 이내의 친척들이 모여서 조상의 묘부터 벌초를 하는 것이다. 벌초는 대개 조상의 무덤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 하루에 끝낼 수 있지만, 여러 곳에 흩어져 있으면 며칠씩 걸리고 하던 때가 있었다. 이 때문에 벌초를 지역별로 분담을 한다. 그러던 때가 요사이는 친척들이 옛 조상의 선묘를 한데 모으려는 ‘공동묘지’ 자리를 마련하여 후손들이 쉽게 벌초를 해드리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친척이 없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조상의 선묘에 벌초를 해드리지 못하면 벌초대행 해주는 사람에게 맡기기도 한다.

‘모둠 벌초’는 효 사상과 문중의 단합이라는 측면에서 중요시되는 제주의 독특한 풍습으로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기여 하는 친· 인척 중심의 혈족사회가 낳은 산물이다.

요즘 현대사회를 일컬어 핵가족, 시대라 한다. 일꾼이 점점 줄어 후손들에게 벌초가 큰 숙제가 돼버렸다. 자동차로 이동하고 예초기를 써 보지만 주부들의 바쁜 생활을 살아가면서 추석 명절준비 중후 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남자들 역시, 벌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멀리 고향을 찾지 못해 조상의 선묘를 돌아보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면 마음은 효를 잊지 말고, 현실성을 고려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형식이 변한다고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효 문화까지 쉽사리 잊어서야 되겠는가, 조상이 있음으로 오늘 내 자신이 있으니 말이다.

힘들었지만 머나먼 고향 찾아 내부모, 내 형제 친척 어른께 벌초를 해드리고 나면 마음 뿌듯하기 이룰대 없으며 마음은 고향 하늘 복판에 고추잠자리 하늘을 날고 나를 반기듯 선묘의 주변을 맴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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