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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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단상
  • 한복섭
  • 승인 2020.06.0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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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단상

 

 

시인 ․ 수필가 한 복 섭

지난 세월, 우리에게 보릿고개라는 시절이 있었다. 5, 60년대, 식량이 부족하여 그만큼 보리밥 한 끼 제대로 먹기가 힘들었던 가난의 슬픈 눈물을 목으로 삼켰던 때였다. 북서풍, 하늬바람이 우수수 부는 늦가을에 씨 뿌려 파종을 하고 이듬해인 유월이 오면 누렇게 익은 곡식을 수확해서 거두어 창고에 저장해 두어 먹다 보면 일 년 먹을 양식이 바닥이나 새로 파종한 보리가 미쳐 여물지 않아 식구들이 먹을 식량이 부족하여 매우 어려웠던 시기를 가리켜 보릿고개라고 했다.
보릿고개를 때에는 이른 봄부터 모든 식량이 떨어져 극히 일부의 가정을 제외하고는 가난한 집에서 귀한 보리를 방앗간에서 기계로 두 번 세 번 깎아(도정搗精) 버린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농민의 마음이었으니 얼마나 오죽했을까. 잘 깎은 보리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치도 못할 때였다. 두세 번 보리를 도정 해버리면 보리 알맹이가 적어지기 때문에 가난한 집안은 한 번 정도의 보리를 도정 하고 거친 보리밥을 그냥 먹는 세월을 살았다.
부잣집은 여러 번의 보리를 잘 깎아 밥을 지으면 매끄럽고 윤이진 주안상 잘 차려놓고 맛있게 지어 먹었는지 모른다.
빈부 차이에서 오는 못살고 가난한 사람의 입에서 두불 세 벌 잘 깎은 보리밥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얼마나 생활이 어려웠으면 이런 말이 다 나왔을까 하는 얘기다.
어린 시절, 가까운 친척집에 제삿날이 날이라야 쌀밥을 얻어먹을 수가 있었고, 제사 파제를 기다려 한참 잠을 자다 졸린 눈을 억지로 부비며 일어나 제사 밥을 먹는데 어른은 수북이 쌓아 올린 고봉밥, 어린 아이들은 반 그릇, 그렇지만, 쌀밥에 고깃국을 맛나게 먹었던 때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날, 요즘은 생활도 많이 나아져 어느 날 갑자기 먹을거리가 넘쳐나 하얀 쌀밥에 인스턴트식품에 우리는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꽁보리밥에 배불리 먹었던 지난날, 그러나 요즘 세상은 하얀 쌀밥마저도 잘 먹으려 들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야 할 질문인 것 같다.
조냥 의 정신이 아니라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다 보니 배가 부른 모양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땀 흘린 농민의 마음과 어려움을 덜어주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던 그 날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지난주일 교회 다녀오는 길, 누렇게 익은 보리밭 들녘을 지나오게 돼 감회가 새로웠다. 어머니의 뒤를 따라 잔 돌덩이 발에 차이며 유월의 부는 바람에 누렇게 잘 익은 보리밭 한가운데 누워 바닷물 결처럼 술렁이는 풍경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니 따갑게 내려쬐는 햇볕을 맞으며 땀에 젖은 갈 적삼 입고, 혼자서 깊은 한숨 내쉬며 보리 단을 묶고 하던 모습, 어머니가 지어준 보리밥을 먹었던 때다.
봄 제비 시원스레 들녘을 날아오르는 그리운 호시절, 소등에 멍에 매고 베적삼 입은 촌로, 가슴 허비는 밭갈이 “어허랴”호령 소리에 저만치서 슬피 우는 산 새소리가 여울져 퍼질 때면 해가 서산마루에 저물어가던 농촌의 들녘, ‘밀레’의 ‘이삭을 줍는 여인’ 명화처럼 한, 농촌의 풍경이었다. 농사일을 보람으로 여기며 고생하시던 어머님의 모습, 당신의 세월이 눈에 선하게 추억의 한 자락으로 떠오른다.
유월이 저문다. 요사이가 보릿고개 시절이다. 봄이 지나고 초여름을 맞는 이때 보릿고개가 아닌가 싶다. 경제가 어려운 이 시기에 때아닌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이라니 흉흉한 현실?을 맞으며 높고 낮음이 없이 온 인류를 공포에 세월 살고 있다.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내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가 건강관리 조심해야 한다는 보릿고개 시절이란다. 하루속히 이러한 감염병이 이 땅에서 소멸될 때 보릿고개를 지혜롭게 잘 넘겨야 한다.
하루해가 저물고 있다.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저녁상 앞에서 우리 부부는 두 손 모으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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