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향이 흐르고 쉼터가 있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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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향이 흐르고 쉼터가 있는 그곳
  • 한복섭
  • 승인 2021.11.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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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향(墨香)이 흐르고 쉼터가 있는 그곳

                                            시인, 수필가 한 복 섭

 

시인, 수필가 한 복 섭
시인, 수필가 한 복 섭

  2003년 3월 어느 이른 봄날의 아침이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봄을 말하기엔 이른가 보다.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쌀쌀한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하지만 봄이 눈앞에 와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기쁨이 차오른다.
  나는 2003년 초에 이곳, 제주시 용담동 쪽으로 이사를 가 생활한 적이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는 곳이 있다. 새로운 생활, 새 구원의 삶을 시도하고자 다니는 곳이다.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이다. 생각을 해보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지난 일들 삶이 여간 힘이 들었다.
  매일 아침 그곳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나의 오그라진 오른 한쪽 손에 붓을 들고서는 전동 휠체어에 불편한 몸을 싣고 제주 시내를 한참이나 길을 가야 한다.
  맨 처음 나서는 길은 용문 정류소를 출발점으로 서사로 거리를 경유 하여 또 한참이나 남쪽으로 가다 보면 광양 쪽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거기에서도 동남쪽, 방향으로 더 가야 한다. 여러 길이 있긴 하지만 이 길만이 전동 휠체어를 탄 내가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이다. 이동하는 시간만도 무려 40분이다
  이른 봄날이면 상춘객들의 모습과 이 거리 저 거리를 세상 구경하면서 가다 보면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어느새, 제주시 광양 로터리 근처에 있는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바로 이곳이 장애인들의 쉼터요, 장애인들의 희망의 샘의 솟는 곳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오늘같이 따뜻한 봄날이면 양지바른 곳에 정문 앞 양쪽 옆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의 건물도 남향이어서 한겨울이라도 따뜻하고, 장애인들이 나기엔 더없이 좋은 집, 하나님이 지어주신 반석 위에 세워준 집이 아닌가?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은 이십여 년 전에 구 제주시를 기점으로 광양 중심 부근에 지어져서 어떤 장애인도 이용하기에 너무나 편리하고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들이 너무나 잘 돼 있다. 이용자가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제주도 내 전 장애인뿐만이 아니라 비장애인도 많이 이용하고 있음은 물론 이곳에서는 많은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본 복지관은 지상 3층과 지하 1층으로 지어져 있다. 거기에다 많은 장애인 단체들이 입주해 있어서 각부서 별로 프로그램들이 또한 다양하게 운영된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곳은 장애인들의 재활 의지의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서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질도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이 외에도 장애인의 복리 증진을 위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있다.
  어데, 이것뿐이랴. 본관 입구에 들어서 경사로를 따라 이동 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올라가서 10M쯤 좌측으로 가면 60평 정도 남짓한 곳에 ‘서예교실’이 있다. 이곳이야말로 유서 깊은 곳, 서도들이 서예 대전大典에 입상을 하기도 하고 서예가들을 배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선천적 장애인이어서 남들과 같이 학교공부라고는 전혀 받지를 못했다. 남들처럼 교실에 앉아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수업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어린 시절을 집안에서만 있어야 했고,
  그 후 성년의 되고서는 서예 공부를 엄두 해두었지만, 어쩌다 기회가 되어 2003년 이른 봄, 복지관 이 층에서 장애인 재활사업의 일환으로 서예 교실, 수험생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고 기회는 이때다 싶어 서예 공부에 뛰어들어 오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한글(판본체)을 시작해서 써 오다가 이년 전에 한문을 배워 보려는 마음으로 예서禮書를 배우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서예를 시작하여 오륙 년 동안 여러 훌륭하신 선생님 밑에서 배우고 있지만 쉽게 늘지 않는 게 서예 공부인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이곳 서예 교실에 들어서면 짙은 묵향을 맡으며 먹과 벼루를 꺼내고선 오그라진 오른손으로 먹을 가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만큼은 그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오직 글을 잘 써야 하겠다는 생각으로만 마음이 서니 조금은 행복한 느낌 마 져 든다. 이런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왼쪽 한 손으로 글을 써나가는 좌수인도 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글을 읽거나 부러진 다리로 걸음을 걷는 오도(悟道)의 정신이다. 육칠 십 대의 노구로 재기하는 예술가, 가슴에 희망을 심기 위해 재생하는 인생, 모두가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다.
  2008년 지난해 12월 14일 날, 나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義自現’(백편의 독서를 하면 뜻이 저절로 난다.)라는 서예를 써서 이 층 다목적실에서 많은 서예를 하는 분들과 전시를 했다. 정말 아름답고 뜻깊은 하루였다.
  부지런히 글을쓰는 한 해 동안 열심히 공부한 노력의 성과로 그나마 서예를 배우고 또 배움의 길을 들어서게 되어 기쁨이 더 할 수 없다.
  ‘아름다운 출발, 다시 서는 열정의 손끝으로.’ 이글은 복지관(서예 교실)의 교훈이다. 이에 못지않게 이곳의 모든 선생님 어느 기관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흐뭇한,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장애인들에게 삶의 용기를 복 돋아 주는 것이다. 묵향(墨香)이 흐르는 그곳, 쉼터에서 영혼이 맑아짐을 느끼며 오늘 하루의 나의 삶도 그곳의 선생님들만큼이나 마음 뿌듯하다. 202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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