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卿)이 만일 한 평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다면 그 때 일생을 어떻게 사실까요?” 이 말은 어느 한 신문기자가 노년의 마지막 몇 해를 살고 있는 영국의 수상 ‘원스턴처칠옹’에게 물어본 엉뚱한 질문이었다.
“그거야 내가 지금 살고 가는 일생을 그대로 다시 사는 거지,” 이것이 서슴없는 처칠경이 대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일생을 얼마나 유감없이 잘 살았기에 이렇듯 자만에 가까운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든 지금 세상에는 자신의 일생회고담을 이렇게 표현한 처칠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선망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이천년이라는 21세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 한평생을 다시 산다는 가상적 문제는 차치하고 지금 발 앞에 다가선 이 시대를 어떻게 살겠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인가. 지나간 해(年)를 산 그대로 또다시 그렇게 살겠다는 만족과 자부심에 찬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앞에 놓여진 이 한 해를 다 살고 났을 때야말로 서슴없이 처칠 식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야 하겠다.
처칠옹이 그렇게도 잘 산 것이라고 느끼는 그 인생은 내가 아는 한 전부가 다 화려한 길이거나 거침없는 큰길만은 아니다. 그는 군인으로서, 또 최고 지휘관으로서 패전과 쓴맛을 맛봐야 했고 또 정치인으로는 패배와 실의의 한두 대목을 지나야 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직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영광, 또 그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해서 그 평생을 바쳤고, 또 대담무쌍한 생애를 살았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도 빈틈없이 가득 찬 인생을 살았다. 정치 군사 면에서만 아니라 그림을 잘 그려서 거의 거장(巨匠)이란 평을 받게끔 됐고, 또 숙련공에 지지 않게 벽돌쌓기에 능했으며, 노벨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글을 잘 썼다.
즉 나라를 섬기는 생활, 대담하게 사는 생활, 그리고 차고 넘치도록 가득 찬 생활을 사는 것이 바로 처칠의 삶을 보람 있게 느끼게 한 것 이라고 믿어진다.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된 이천년은 가득 찬 한 해가 돼야 하겠다.
그러자면 첫째 우리는 어떤 처지. 또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 바로 거기서 직접 간접으로 겨레와 사회에 대하여 작게나 크게 나 도움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 어떤 때와 마찬가지로 갖은 난관이 있을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불퇴전(不退轉)의 자세로써 대담하게 돌파하며 나아가야 하겠다. 또 어떤 때 어떤 곳에서는 간단없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으로써 빈틈없는 생활을 갖어야 한다.
애국하는 마음은 나라의 위기를 보고 목숨 던져 죽는 것만이 애국이 아니며 자신을 희생시켜 나라를 돕는 희생정신만이 애국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애국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있으며 국가의 시책에 호응하고 참여하여 그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 또한 애국일 것이다.
서로 격려하고 협동하여 어려운 일들을 향해 뭉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게 있어서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진정한 애국이다. 칠월의 아침, 파란 조국의 하늘을 우러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